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00]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
직장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 몇 가지 가정을 해보라는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불만을 상사에게 강하게 토로했을 때 그다음 날 내 마음이 후련할지, 불편할지, 내 커리어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111′기법이라고 불렀는데 내 행동이 하루, 한 달, 일 년이 지났을 때 미칠 결과를 미리 상상하면, 우리가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인지 기능 장애에 관한 책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저자 ‘미야구치 고지’는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라, 시간 개념이 약한 아이들은 ‘어제, 오늘, 내일’ 정도에 걸쳐 생활하기 때문에 삶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못한다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약하면, 지금 이런 일을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를 예상치 못해 이 순간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흘러가 범죄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일면 무관해 보이는 상상력과 범죄도 연관돼 있다.
구름 추적자 ‘개빈 프레터피니’에 의하면 모든 무지개는 완벽한 원의 형태를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우리 눈에 반원의 무지개만 보이는 이유는 그 아래쪽 절반이 땅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난다면 원 형태의 무지개를 볼 수 있고, 동그란 무지개가 단지 상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봄이 온다는 뜻의 ‘입춘’은 기이하게 겨울의 한가운데 있다. 가을이 오는 ‘입추’ 역시 그렇다. 봄의 기운은 따뜻할 때가 아니라 ‘추울 때’ 도달해 있고, 가을의 기운 역시 서늘할 때가 아니라 한창 ‘더울 때’ 이미 우리 곁에 도착해 있다. 24절기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는 이토록 실용적이라, 우리는 혹한의 겨울에도 보이지 않는 봄을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지금의 노력이 물이 끓기 전, 99도에 이르렀다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극한의 밤에도, 마지막 1도를 향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희망의 상상을 삶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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