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제 국·영·수 말고 언·수·디·리에 집중하자”
“지금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은 적응력, 불확실성 대응력, 자신감인데 학교에선 가르치지 않습니다.”
21일 조선일보가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주최한 ‘2023 미래사회 교육 컨퍼런스’에서 송승헌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가 ‘인재 육성, 공교육 개혁의 핵심’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송 대표는 맥킨지 연구소가 2019년 전 세계 1만8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미래 인재들이 갖춰야 할 역량을 4분야, 56개로 나눠 정리한 것을 발표했다.
56개 역량 중 ‘취업’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 것은 ‘적응력’이었다. 적응력이 높으면 취업 가능성이 24% 올라갔다. 그다음은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18%), 메시지 종합 이해력(12%), 성취 지향성(11%) 순이었다. ‘고소득’과 관계가 있는 역량은 업무 계획 능력(27%), 조직 인식(23%), 자신감(22%) 순으로 조사됐다. ‘직업 만족도’와 연결된 역량의 경우 자기 동기 부여(23%),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20%), 자신감(20%) 순이었다.
그러나 기업에서 필요한 이런 역량과 학력 수준은 별 관계가 없었다. ‘신뢰 고취 능력’이나 ‘겸손함’ 등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오히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 대표는 “결국 취업도 잘하고 성과도 잘 내고 스스로 만족하는 인재들은 인지·분석 능력보다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과 자신감 같은 ‘소프트(soft) 파워’를 갖고 있었다”면서 “학교에서도 단순 지식보다 이런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공교육부터 디지털 교육을 ‘국·영·수’ 수준으로 해야 하고, 지식만큼 ‘태도’ 교육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국·영·수’ 말고 ‘언·수·디·리(언어·수학·디지털·리더십)’에 집중하자”고 제안했다.
국내 주요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도 지식보다는 변화 의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등을 중시했다. 황순배 네이버 인사총괄은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세션에서 “테크 산업에서 변하지 않으면 무조건 실패한다”면서 “네이버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는 열정이 있고 성공 경험조차도 내려놓을 수 있는 의지가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인영 LG에너지솔루션 인재확보 이사는 “겸손한 자세로 세계 최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실패해도 해내고야 만다는 자세,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축사에서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우리는 현재 복합 위기와 불확실성에 놓여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집단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면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미래 세대를 키워내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국가·사회 수요에 따라 규격화한 인재를 키워냈지만 이젠 이런 플랜테이션(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농업) 시대는 끝났다”면서 “앞으로 교육 혁신은 무질서 속에서 공존과 협업이 존재하는 ‘자연림’을 키우는 것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유지범 총장도 축사에서 “이제는 학생의 꿈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면서 “대학 입학까지만 죽어라 공부하는 시대는 마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