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 공존 마법, 깃털보다 가볍고 강철보다 강한 그래핀

2023. 4. 2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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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물리학자 안드레 가임은 많은 시도 끝에 드디어 흑연에서 그래핀을 분리해 내는 방법을 발견했는데, 바로 ‘스카치테이프 분리법’이다. [사진 노벨박물관]
그래핀은 0.2나노미터(nm) 두께로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이지만 강철보다 200배나 더 강하다. 그래서 차세대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그래핀은 사실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특히 흑연 연필심에 다량으로 들어 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흑연은 여러 겹의 탄소 원자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한 겹의 원자층으로 된 것이 바로 그래핀이다. 만약 1㎜의 두께로 만들려면 약 500만 개의 그래핀을 쌓아야 한다. 이렇게 얇고 가벼운 그래핀은 상상을 초월한 놀라운 성질들을 가지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1947년부터 탄소 원자 한 겹의 물질에 대해 알려졌지만 아무도 그것을 분리해 낼 수는 없었다. 1987년 그래핀(Graphene)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아직은 흑연에서 분리해 내지는 못했지만 ‘흑연(Graphite)에서 생겨난 탄소 화합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이 단어 끝에 붙은 ‘-ene’은 그리스어 ‘에노스(ēnos)’에서 비롯된 ‘-에서 태어난 것’을 뜻하는 접미사다.

많은 시도 끝에 드디어 흑연에서 그래핀을 분리해 내는 방법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혁신적이지만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스카치테이프 분리법’이다.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의 물리학자 안드레 가임이 탄소 원자의 결합을 연구하면서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방법이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탄소 결합의 이해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고, 나노 기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응용 가능성을 가지게 했다. 가임은 그래핀을 분리해 낸 공으로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흑연서 떼어낸 단일 탄소층 ‘그래핀’

흑연이 무른 재료인 이유는 그 구성 요소인 탄소층이 힘에 의해 쉽게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탄소층 사이에 어떤 화학적 결합도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흑연에서 떼어낸 단일 탄소층인 그래핀은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인다. 그래핀은 초경량이면서도 넓은 표면적, 뛰어난 전기전도성과 강도, 열전도성을 갖추어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그래핀이 많은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특유의 성질 때문이다. 아직까지 대체될 만한 성질을 가진 재료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그래핀의 주요 특성 다섯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흑연
첫째, 그래핀은 130기가파스칼 이상의 인장 강도를 가지고 있는데, 강철보다 200배나 강하지만 단위면적당 무게는 0.77mg/m²로 초경량이다. 둘째, 그래핀은 놀라운 유연성을 지닌다. 그래핀은 탄소원자 하나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두께는 0.2나노미터에 불과하다. 이것은 1그램의 그래핀만 있으면 축구장 전체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다. 높은 강도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연해서 잘 휘어지고 쉽게 끊어지지 않고 원래 길이의 최대 20%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셋째, 그래핀은 열과 전기를 모두 잘 전달하는 뛰어난 물질이기도 하다. 흑연은 390~470W/m·K(미터·켈빈 당 와트)의 열전도도를 보이는데, 이것은 금속인 은이나 구리보다 더 높은 수치다. 다이아몬드는 흑연보다 높은 2200W/m·K의 열전도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래핀은 다이아몬드보다도 훨씬 더 높은 5300W/m·K의 열전도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열을 빠르게 발산할 수 있어 열이 많이 발생하는 전자 기기에 사용하기에 이상적이다. 방열판과 기타 냉각 시스템의 크기와 무게를 줄여 전자기기를 더 작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열전도도가 높은 재료는 전기전도도 또한 높다. 이는 열의 전달과 전자의 관여가 밀접하기 때문인데, 특히 그래핀의 경우 육각형 격자에 결합되지 않은 전자가 각 탄소 원자마다 존재한다. 이러한 자유 전자들은 마치 질량이 없는 광자처럼 움직이며 멀리 이동할 수 있다. 이렇듯 원활한 전자의 이동은 그래핀이 높은 전기전도도를 가지는 이유가 된다.

넷째, 그래핀은 한 겹의 탄소 원자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투과도가 약 97.7%에 이른다. 거의 완전히 투명하기 때문에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투명전극으로 많이 사용된다. 다섯째, 그래핀은 아주 작은 원자와 분자도 투과할 수 없도록 막거나 걸러준다. 그래서 수소 분자 분리나 해양 오염물질 제거 등 여러 분야에서 필터로 활용되고 있으며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미생물도 막아낼 수 있어 의료 분야에서도 사용된다.

이와 같이 그래핀은 인장 강도, 유연성, 전도성, 투명성, 불투과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로 이러한 다양한 특성이 활용되어 신소재로 한창 개발 중이다. 게다가 다른 재료와 혼합되면 더욱 강력한 특성을 지닌 물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거대자기저항성’ 새로운 발견

흑연에서 그래핀을 분리해 낸 공을 인정받아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안드레 가임. [사진 노벨박물관]
하지만 이러한 모든 연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래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이 물질이 어떻게 작용하고 우리가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4월 13일자 네이처지에 ‘이동성이 높은 그래핀에서 디락 플라즈마의 거대자기저항성’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안드레 가임과 일부 연구자들이 그래핀의 새로운 성질을 알아낸 것이다.

연구진은 다른 물질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그래핀을 사용하여 ‘액체 질소 온도(-196℃)’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가장 큰 자기 저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관찰했다. 액체 질소 온도란 기체 상태의 질소가 액체가 되는 온도를 말하는데 그래핀 이외의 다른 물질들은 절대 영도(-273.15℃)에서나 자기저항성을 갖는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래핀은 절대 영도보다 무려 77.5℃나 높은 온도에서 거대한 자기저항성을 유지한다. 그래핀이 온도가 높아지면 전자는 빠져나가고 전자가 있던 자리에는 홀(정공)이 생긴다. 이때 디락-페르미온(Dirac fermions)의 ‘전자-정공 플라즈마’가 생기면서 거대자기저항성을 지니게 된다. 디락 플라즈마는 전자와 정공이 물질 내에서 서로 부딪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말하며 이는 다른 물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이다.

여기서 잠깐 저항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전압은 전류가 흐른다는 것인데,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공식에 따르면 전류 곱하기 저항이다. 그런데 이 공식에서 하필 왜 전류에 저항을 곱해 주는 것일까. 전압이란 전위차 때문에 전자가 움직여 생긴다. 모든 물질은 원자라고 불리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는 전자라고 불리는 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자가 이동하여 전류가 흐르게 된다. 전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일 때 당연히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자가 일정한 속도로 이동한다. 그 이유는 전류가 흐를 때 저항이 있어서 속도가 빨라지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다. 전자가 이동하여 전자기에 영향을 미칠 때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려면 저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결국 그래핀의 전자가 거대자기저항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장에 대해 매우 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평면 구조를 이루며, 이러한 2차원 구조는 전자의 탁월한 전기전도성을 가지게 한다. 이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자가 움직이기 때문인데, 디락-페르미온 입자가 그래핀의 전자 구조에서 관찰되었다. 디락-페르미온은 양자역학에서 발견된 입자 중 하나로 전통적인 입자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니까 파동과 입자를 모두 고려하여 움직임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래핀에서 전자는 질량이 없고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만 다른 입자나 장애물에 의해 그 속도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특히 다른 소재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전력을 사용하면서도 전기 신호를 처리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전기적인 노이즈를 감지하고 신호를 처리하는 센서, 전자기기, 전자 장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하다. 또한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디락-페르미온을 이용하여 계산 속도를 높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그래핀은 현재 산업계에서 매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물질이다. 인장 강도, 유연성, 전도성, 투명성, 불투과성 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락 플라즈마의 거대자기저항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가 공전하는 방향성을 갖는 스핀의 특성을 이용하여 정보를 처리하는 스핀트로닉스 기술도 그래핀의 디락 플라즈마를 활용하여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술에 쓰이는 스핀밸브는 전자의 스핀 방향에 따라 전기 저항이 변화하는 새로운 종류의 전자 소자로 개발될 수도 있다. 그래핀 기반 소재는 에너지 저장 분야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 배터리와 같은 장치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래핀의 놀라운 특징은 깃털보다 가볍지만 강철보다 강하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그래핀은 가벼움과 강함이라는 대조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핀의 강도와 가벼움이 결합되어 강화재료로 사용된다. 또한 그래핀에 있는 전자의 빠른 움직임과 거대자기저항성이라는 대립된 성질 또한 그래핀의 특징 중 하나다. 이러한 성질들은 서로 견제하고 조화를 이루어 그래핀을 지구상 최강의 소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단지 그래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삶에서도 종종 ‘외유내강’이나 ‘내강외유’처럼 가벼움과 강함이 서로 조화롭게 배치될 때 더 멋진 삶이 관찰된다. 특히 질량이 없거나 매우 낮아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전자도 그래핀 내부에서 거대자기저항성을 갖추고 있어서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지 않듯, 우리 사회도 그 두 개의 대립적인 성질이 공존할 때 그 속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 우리에게 깃털처럼 가볍지만 강철보다 강한 것은 무엇인가?

김동훈 인문학자. 그리스·로마 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등을 썼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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