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전세사기 주택 매입해 피해자에 임대 추진
“공공매입 임대 활용” 내일 당정협의
지방 포함 3만5000채 매입 가능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 제도를 활용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사들인 뒤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는 당초 공공매입에 선을 그어왔지만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직접 매입하는 방안을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오후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긴급회의에서 “LH에 이미 예산과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매입임대 제도를 확대 적용해 전세사기 피해 물건을 최우선 매입 대상으로 지정하겠다”며 “이를 범정부 회의에서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LH는 올해 2만6000채의 주택을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는데 이를 최대한 피해주택 매입에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지방공사의 매입임대주택 예정 물량 9000채까지 하면 총 3만5000채를 매입할 수 있다. 매입임대주택 평균 가격이 채당 2억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최대 7조 원가량을 피해 주택 매입에 투입하게 된다.
단,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모두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포기할 경우에만 LH가 대신 매입한다. 집을 낙찰받지 않더라도 피해 임차인이 원할 경우 주거권을 보장해주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LH 등 지방공사가 임차인으로부터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경매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집을 낙찰받으면 해당 임차인에게 시세의 30∼50% 수준으로 임대한다.
원 장관은 “올해 매입임대주택 사업 물량을 피해 주택 매입에 배정하면 피해 주택을 상당 부분 매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래도 부족하다면 추가 물량을 배정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23일 고위 당정협의를 통해 최종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LH, 전세사기 집 매입해 시세 30~50% 임대… 선정기준 논란일듯
전세사기 주택 매입임대제도 활용
“제3자 낙찰받아 쫓겨나는일 없게”… 정부, 임차인이 보유한 우선매수권
LH 양도 받을수 있게 법개정 나서… 기존 피해자와 형평성 논란 가능성
● LH가 피해 주택 매입해 시세 최저 30%에 임대
원래 LH의 매입임대주택은 공공이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빌라나 아파트 등 기존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제도다. 임대료가 시세 대비 30∼50% 수준으로 저렴하다. 정부는 올해 예정된 매입임대주택 물량을 피해 주택 매수에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LH가 매입에 나서는 주택은 경매 절차에 들어간 전세사기 피해 주택 중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은 주택이다. 임차인 중에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경락 대출 이자가 부담스럽거나 자기 자본이 없어 우선매수권을 쓰지 못하는 경우 LH에 공공매입을 요청할 수 있다.
정부가 ‘공공매입’ 카드를 꺼내 들긴 했지만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공공매입특별법’과는 다르다. 공공매입특별법은 공공매입을 통해 정부가 피해자의 보증금을 대신 반환하는 것이지만 LH 매입임대는 보증금을 반환해 주지는 않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후순위 임차인 등 당장 집에서 나가야 할 상황이 생기는 임차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라며 “보증금을 대신 반환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했다.
● 전세사기 주택 대상 모호 등 우려도
정부는 임차인이 보유한 우선매수권을 LH가 양도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선다. 국토부는 2007년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신설해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임차인이 원할 경우 우선매수권을 LH나 지방공사에 양도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법 적용 주택은 공공임대주택으로 현재 전세사기 피해 주택과 다르지만 LH의 역할은 같다. LH가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낙찰을 받으면 세입자에게 임대를 내주게 된다.
LH는 올해 매입임대 사업 예산으로 5조5000억 원을 확보한 상태여서 사업 추진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매입임대 방식으로 피해 주택을 매입하면 재원을 따로 쓰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부 임대기간과 임대료는 23일 당정협의 등 추가 논의를 거쳐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자들은 일단 환영했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임대 대상 등이 까다로워 피해 보는 경우가 없도록 정책을 세심히 설계해달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지 등이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주거권 차원에서 도움이 되겠지만 어떤 주택을 먼저 매입할지 가려내는 것 등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장관은 “피해자 개인이 처한 상황과 희망 사항을 고려해 입법 과정에서 균형 있게 설계하겠다”고 말했다.
● 저금리 대환대출 등 금융·법률 지원 시작
한편 국토부는 24일부터 우리은행을 통해 주택도시기금의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연 1.2∼2.1% 수준의 저리로 대환 대출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사를 가지 않고 피해 주택에 그대로 살아도 대상이 된다. 금융권과 법조계의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신한은행은 대한법률구조공단에 15억 원을 기부했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는 긴급대책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상담 변호사단을 구성해 거의 무제한으로 (법률상담) 서비스를 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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