살림·가사·육아 무조건 ‘반반’… 엑셀까지 만들어 따지는 3040부부의 세계
요즘 3040세대 신혼부부들의 이혼 사유가 사뭇 달라졌다. 과거에는 배우자와의 성격 차이나 가정폭력, 외도가 주된 이혼 상담 사유였다면, 요즘 젊은 신혼부부들은 경제·가사·육아 분담을 ‘정확히 반반’씩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변호사를 찾는 일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완전히 변화한 젊은 세대의 결혼관과 이혼관에 놀란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혼 전문 변호사 A씨는 “이혼 상담을 받으러 오는데, 결혼 준비 자금부터 결혼생활 동안 생활비와 경제적 분담을 각자 얼마나 했는지, 육아와 가사를 일주일에 각자 몇 시간씩 했는지 정리한 엑셀 파일을 가져온 사례도 있었다”며 “결혼 생활에서 양쪽이 똑같은 부담을 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이니 결혼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게 최근 갈라서는 젊은 부부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이혼을 요구하는 신혼부부들은 대체로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 30대 중·후반에 결혼해서 1~3년 차에 불만을 느껴 이혼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 B씨는 “부부는 경제 공동체라는 옛 인식도 사라졌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부부가 서로 경제권을 합쳐 생활비 지출과 재테크를 공동으로 했다면, 요즘 신혼부부는 공동생활비 통장을 만들고, 나머지 소득은 각자 관리하고 재테크도 따로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B씨는 “생활비 통장에 든 돈으로 커피를 사 마시거나 화장품 사는 것까지 문제 삼기도 한다”며 “가사와 육아를 각자 일주일에 몇 시간 했는지, 처가나 시가를 방문할 때는 누가 운전하고 주유비는 누가 낼지를 두고도 다툼이 벌어진다”고 했다.
이런 경우 보통 이혼 사유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성격 차이’로 합의 이혼을 택한다. 변호사 C씨는 “기성 세대 입장에선 생활비나 주유비, 가사·육아 분담으로 다투는 것을 두고 부부간에 양보나 이해가 없다고 볼 수 있는데 젊은 부부들은 부담을 공정하게 나누는 게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 같다”며 “결혼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변호사 A씨는 “마치 사회생활하듯 결혼 생활의 여러 부담을 규격화하고 나누려는 듯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자녀가 있는 부부도 과거보다는 좀 더 쉽게 이혼을 택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는 결혼을 자신의 더 나은 미래와 경제적 여유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근대화와 함께 확산한 연애결혼과 전통적 가족주의가 결합한 기존의 결혼·가족 문화가 3040세대에선 빠르게 퇴조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예비 신랑·신부가 서로의 경제 상황과 나이 등을 올리고 두 사람이 결혼할 경우 만족할 수 있는지를 묻는 이른바 ‘결혼 견적’이 유행이다. 결혼 견적에는 각자의 나이와 직장 근속 연수, 결혼 자금으로 모은 돈과 양가 부모님의 결혼 지원금 액수, 부모의 자산 액수와 노후 보장 여부까지 포함된다. 이런 결혼 견적에는 “아무리 연애할 때 좋았어도 결혼은 현실이다. 서로 비슷한 경제적 여유와 조건이 맞지 않는 결혼은 절대 하지 말라”는 조언이 대부분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철학전문위원은 “한국은 빠른 근대화 과정에서 결혼 생활과 결혼 내 성역할에 대한 관습과 문화가 약하게 형성되었다가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부부간에도 다소 각박한 셈법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3040세대는 어릴 때부터 주체성과 권리 중심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며 “긍정적으로는 남녀 간의 평등한 결혼 문화를 지향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권리와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결혼 생활이 다소 매정해지고 이혼은 전보다 쉬워지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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