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가진 자, 세계 패권 거머쥐다
김수미 2023. 4. 22. 01:03
대항해 시대 연 풍력에너지
유럽國 영토 확장… 국력 상승
석탄, 인간의 노동 규모 확산
석유, 열강 ‘전략적 도구’ 부상
중동 향한 오일 외교 본격화
화석 연료 대체 원자력 주목
원전 폭발… 또 다른 재앙 낳아
유럽國 영토 확장… 국력 상승
석탄, 인간의 노동 규모 확산
석유, 열강 ‘전략적 도구’ 부상
중동 향한 오일 외교 본격화
화석 연료 대체 원자력 주목
원전 폭발… 또 다른 재앙 낳아
에너지 세계사/브라이언 블랙/노태복 옮김/씨마스21/2만2000원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곧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에너지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전 세계가 러시아를 규탄하며 경제 제재로 압박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전쟁을 이어가며 세계를 에너지 위기로 몰아넣었다. 에너지 가격의 폭등은 전 세계 산업 전반에 타격을 주며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도중 총칼에 맞아 사망하는 군인보다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로 사망하는 민간인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다.
에너지는 인류 전쟁의 역사에 빠지지 않는다. 전쟁의 목적이 되기도 했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무기이기도 했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인간 역사의 대부분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불평등으로 인한 충돌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에너지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충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너지는 생존의 필수요소일 뿐 아니라 빈부를 가르고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패권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기후 재앙을 맞닥뜨리면서 전 세계는 더 이상의 화석 연료 사용이 곧 인류 전체의 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신간 ‘에너지 세계사’는 에너지 사용의 획기적 전환이 이루어진 순간마다 인류 역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며 우리의 에너지 사용 현주소와 그 대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국가의 운명을 바꾼 에너지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 것은 최초의 에너지원인 불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의 사용은 난방과 요리, 사냥 등에 활용되며 농업혁명으로 이어져 자본주의와 계급을 만들어냈다.
자급자족, 내수에 만족하던 인류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데 일조한 것은 바람의 에너지를 이용한 범선이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선원이 최초의 탐험가로 알려졌지만, 그보다 50년 앞선 1400년 초 중국 명나라 황제 영락제가 사상 최대 해군 함대를 구축해 인도, 아라비아, 동아프리카를 탐험했다. 그러나 중국은 그저 문명세계를 여행하며 조공이나 받을 생각이었지 정복하려 하지 않았고, 광대한 자국 영토 개발과 내홍 수습에만 집중했다.
반면 새로운 항해술과 세계관으로 무장한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신세계의 자원들을 이용해 경제 발전과 국력을 키워갔다. 또 풍력을 이용해 어업을 발전시키고 바다를 둘러싼 패권 다툼도 시작했다.
◆에너지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전쟁
대항해 시대를 열며 중국과 유럽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이 풍력에너지였다면, 유럽의 발전을 가속화하고 오늘날 국제적 역학관계를 결정한 것은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다.
산업혁명 시대에 나무와 숯으로 새롭게 등장한 기계들을 작동시키는 데 한계가 오고 1500년대 심각한 목재 부족에 시달리자 석탄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석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동의 양, 즉 노동의 규모와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에너지의 대량공급은 인간 생활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에너지가 가장 풍부했던 미국은 가정에서 전기를 이용하면서 진공청소기, 세탁기, 냉장고가 빠르게 보급됐다. 에너지는 미국과 나머지 세계 사이 간극을 더 벌려놨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더 키웠다.
1920년 석유 공급이 풍부해지면서 에너지는 열강의 전략적 도구로 부상했다. 미국과 영국은 가장 적극적으로 석탄과 석유 개발에 앞장서며 세계 최강의 해군력 확보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 세 명당 말 한 마리가 배정됐으나 이후 가스를 사용하는 트럭과 탱크, 석유를 사용하는 선박과 항공기로 바뀌는 에너지 전환이 일어났다. 장갑차와 비행기, 전투기 등도 개발되면서 1차 세계대전에 석유 소비량은 50% 증가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원유는 전쟁 이유가 되기 시작했다. 일본이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인 진주만을 공격한 것도 일본이 석유사용량의 80%를 의존하고 있는 미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 공급을 중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1916년 독일의 석유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독일이 의존하고 있던 루마니아 유전을 폭발시켰다. 석유는 전장에서 생명선 역할을 하는 ‘전쟁의 피’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부터는 중동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중동의 석유를 노린 미국과 영국은 치열한 경쟁 끝에 영국은 이란과 이라크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로 진출하기로 협정을 맺는 등 각국의 오일 외교가 본격화됐다. 이때 원자력 에너지가 석탄, 석유 같은 한정적인 천연자원과 달리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받으며 등장했지만,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이 벌어지면서 에너지 재앙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에너지는 국제사회의 경제적 패권을 좌우했다. 뿐만 아니라 화석연료를 태워 가능했던 지난 250년의 발전이 21세기 기후변화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각국은 에너지 공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장·단기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쇄빙선은 남극으로 향했고, 러시아는 북극해 주변을 넘보고 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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