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눈에 안 보이지만 어디든 존재하고 우리를 이어주는 ‘친구’는 누굴까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빅터 D.O. 산토스 지음 | 안나 포를라티 그림 | 김서정 옮김 | 한빛에듀 | 48쪽 | 1만5000원
유인원처럼 피부가 검은, 아마도 수백만 년 전의 옛사람 두 명이 모닥불 앞에 마주 앉았다. 멀리 코끼리 떼가 지나고, 바위엔 거칠게 긁어 그린 코끼리 그림이 있다. 한 사람은 양손을 펴 귀에 대고 커다란 귀를 흉내 내고, 한 사람은 손바닥 위에 걷는 모양을 만들어 보인다. 이 둘이 입 밖으로 낸 소리는 코끼리를 뜻하는 무언가였을 것이다.
문학적 비유와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으로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읽어가는 재미가 있는 책.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수천 년 된 덩굴 뿌리를 가진 나무가 벽돌로 지은 거대한 사원의 폐허에 한 몸처럼 뒤엉키기 훨씬 전부터.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도시와 나라 어디에나 있다. 때로는 아기 동물의 털처럼 보드라운 위로가, 가끔은 겨울바람처럼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한다.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수수께끼의 주인공은 ‘언어’다. 더 많이 알수록 닫힌 문을 더 많이 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발명품.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과거와 현재를 잇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아기는 언어를 배우며 자라고 살다 노인이 되어 말을 잊고, 갖가지 모양의 문자들은 새들이 부리에 물고 날아가는 벌레나 나뭇가지처럼 쏜살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지금 세계에 존재하는 언어 약 7100종 가운데 절반은 21세기 끝 무렵엔 사라질 운명이다. 언어학 박사인 저자는 “언어 하나가 소멸되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꽃피운 문화와 지식도 함께 영원히 사라진다”고 말한다.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는 언어, 이 아름답고도 귀중한 도구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이도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곰곰이 궁리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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