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의 언어 능력마저 넘보는 AI… 최후의 승자 누굴까

이진구 기자 2023. 4.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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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던 것에 대해 어쩌다 궁금증을 느낄 때가 있다.

진화의 유구한 세월 속에 왜 인간만이 언어라는 독특한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됐을까.

저자들은 언어가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독창성이 오랜 세월 축적돼 만들어진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 언어 덕분에 자신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동물들을 제치고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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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 아닌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우연의 산물
기계적 작업으로는 접근 못하는 인간만의 경험-세계관 녹아 있어
◇진화하는 언어/모텐 H 크리스티안센 닉 채터 지음·정지호 옮김/448쪽·2만4000원·웨일북
2011년 IBM의 인공지능 ‘왓슨’(가운데)이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한 모습. 67만 권의 책에 해당하는 정보를 지닌 왓슨은 암기 위주의 시대는 끝났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책 ‘진화하는 언어’의 저자들은 인간의 언어 능력만큼은 인공지능이 절대로 따라 올 수 없는 분야라고 강조한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살다 보면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던 것에 대해 어쩌다 궁금증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렇게 만든다. 우리가 늘 쓰는 이 ‘언어’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진화의 유구한 세월 속에 왜 인간만이 언어라는 독특한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됐을까.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의 등장으로 인간은 언어라는 자신만의 고유 능력에서도 기계에 밀리지 않을까. 그 뒤는?

저명한 언어 인지과학자와 인지심리학자 두 사람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언어의 기원에 대한 탐구에 나섰다. 저자들은 언어가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독창성이 오랜 세월 축적돼 만들어진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몸짓으로 의미를 맞추는 제스처 게임처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또는 우연한 과정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이를 확장해 나가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음성에도 적용된다. 어떠한 몸짓도 사용할 수 없고, 오직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만을 이용해 ‘칼’ ‘물’ ‘호랑이’ 같은 명사는 물론이고 ‘요리하다’ ‘사양하다’ ‘자르다’ 같은 동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실험을 했더니 참가자들이 수많은 반복과 시행착오를 거쳐 일정한 패턴의 소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물은 보글보글 소리로, 호랑이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표현하는 식이다. 칼은 ‘휙’ 하는 소리로 표현했는데, ‘휙’ 소리를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자르다’라는 동사를 표현해냈다. 이런 방식이 오랜 세월 씨줄과 날줄로 연결되고 의미를 넓히고 다수가 사용하면서 언어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 언어 덕분에 자신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동물들을 제치고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어떤 식으로든 “함께 창을 던지자”라는 의사를 전달할 수 없었다면 혼자서는 거대한 매머드를 잡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 신체적 능력에서 도저히 기계를 이길 수 없는 인간이, 만약 언어 능력까지 인공지능에 뒤진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스티븐 호킹(1942∼2018)이 BBC 테크놀로지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대로 종국에 인간은 인공지능에 대체될까?

저자들이 소개한 헤밍웨이의 에피소드는 이 질문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 단어 6개로 자신들을 울릴 수 있는 소설을 쓰면 돈을 주겠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헤밍웨이는 즉석에서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아기 신발 팝니다. 신은 적 없음)이라고 썼다. 이 짧은 글에서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기를 연상하고, 누군가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 신발을 준비한 부모의 마음을 떠올릴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너무 가난해서 죽은 아기의 신발마저 팔 수밖에 없는 부모를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과거의 대화와 경험, 세상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유추해보는 풍부한 은유적 과정을 생략한 채, 단어의 열과 열을 통계적으로 짝짓기하는 기계적인 작업만 수행했다. 그 결과 이 문장을 단순한 상품 판매 광고로 해석했다. 언어의 기원에 대한 탐구가 의외로 터미네이터가 지배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는 희망을 주니 참 놀랍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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