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프리즘] 클린턴의 후회, 메르켈의 변명
클린턴은 지난 4일 아일랜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핵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러시아가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팽창주의 세력인 러시아에 대처하는 방법은 핵무기밖에 없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핵 포기를 설득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때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다. 클린턴은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함께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체결하여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를 이끌었다. 우크라이나는 핵 포기 대신 주권, 안보 및 국경선을 보장받았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러시아로 넘겼지만 러시아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나중에 크림반도를 병합하였고 결국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클린턴은 이때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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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 요건은 시대 앞서 보는 혜안
시대 따라가면 국정 관리자일 뿐
」
메르켈은 러시아의 대규모 천연가스 도입을 위해 북해 해저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개통시켰고, 서방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르트스트림-2 건설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러시아에 대한 독일과 유럽의 에너지 및 경제의존도를 높여 러시아를 견제하기 어렵게 했다. 2008년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좌절시켰다. 지난해 10월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메르켈은 “사람은 자신이 사는 시대에 맞춰 행동한다”며 가스관 건설은 당시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좌절시킨 것은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었던 결정이었다고 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국제사회에서 메르켈 책임론이 강하게 대두되었으나 그는 자신에겐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클린턴과 메르켈의 결정은 역사의 부정적인 재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시대를 앞서본 현명한 결정을 내린 정치지도자들은 없었을까.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그런 정치지도자였다. 마라톤전투에서의 극적인 승리로 간신히 페르시아로부터 아테네를 지켜냈을 때, 그는 페르시아가 반드시 다시 공격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아테네의 존망은 바다에 달려있다고 확신하고 삼단노선 200척을 건조하여 전쟁에 대비하고자 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페르시아가 다시 쳐들어올지도 불확실했고 군선 건조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밀어붙였다. 10년 후 페르시아가 다시 침공해 왔을 때 그리스 해군은 살라미스해협에서 1200척의 페르시아 해군을 격퇴하면서 그리스를 구해냈다.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지도자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을 결정했을 때 무모한 일이라며 반대가 극심했다. 그렇게 닦은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경제기적의 시발점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대중문화의 수용을 결정했을 때도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오히려 우리 대중문화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정치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그의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탁월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넘어 멀리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 지도자가 자신이 사는 시대에 맞춰 행동하면 그는 그저 국정의 관리자일 따름이다. 그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멀리 앞을 내다보고 나아갈 때 후회도 변명도 필요치 않은 진정한 국가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권기창 전 주 우크라이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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