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 튜닝] 수요일 오후에 기타 레슨 하는 삶(MD칼럼)
[도도서가 = 정선영 북에디터] 말 그대로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코로나19 탓이다. 남들은 두 번 세 번도 걸린 시간 동안 아슬아슬하게 비켜 갔던 나는 이 운명 같은 바이러스 힘을 비로소 체험했다. 건장한 체격과 달리 평소에도 골골대는 편이라 확진 판정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내가 마음을 먹는다고 바이러스가 약해질 리는 만무했다. 눈을 뜨면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다시 눈을 뜨면 약을 먹었다. 낮인지 밤인지도 잊은 채 며칠을 꼬박 앓았다.
그렇지 않아도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시간관념이 거의 다 무너진 참이었다. 달력을 보면서도 오늘이 며칠인지 한참을 생각하고, 시계를 봐도 시간을 체감하지 못한다. ‘제시간에’라는 단어는 외계어가 된 것 같다.
다행히 아직은(?) 몸이 오랜 회사 생활을 기억하는 탓에, 출근 준비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다.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다 보니 여유만만하게 TV를 켜고 정성스레 아침을 먹는다. 그러다 TV에서 관심 있는 주제가 나오면 손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직행하기 일쑤. 시간은 하염없이 간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 쓸데없는 인터넷 서핑을 마치고 나면 대략 11시에서 12시 사이. 그러면 기왕 이렇게 된 거 점심 먹고 나서 가열차게 일해볼까, 가 되는 것이다.
처음 혼자 일하기 시작할 때는 시간 관리만큼은 자신 있었다. 북 에디터란 애초에 마감과 싸우는 직업이다. 책 마감일을 기준으로 소급하여 일정을 정리한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그 안에는 작은 마감이 여러 개 있다. 그때그때 들어온 원고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까지 해야 할지 정해야 하고, 보통은 1~3교 순으로 가는 교정은 언제까지 해서 언제 수정을 의뢰할지, 제목안은 또 언제까지 정해야 할지 등등 그 모든 작업은 이후 작업과 연계되어 있고, 한 번에 원고 하나만 작업하는 게 아니라 보통 3~4개 원고는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어느 한 원고의 한 군데 일정에서 차질이 생기면 연쇄적으로 차질이 생기는 일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에디터는 일정 관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배운다.
문제는 에디터 일이라는 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이 대다수라 마감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정말 하염없이 고민한다는 데 있다. 한번 일의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고, 그래서 일이 안 되면 손 놓고 있는 경우도 간혹 있다. 프리랜서가 된 지금, 나는 그런 날이 더 많아졌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건 이렇게 스케줄 관리가 안 되는 지금의 나를 위한 빅 픽처였나 보다. 매주 한 번의 레슨과 연습해오라는 선생님의 폭풍 잔소리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도 기획거리를 찾는다는 핑계로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기타 레슨은 보통 수요일에 하는데, 이렇게 일주일의 딱 가운데 날에 레슨을 잡아두니 다른 날 업무 계획도 조금씩 잡혀 나간다. 이를테면, ‘내일 레슨 가기 전에 바짝 연습하려면 오늘 이만큼 일을 해놔야지’, ‘수요일에 레슨 가야 하니까 월요일에는 원고를 이 정도는 끝내놔야겠네’, ‘내일 미팅은 레슨 갔다 와서 준비해야겠군’ 하는 식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처럼 나 역시 한순간도 시계를 놓아본 적이 없고, 제시간에라는 단어 뜻에 맞춰 강박적으로 살아왔다. 회사나 다른 누군가 정한 일정이나 시간에 맞춰 살아왔고, 개인 생활은 항상 후순위였다. 지난 몇 달간 내 나름의 일과 시간표를 새로 짜기 시작하면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일도 기타도 확확 진행되지 않는 듯해서다.
하루는 24시간, 일주일은 7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에 대한 관리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겠다. 아무튼 나는 기타를 배우며 시간 주도권을 다시 내게로 조금씩 가져오는 중이다. 그 끝에서 그거 보라고 결국 다 잘되지 않았냐고 함박웃음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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