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5〉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갓 씻은 젓가락
한 켤레
나란히 올려두고
기도의 말을 고를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기도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반쪽 달이 창을 넘어
입술 나란히 귓바퀴를 대어올 때
영원과 하루가 나란하다
(하략)
―육호수 시인(1991∼)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 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가 안식을 돕고, 안식이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주당 돈봉투 의혹’ 강래구 구속영장 기각…급물살 타던 수사 제동
- “도쿄 근처 전통가옥을 3천만 원에 샀어요”… 빈집 느는 日[횡설수설/박중현]
- 中 “대만문제 불장난땐 타죽어”…러 “무기공급은 적대행위”
- 尹 “우크라 지원, 일반론적 얘기”…이재명 “국회동의 입법 추진”
- LH, 전세사기 주택 매입…피해자에 시세 30~50% 임대
- 여야, 전세사기 피해자 ‘우선매수권’ 27일 처리 미지수
- 소외된 환자를 떠나지 않았던 위대한 의사… ‘바로 우리展’에서 만나는 이종욱·이태석
- “의원에게도 네이버 비판은 난제…가두리 방식 영업으로 업계 황폐화”
- 들쑥날쑥 최저임금 인상… 예측 가능한 결정체계 필요하다[사설]
- 오이 섭취했더니…몸이 이렇게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