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전·광산 등 적극 투자, 버핏도 종합상사 ‘러브콜’

황건강 2023. 4. 2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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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명 받는 종합상사
“과거엔 이 회사들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단순히 덩치 큰 회사라 생각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최근 일본 5대 종합상사 투자를 회고한 발언이다. 2년 전만 해도 실패한 투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들 기업은 지난해 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등 속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다. 워렌 버핏은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통해 일본 5대 상사 투자 지분을 5%에서 7.4%로 높였고, 최근 추가 투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종합상사의 사업 모델은 제조업체의 직수출과 현지생산 증가, 전자상거래 확대 등으로 한물 간 것으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재평가받은 이유는 표면적으론 지난해 글로벌 원자재 급등이다. 예컨대 일본 최대 종합상사인 미쓰비시상사는 2022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3분기(2022년 4월~12월)까지 구리 광산 개발 등이 포함된 금속자원 사업에서 전년 동기 대비 46% 늘어난 2조8785억엔(약 28조7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천연가스 사업 매출도 1조5465억엔(약 15조4600억원)으로 전년 동기(7630억엔) 대비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급등을 등에 업은 ‘반짝 실적’만으로는 버핏이 추가 투자 의사를 밝히지 않았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실제로 지난해 말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하는 등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서자, 일본 종합상사들의 공급망 관리 능력이 주목받고 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일본에서도 한 때 종합상사 무용론이 나오기도 했으나 일본 종합상사들은 중계 무역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투자에 나서며 한 단계 진화했다”며 “공급망에서 중요한 지점에 지분 투자하거나 기업을 인수하는 식으로 공급망 전반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망 전반에 지배력을 높인 점은 종합상사 재조명의 진짜 이유로 꼽힌다. 사진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미얀마 가스전. [사진 포스코인터내셔널],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미쓰비시상사와 일본 종합상사 업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다투는 이토추상사의 실적에서도 공급망 관리 능력이 드러난다. 에너지와 광물 등 자원 분야에서 이익의 절반 이상을 거둬들이는 미쓰비시상사와 달리 이토추상사는 비자원 비중이 80%에 이른다. 대신 이토추상사는 식량에 집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중계 무역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투자로 공급망 전반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토추상사가 2020년 지분 100%를 확보한 편의점 업체인 훼미리마트에 커피 원두와 설탕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처럼 공급망 전반에 투자하며 지배력을 높인 점은 ‘종합상사 재평가’의 진짜 이유로 꼽힌다. 대규모 자원개발과 곡물 생산, 유통을 종합상사가 담당하며 필요하다면 지분 투자나 기업 인수 등도 꺼리지 않는 것이다. 버핏이 일본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일본 종합상사를 자신의 투자 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와 ‘같은 일을 하는 곳’이라 지칭한 이유다.

종합상사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모습은 국내서도 마찬가지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LX인터내셔널 등 국내 대표 종합상사의 지난해 순이익은 각각 69.7%, 44.2% 늘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 가스전과 호주 나라브리 광산법인 등이,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 호주 등의 석탄 광산 등이 실적 효자였다. 그러나 이면을 살펴보면 적극적인 투자가 부각되는 모습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호주 천연가스 생산업체인 세넥스에너지를 인수하고, 포스코에너지를 흡수합병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올해도 지난 13일에 통합 비전을 선포한 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추가적으로 천연가스 광구를 개발하고 호주·북미·남미 등에서 식량 사업 공급망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당시 정탁 포스코인터내셔널 대표(부회장)는 “상사라는 사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종합사업회사로 새롭게 출발할 것”이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LX인터내셔널도 올해 초 한국유리공업 지분 100% 인수 작업을 완료하며 친환경 소재 사업 분야를 강화했다. 지난해에도 바이오매스(Biomass) 발전소를 운영하는 포승그린파워를 인수하는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공들이는 상황이다. 이지평 교수는 “제조업체와 달리 상사는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신재생에너지나 전기차 등 산업 트랜드에 맞춰 공급망을 확보하고 고객에게 부가가치를 줄 수 있는 투자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종합상사 사이엔 아직 격차가 크다고 진단한다. 자본력이나 인력 등 규모 면에서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미쓰비시상사의 인력 규모는 4390명에 이른다. 반면 국내 종합상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종업원 수는 1220명이다. 삼성물산(상사부문 751명)과 LX인터내셔널(384명) 등 국내 주요 업체 세 곳의 인원을 모두 더해도 일본 미쓰비시상사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인력의 차이는 전문성의 축적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인 규모뿐 아니라 정부나 공적 기관과 공유하는 정보의 차이가 상당하단 얘기다. 박 교수는 “한국 경제에 꼭 필요한 공급망과 관련한 사업만이라도 국가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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