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노인은 왜 차별 받는가” 은퇴자협회 22년 대표의 답은…[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2023. 4. 22. 03:02
[이런 인생 2막]주명룡 대표
뉴욕에서 사업가로 승승장구… 고국 돌아와 노인운동에 온 힘
선진 은퇴제도와 문화 전파… 젊은 세대 배려해야 존경받아
‘봉사받지 말고 봉사하라’ 주장… 사비 수십억원 들여 협회 운영
뉴욕에서 사업가로 승승장구… 고국 돌아와 노인운동에 온 힘
선진 은퇴제도와 문화 전파… 젊은 세대 배려해야 존경받아
‘봉사받지 말고 봉사하라’ 주장… 사비 수십억원 들여 협회 운영
일찌감치 100세 카페에 모셔야 했던 분인데, 너무 늦었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KARP) 대표(78) 얘기다. 2000년대 초 ‘노령 사회를 선도하는 NGO’를 내걸고 활동하던 그를 취재현장 여기저기서 마주친 적이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던 ‘그때 그 NGO 관계자’ 중 상당수가 제도 정치권으로 진출했지만 오랜만에 들여다본 은퇴자협회는 여전했다. 과한 정치 색도 없고 정부 지원 없이 회비와 기부금만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반면 그의 사재가 마구 들어갔다는 게 함정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던 ‘그때 그 NGO 관계자’ 중 상당수가 제도 정치권으로 진출했지만 오랜만에 들여다본 은퇴자협회는 여전했다. 과한 정치 색도 없고 정부 지원 없이 회비와 기부금만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반면 그의 사재가 마구 들어갔다는 게 함정이다).
13일 서울 광진구의 상가건물 지하에 자리한 KARP 사무실을 찾았다. 천장에서 물이 새기도 하고 화장실도 없는 90여 평 공간은 각종 책자와 서류가 빼곡한 사무실과 회의실, 강의 공간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장노년층 위한 다양한 제도 도입에 한몫
대한은퇴자협회는 1월 15일 창립 21주년을 맞았다. 그사이 연령차별금지법, 주택연금, 정년 연장, 기초노령연금 등 시니어 관련 제도들이 도입된 데는 그가 기여한 몫이 적지 않다.
―가장 보람 있다고 꼽는 업적은 뭔지요.
“주택연금이죠. 2003년 미국의 역(逆)모기지 제도를 도입하자고 당시 재정경제부에 제안서를 전달했는데, 감감무소식이더니 2006년 주택금융공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며칠 뒤 미국에 출장 가려 하니 관련 섭외를 해달라고요.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연락을 취해 일정을 짜줬고, 대여섯 명이 출장을 다녀오더니 6개월 만에 법안을 만들어내더군요.”
2007년 7월 실시된 주택연금 제도는 사실 실수요자가 많아진 요즘 더 주목받고 있다.
주로 한국 사회에 생소한 미국 제도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지금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2002년 5월 협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해 연령 차별금지 권고문을 요청하자 담당자는 “나이 차별이 무슨 차별이냐”며 반려했다. 미국에서 1960년대에 제정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이 21세기 한국에서는 개념조차 이해할 수 없는 딴 세상 얘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2009년에야 ‘고령자고용촉진법’에 연령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갔다. 7년을 싸운 셈이다.
이 밖에 협회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서울시의 중장년 생애 설계를 돕는 50+시스템을 만드는 기초를 제공했다. 정년 연장의 경우 창립 초기부터 줄기차게 65세를 주장해왔다. 한국 기업에서 은퇴 교육이 전무하다며 ‘타오름 아카데미’라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기도 하다. 2003년 시작한 ‘YOU(Young Old United)’ 세대통합 운동은 장청 세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것을 지향한다.
●한국에서 NGO활동을 한다는 것은
KARP는 초기에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2002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창립총회에는 김원길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 미국은퇴자협회(AARP) 테스 캔자 회장, 주한 미국대사관 공사, 문태준 한국사회복지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서울 마포에 월세 1000만 원이 넘는 남부럽지 않은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 18명을 뽑았다.
―배후에 대단한 스폰서가 있는가 했습니다.
“스폰서가 저였어요. 사재를 투입했지요. 사무실에 전화기를 100대나 놓았습니다. 미국에서 본 은퇴자협회 느낌을 살리려고요(웃음). 몇 년 투자하면 잘 굴러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무모했지요.”
해마다 6억 원씩 적자가 났고, 3년쯤 지나자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큰일났구나….’ 결국 사무실을 현재의 광진구 상가건물 3층으로 옮겼고, 3년 전에는 지하층으로 내려왔다.
―지금 협회 살림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저희 연회비가 10만 원입니다. 전국 회원 18만 명이라고 하고는 있는데…. 진성회원(회비내는 회원)이 1%인 1800명만 돼도 만세를 부르겠어요. 운영비 마련을 위해 과자공장이나 카페, 식당도 운영해봤지만 잘 안 됐어요.”
―모델로 삼은 미국은퇴자협회는 회원 3800만 명, 예산 2조 원 규모로 성업 중인데요.
“가장 큰 차이는 수익 모델이죠. 1950년대 퇴직교사협회에서 시작됐던 미국 협회는 보험사가 끼면서 재정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요즘은 미국 언론이 AARP를 ‘세계에서 제일 큰 보험회사’라며 비판할 정도입니다. 저도 한국에서 보험 쪽을 알아봤는데 기존 보험회사의 지부 역할밖에 못 하게 돼 있더군요. 그걸 포기하고 나니 힘이 드는 거죠. 결국은 돈이 문제예요.”
●한국 노인이 차별받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노인 차별, 노인 경시 문화가 만연했다고 지적하곤 합니다. 한국에서 노인은 왜 차별받는다고 보십니까.
“차별받는다는 것은 약자라는 얘기입니다. 왜 약자가 되었을까요. 스스로 힘을 키우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차별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똑똑해져야 합니다. 다만 책임을 다하면서 권리를 주장해야 해요.”
여기에는 뉴욕한인회장으로 일하면서 미국 정가를 상대할 때의 경험이 깊이 녹아들어가 있다.
“우리 노인들은 대접 받으려는 생각이 강한 반면에 스스로 기여하려는 생각은 못 하는 경향이 있어요. 민주시민 훈련이나 사회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거죠. 하지만 세상이 변했어요. 노인이 된 것을 벼슬처럼 여기려는 순간 무시당하게 되지요.”
그에 따르면 미국은퇴자협회의 모토는 ‘봉사받지 말고 봉사하라(Serve, not to be served)’다. 고령자가 되어서도 사회에 기여하고 본인 몫의 책임을 지면서 권리를 찾는다는 자세다. 반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지 못하면 공짜를 바라고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기적이고 자녀 세대를 배려하지 않는 노인이라면 욕먹을 수밖에 없지요.”
그 예로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을 들었다.
“(무임승차를 주장하는 측은) 어차피 다니는 전철에 몇 명 더 탄다고 무슨 문제냐고 하지만 그게 다 비용이 발생합니다. 무임승차는 수혜 연령대를 높이고 차등화해야 합니다. 장애인 등은 무료, 고령자는 할인제로 단돈 얼마라도 내고 타야 하지요. 왜 이런 걸로 후배 세대에게 부담을 줍니까.”
같은 이유로 회원들에게 ‘배벌사’를 권유하고 있다.
“‘배우고 벌고 살자’를 줄인 말이죠. 뭐 대단한 일자리를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국민연금과 합쳐 월 150만 원 정도 확보되는 일자리면 족하지요. 은퇴자들에게도 강조합니다. 큰돈 벌려고 욕심내지 말라, 절반은 봉사, 절반은 소일거리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일하자고.”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자 편입으로 노인의 색깔이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모쪼록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야죠. 후배들은 잘할 거라고 봅니다.”
●“협회 대표 찾습니다”
20대에는 대한항공에 들어가 9년간 일했다. 30대에 미국 뉴욕 맨해튼에 정착했다. 맥도널드 매장을 4개나 경영하며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서 성공했는데 국내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지요.
“어떻게 하면 보람 있고 의미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AARP를 발견했죠. 1996년 뉴욕에 대한은퇴자협회를 설립했는데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고령화와 경제 위기를 함께 맞은 한국에 도움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지요.”
귀국 몇 년 만에 미국 국적을 버렸다. ‘정치하려고 왔다’거나 ‘좀 하다 돌아갈 사람’이란 시선이 많자 아예 정리해버린 것이다. 그간 협회 활동에 사재 수십억 원을 털어넣었다. 미국에서 가져오는 돈으로 안 되자 충남 아산에 있던 물려받은 땅을 야금야금 팔았다. 나중에는 선산마저 없애버렸다.
그는 얼마 전부터 ‘협회를 대표할 인물을 찾는다’는 서류를 들고 다닌다.
“떠날 때를 알아야지요. 그런데 여러 사람이 관심을 보이다가도 ‘돈이 안 된다, 오히려 본인 돈을 써야 할 거다’라는 말에 손사래를 칩니다.”
요즘은 협회가 괜찮은 기업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후임자가 찾아질 때까지 힘 닿는 한 하던 일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사무실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어느 날 출근해 보니 내가 쓰러져 있다고 해도 놀라지 말라고. 하하.”
그가 고국에 돌아온 2000년대 초에 고령화율 7%를 갓 넘겼던 한국은 2025년 20%의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회 환경은 이제야 그가 뿌려놓은 씨앗들이 꽃피울 환경이 돼 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준비된 상태로 고령사회를 맞이한 데는 그의 노고도 한몫 보탠 것 같다. 영예로운 인생 후반을 꿈꿨던 그의 마지막 댄스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장노년층 위한 다양한 제도 도입에 한몫
대한은퇴자협회는 1월 15일 창립 21주년을 맞았다. 그사이 연령차별금지법, 주택연금, 정년 연장, 기초노령연금 등 시니어 관련 제도들이 도입된 데는 그가 기여한 몫이 적지 않다.
―가장 보람 있다고 꼽는 업적은 뭔지요.
“주택연금이죠. 2003년 미국의 역(逆)모기지 제도를 도입하자고 당시 재정경제부에 제안서를 전달했는데, 감감무소식이더니 2006년 주택금융공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며칠 뒤 미국에 출장 가려 하니 관련 섭외를 해달라고요.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연락을 취해 일정을 짜줬고, 대여섯 명이 출장을 다녀오더니 6개월 만에 법안을 만들어내더군요.”
2007년 7월 실시된 주택연금 제도는 사실 실수요자가 많아진 요즘 더 주목받고 있다.
주로 한국 사회에 생소한 미국 제도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지금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2002년 5월 협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해 연령 차별금지 권고문을 요청하자 담당자는 “나이 차별이 무슨 차별이냐”며 반려했다. 미국에서 1960년대에 제정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이 21세기 한국에서는 개념조차 이해할 수 없는 딴 세상 얘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2009년에야 ‘고령자고용촉진법’에 연령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갔다. 7년을 싸운 셈이다.
이 밖에 협회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서울시의 중장년 생애 설계를 돕는 50+시스템을 만드는 기초를 제공했다. 정년 연장의 경우 창립 초기부터 줄기차게 65세를 주장해왔다. 한국 기업에서 은퇴 교육이 전무하다며 ‘타오름 아카데미’라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기도 하다. 2003년 시작한 ‘YOU(Young Old United)’ 세대통합 운동은 장청 세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것을 지향한다.
●한국에서 NGO활동을 한다는 것은
KARP는 초기에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2002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창립총회에는 김원길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 미국은퇴자협회(AARP) 테스 캔자 회장, 주한 미국대사관 공사, 문태준 한국사회복지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서울 마포에 월세 1000만 원이 넘는 남부럽지 않은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 18명을 뽑았다.
―배후에 대단한 스폰서가 있는가 했습니다.
“스폰서가 저였어요. 사재를 투입했지요. 사무실에 전화기를 100대나 놓았습니다. 미국에서 본 은퇴자협회 느낌을 살리려고요(웃음). 몇 년 투자하면 잘 굴러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무모했지요.”
해마다 6억 원씩 적자가 났고, 3년쯤 지나자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큰일났구나….’ 결국 사무실을 현재의 광진구 상가건물 3층으로 옮겼고, 3년 전에는 지하층으로 내려왔다.
―지금 협회 살림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저희 연회비가 10만 원입니다. 전국 회원 18만 명이라고 하고는 있는데…. 진성회원(회비내는 회원)이 1%인 1800명만 돼도 만세를 부르겠어요. 운영비 마련을 위해 과자공장이나 카페, 식당도 운영해봤지만 잘 안 됐어요.”
―모델로 삼은 미국은퇴자협회는 회원 3800만 명, 예산 2조 원 규모로 성업 중인데요.
“가장 큰 차이는 수익 모델이죠. 1950년대 퇴직교사협회에서 시작됐던 미국 협회는 보험사가 끼면서 재정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요즘은 미국 언론이 AARP를 ‘세계에서 제일 큰 보험회사’라며 비판할 정도입니다. 저도 한국에서 보험 쪽을 알아봤는데 기존 보험회사의 지부 역할밖에 못 하게 돼 있더군요. 그걸 포기하고 나니 힘이 드는 거죠. 결국은 돈이 문제예요.”
●한국 노인이 차별받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노인 차별, 노인 경시 문화가 만연했다고 지적하곤 합니다. 한국에서 노인은 왜 차별받는다고 보십니까.
“차별받는다는 것은 약자라는 얘기입니다. 왜 약자가 되었을까요. 스스로 힘을 키우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차별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똑똑해져야 합니다. 다만 책임을 다하면서 권리를 주장해야 해요.”
여기에는 뉴욕한인회장으로 일하면서 미국 정가를 상대할 때의 경험이 깊이 녹아들어가 있다.
“우리 노인들은 대접 받으려는 생각이 강한 반면에 스스로 기여하려는 생각은 못 하는 경향이 있어요. 민주시민 훈련이나 사회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거죠. 하지만 세상이 변했어요. 노인이 된 것을 벼슬처럼 여기려는 순간 무시당하게 되지요.”
그에 따르면 미국은퇴자협회의 모토는 ‘봉사받지 말고 봉사하라(Serve, not to be served)’다. 고령자가 되어서도 사회에 기여하고 본인 몫의 책임을 지면서 권리를 찾는다는 자세다. 반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지 못하면 공짜를 바라고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기적이고 자녀 세대를 배려하지 않는 노인이라면 욕먹을 수밖에 없지요.”
그 예로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을 들었다.
“(무임승차를 주장하는 측은) 어차피 다니는 전철에 몇 명 더 탄다고 무슨 문제냐고 하지만 그게 다 비용이 발생합니다. 무임승차는 수혜 연령대를 높이고 차등화해야 합니다. 장애인 등은 무료, 고령자는 할인제로 단돈 얼마라도 내고 타야 하지요. 왜 이런 걸로 후배 세대에게 부담을 줍니까.”
같은 이유로 회원들에게 ‘배벌사’를 권유하고 있다.
“‘배우고 벌고 살자’를 줄인 말이죠. 뭐 대단한 일자리를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국민연금과 합쳐 월 150만 원 정도 확보되는 일자리면 족하지요. 은퇴자들에게도 강조합니다. 큰돈 벌려고 욕심내지 말라, 절반은 봉사, 절반은 소일거리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일하자고.”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자 편입으로 노인의 색깔이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모쪼록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야죠. 후배들은 잘할 거라고 봅니다.”
●“협회 대표 찾습니다”
20대에는 대한항공에 들어가 9년간 일했다. 30대에 미국 뉴욕 맨해튼에 정착했다. 맥도널드 매장을 4개나 경영하며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서 성공했는데 국내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지요.
“어떻게 하면 보람 있고 의미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AARP를 발견했죠. 1996년 뉴욕에 대한은퇴자협회를 설립했는데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고령화와 경제 위기를 함께 맞은 한국에 도움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지요.”
귀국 몇 년 만에 미국 국적을 버렸다. ‘정치하려고 왔다’거나 ‘좀 하다 돌아갈 사람’이란 시선이 많자 아예 정리해버린 것이다. 그간 협회 활동에 사재 수십억 원을 털어넣었다. 미국에서 가져오는 돈으로 안 되자 충남 아산에 있던 물려받은 땅을 야금야금 팔았다. 나중에는 선산마저 없애버렸다.
그는 얼마 전부터 ‘협회를 대표할 인물을 찾는다’는 서류를 들고 다닌다.
“떠날 때를 알아야지요. 그런데 여러 사람이 관심을 보이다가도 ‘돈이 안 된다, 오히려 본인 돈을 써야 할 거다’라는 말에 손사래를 칩니다.”
요즘은 협회가 괜찮은 기업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후임자가 찾아질 때까지 힘 닿는 한 하던 일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사무실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어느 날 출근해 보니 내가 쓰러져 있다고 해도 놀라지 말라고. 하하.”
그가 고국에 돌아온 2000년대 초에 고령화율 7%를 갓 넘겼던 한국은 2025년 20%의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회 환경은 이제야 그가 뿌려놓은 씨앗들이 꽃피울 환경이 돼 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준비된 상태로 고령사회를 맞이한 데는 그의 노고도 한몫 보탠 것 같다. 영예로운 인생 후반을 꿈꿨던 그의 마지막 댄스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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