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러 파상공세… 尹외교 ‘신냉전’ 시험대

신진우 기자 2023. 4. 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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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24일 방미 출국 앞 北中러와 동시충돌 ‘한반도 격랑’
韓, 中대사 불러 항의하자 中도 맞불… ‘대만 갈등’ 격화
왼쪽부터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윤석열 대통령, 바이든 미국 대통령.
26일(현지 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와 북-중-러 관계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군사정찰위성 1호기 완성 사실을 밝힌 북한은 24일 출국하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전후해 도발 버튼을 누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을 겨냥해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밝힌 윤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노골적으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중 갈등 심화 속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격화된 신냉전 기류 속에 한국도 본격적으로 편입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21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윤 대통령이 공을 들인 한일 관계까지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는 것. 정부 고위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취임 1년을 앞둔 윤석열 정부가 진정한 외교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신냉전 기류를 틈타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13일 미 본토까지 핵투발이 가능한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날리더니 하루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미를 겨냥해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18일에는 군사정찰위성의 “계획된 시일 내 발사”까지 공언했다.

중국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상징인 친강(秦剛) 외교부장(장관)은 21일 “최근 중국이 무력이나 협박으로 대만해협의 현상을 일방적으로 바꾸려고 시도한다는 등의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면서 “이러한 발언은 최소한의 국제 상식과 역사 정의에 위배되며 그 논리는 황당하고 결과는 위험하다”고 쏘아붙였다. 앞서 윤 대통령이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한 “(대만해협 긴장 고조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발언을 겨냥한 것.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외교부가 전날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한 것과 관련해 이날 “한국 측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면서 외교 경로로 항의한 사실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발언을 둘러싼 긴장도 증폭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러시아의 보복 가능성이 커진 게 사실”이라며 “러시아에 거주 중인 한인 피해 등을 우려해 주요 지역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미국은 오히려 러시아에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러시아가 한국에 보복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 관련해 “우리는 한국과 조약 동맹을 맺고 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매우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尹-바이든 ‘대만-우크라’도 논의… 대통령실 “中-러에 할말은 할것”

北中러 파상공세… 尹외교 시험대
“文정부 ‘전략적 모호성’ 틀 바꿔야… 한미일 공조가 더 중요해진 시점”
中-러와 갈등 속 정면돌파 나서
“한반도 안보에 위험한 선택” 우려도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러시아와 신경전을 펼친 데 이어 중국과는 대만 문제를 놓고 강공을 주고받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당당한 외교는 윤석열 정부 출범 때부터 내걸었던 핵심 기조”라면서도 “한미일 공조가 더욱 중요해진 시점인 건 맞다”고 밝혔다. 정치·외교적 입지 강화를 넘어 경제적 실익 등까지 고려할 때 중-러에 각을 세우더라도 한미 동맹은 물론이고 한일 관계에 더 힘을 쏟을 때라고 보고 있다는 것. 윤 대통령이 국빈 방미를 앞둔 만큼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발을 맞추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중-러와 대결 구도 속 정면 돌파에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국이 신냉전 구도에 한 발 더 들이게 됐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미국 중심 동맹 열차의 앞자리에 올라타야 동맹 구도에서 소외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과 “북한과 대치 중인 한반도 특수성을 고려할 때 중-러와 각을 세우는 건 위험한 선택”이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 “文정부 저자세 외교…할 말 하는 게 정상적 관계”

26일(현지 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가운데 대통령실은 대만 문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을 두고 중국, 러시아와 동시에 긴장이 고조된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의 로이터 인터뷰나 중-러 양국 반발에 따른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 등이 이례적인 건 아니란 입장이다. 러시아의 대량 학살 등 발생 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고려한다거나 대만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 국제규범이나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원칙이라는 것.

다만 대통령실은 최근 중-러에 대한 윤 대통령 발언이나 정부 대응이 문재인 정부는 물론이고 지난해 새 정부 출범 뒤 유지된 기조와 비교해도 다소 강경해진 건 인정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의 다른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땐 ‘중국은 큰 산이고 우리는 작은 봉우리’라는 식의 저자세 외교를 펼쳐왔다”며 “할 말은 하는 게 정상적인 관계”라고 강조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제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를 상대할 때도 국민들이 보기에 비정상적인 상황은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최대 관심사인 대만 문제나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 의도적으로 적극 대응해 바이든 행정부에 밀착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문재인 정부 당시 동북아 외교정책의 틀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선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미 간 협력, 한미일 안보 강화, 우크라이나 지원 등 문제와 관련해 진전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이슈를 말한다고 할 때 우크라이나 현상, 국제질서 동향 등을 (정상들이) 말씀하실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소식통은 “심화된 신냉전 구도의 색깔이 다양한 의제에 묻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미중 사이 애매한 태도, 글로벌 시장에서 소외”

윤석열 정부와 중-러 간 관계를 보는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가 이젠 ‘적대적 행위’를 하는 국가로 우리를 인식한다는 것”이라며 “걱정스럽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북한에 대한 첨단 무기 지원 카드까지 꺼낼 수 있다는 등 한국을 압박한 것을 두곤 “경계감과 반감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한국이 신냉전 구도에 편입되는 상황에 대해선 “대미 공조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서방과 발을 맞추는 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봤다.

박종수 전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은 최근 러시아에서 나온 위협 발언들이 “한국을 적국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어 “현지 교민이나 러시아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보복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북-중-러는 모두 세계적인 핵 강국”이라며 “미국의 핵우산만 믿는 건 무책임하다”고도 했다.

반면 다른 외교 소식통은 “서방 동맹을 이끄는 미국이 중-러에 대놓고 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 최소한의 파이도 챙기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때처럼 ‘회색 지대’ 전략으로 일관하면 당장 글로벌 시장에서부터 소외될 것”이라고 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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