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음악을 닮은 글
음악에 관한 글을 쓰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순간 음악으로부터 아주 멀어져 있는 때가 많았다. 음악 경험을 글로 바꾸는 과정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낸답시고 온갖 형용사와 수식어들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결국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를 다루는 문장들만 남곤 했다. 분명 음악을 듣고 느낀 바를 충실히 기록하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글을 다듬다 보면 어쩐지 바삭하고 건조한 문장들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실제 음악과는 딴판이었다. 정적 속에서 음악의 뼈대를 더듬어 보려는 글 말고, 음악만큼 활기 넘치는 글, 그리고 음악의 소란함을 닮은 멋진 글들을 쓰고 싶었다.
최근 이런 난처함을 가볍게 뛰어넘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닙 압두라킵은 미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문화 전반과 음악에 관한 글을 써온 에세이스트다. 그의 책 <죽이기 전까지 죽지 않아>는 여러 매체에 기고해온 음악에 관한 글들을 펴낸 에세이집으로, 음악과 함께했던 삶의 장면들이 생생한 언어로 쓰여 있다. ‘흑인이자 무슬림으로 살아오며 수많은 차별과 지인들의 죽음을 겪었다’는 소개글처럼, 그의 글에는 차별의 눈초리 끝에서 그가 겪었어야만 했던 날카로운 경계면에 대한 이야기부터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의 문장들을 따라 읽고 있으면 어느새 내가 더 위켄드의 콘서트장에 도착한 것 같고, 약간은 심드렁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공연을 보러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겪은 바를 읽으며 나 또한 갑자기 슬램을 시작한 사람들로부터 튕겨져 나오던 때의 패배감, 또래 음악가가 그 어떤 방해 없이 편안히 노래하고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느껴졌던 기억도 떠올랐다. 하닙 압두라킵은 음악의 내부로 마냥 파고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깥과 안을 두루 살피며 음악이 삶의 한순간을 어떻게 관통하는지를 주저 없이 쓴다. 그런 그의 글은 음악 너머, 음악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다양한 힘과도 닮아 있었다.
또 한 권의 책은 데이먼 크루코프스키가 지은 <다른 방식으로 듣기>다. 이 책은 귀를 활짝 열어 음악과 소리를 ‘듣는’ 행위를 적극 다룬다. 이 책이 듣기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는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표지 바로 다음장에는 서지 정보나 텅 빈 페이지 대신 본문이 있었다. ‘기술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테이프 덱과 믹싱 보드, 마이크가 있었죠. 전부 정말이지 마법 같았습니다….’ 몇 장을 더 넘겨본 뒤에야 이 책이 팟캐스트 프로그램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고, 책은 표지에 적힌 문장들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을 집어든 순간, 내가 듣든 듣지 않든 책은 이미 말하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마음대로 여닫을 수 없어서 들려오는 소리를 속수무책으로 들어야만 했던 귀의 역사가 책 위에서 이번에는 눈을 위한 버전으로 펼쳐지는 듯했다. 책을 읽는 동안 누군가 녹음실 마이크 앞에서, 때로는 녹음기를 들고 도시를 쏘다니며 떠드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책에서는 수많은 목소리와 음악과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고, 나는 읽기와 듣기의 경험이 어디까지 겹쳐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단숨에 책을 듣고, 읽었다.
음악과 한참 멀리 떨어진 글을 읽거나 쓸 때면,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건축에 대해 춤을 추는 것과 같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음악에 관한 글쓰기 자체가 무력하다는 것을 말할 때 종종 언급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시끌시끌하고 활기 넘치는 이야기들은 함성과 함께 휩쓸려갔던 음악 경험을 다시 불러오고, 늘 들려오고 있었지만 제대로 듣지 못했던 음악과 소리들을 우리의 귓가에 다시 데려다 놓는다. 나는 여전히 건축 앞에서 춤을 추지만, 어떤 이들은 음악 가까운 곳에서, 음악과 닮은 글을 가뿐히 써내고야 만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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