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은 오존층만 파괴했을까… 지역 공동체도 무너뜨렸다

곽아람 기자 2023. 4.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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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의 안락함

에릭 딘 윌슨|정미진 옮김|서사원|624쪽|3만5000원

수은주가 올라가고 있다. 무더위가 곧 닥쳐오겠지만, 우리에겐 에어컨이 있다. 에어컨으로 온도를 낮춘 실내 공기는 균질하게 서늘하다. 습도가 낮아진 대기는 보송보송하게 쾌적하다. 우리나라 가구당 에어컨 보유 대수는 0.97대. 저소득 가구는 사정이 다르지만, 통계상으로는 한 집당 한 대가량 에어컨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에어컨의 보급으로 여름날을 견디기는 한결 수월해졌지만, 과연 우리의 삶의 질이 늘어난 에어컨 대수만큼 안락해졌을까? 미국 작가인 저자의 주제의식은 여기서 시작한다.

◇”프레온 가스 환경 파괴, 끝나지 않아”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에어컨 냉매로 사용된 프레온 가스(CFC)가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라는 건 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알고 있는 상식. 오존층 파괴 물질의 규제를 위한 국제협약인 몬트리올 의정서가 1987년 체결되면서 선진국에서의 CFC 생산이 점차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 (미국에서) CFC의 생산은 금지되었지만 사용은 금지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미국에는 아직 엄청난 양의 CFC가 남아있으며, 기존 냉각기에서 회수한 것이든, 재고에서 가져온 것이든 남아있는 CFC가 2차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것. 저자는 프레온 회수 업자와 동행, 미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거래 현장을 취재한다.

어떤 사람들이 프레온 가스를 원하는가? 자동차 수집가들은 클래식 자동차에 구식 냉매를 채워 넣기 위해 프레온을 필요로 하며, 구식 트랙터를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쓰는 농부들도 이를 찾는다. 저자가 만난 프레온 가스 수요자들은 대개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백인 남성. “이들은 CFC 파괴를 낭비라 여기며, CFC 금지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부가 통제권 행사하는 걸로 생각한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 노력하는 이들의 반대편에 성층권에서 140년간 머무는 프레온 가스를 굳이 찾아서 재활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에어컨의 등장이 공동체 와해시켜”

저자는 또 에어컨의 보편화가 지역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집집마다 에어컨이 설치되기 전, 집 밖은 집 안보다 쾌적했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실외로 나와 이웃과 담소를 나눴다. 아이들은 다른 이웃집 아이들과 뛰어놀았다. 지역 여름 축제 등 더위를 함께 나기 위한 공동체 시스템도 마련됐다. “여름날은 바깥을 향해 있었고” 이런 교류 덕에 범죄와 이웃 간 분쟁도 예방할 수 있었다.

에어컨의 등장은 모든 걸 바꿨다. “‘내가 구입한 집 안의 공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름에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집 안에 틀어박혀 보내기 시작했다. “자아 추구와 개인주의에의 몰두가 에어컨의 확산과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이 정말로 놀라운 일인가?”라고 미국 작가 프랭크 트리펫은 1979년 ‘타임’지 기고문에서 물었다.

폭염은 끔찍한 재앙이지만, 저자는 “프레온 이전의 세상이 끊임없는 고통의 세상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프레온 이전 세상은 지구인들이 단지 개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열을 다루는 법을 아는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 에어컨 중독되면 더위 더 먹어

“에어컨은 마약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1990년대 미국인들은 시원하고 균일한 공기 상태를 기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1992년 케임브리지대학 소속 경제학자 그윈 프린스는 “에어컨의 무비판적 사용이 신체가 열을 싫어하도록 빠르게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다.

많은 연구자가 “‘편안함’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햇볕 노출, 공기 질, 기대치와 같은 조건에 따라 평생 ‘상당히’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현될 수 없는 더 낮은 온도를 기대할 때 불쾌지수는 더 올라간다. 일부 연구자들은 에어컨 등으로 인해 일정 온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다른 온도에 대한 내성이 약해진다는 걸 발견했다. 신체가 반복적으로 짧게 높은 온도에 노출되며 자신을 방어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몇 주 동안 더위를 견딘 사람보다 뇌졸중을 겪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결국 ‘모두에게 이상적인 균일하고 보편적인 공기가 있다는 믿음’이다. 그는 “보편적 욕구를 가진 보편적 신체가 있다는 믿음이 ‘공기 조절’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보편적 신체’의 기준은 결국 ‘젊은 백인 남성’이었다는 것에 주목한다. 책은 환경주의자의 관점을 취하지만 그렇다고 에어컨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냉방’을 다층적으로 사고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오존층 파괴로 인한 피부암 발병률이 유색인종에 비해 백인이 더 높지 않았다면, 미래 환경 파괴를 막는 세계 유일한 국제협약으로 꼽히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체결되었겠냐고. 저자 역시 백인 남성이다. 원제 After Coo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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