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저승사자’ 제자들 우크라 잠입, 떨고있는 러 장성들
[기고] 우크라이나 저격부대의 전설과 진실 〈하〉
먼 거리를 쏘려면 표적이 나타날 때까지 조준경에 눈을 대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적군이 어디에 잠복하고 있는가를 아는 데는 엄청난 인내와 체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적군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쪽에서 자신을 노출하기 위하여 먼저 위장 사격을 한다. 그때는 내 조준경의 반사광이 적군에 노출되도록 유도한다. 그러니까 그는 3인조 가운데 ‘미끼’이다. 그 미끼에 걸려 적의 저격수가 발포하면 그때 그의 위치를 확인한 이곳 저격수가 대응 사격을 한다. 이쪽에서 바라본 적의 표적은 조준경의 반사광이다. 따라서 대응 사격은 적군의 눈을 맞추게 되니 더욱 치명적이다.
핀란드 퇴역 저격수들, 우크라행 자원
하루가 8만6400초인데 조준경에 햇볕이 반사되는 시간은 30초가 넘지 않는다. 이런 문제로 말미암아 지금 캐나다의 저격학교에서는 조준경 없이 저격하는 방법을 훈련하고 있다. 지금의 총은 모두 소음총이라 예전처럼 “따콩” 소리로 적의 위치를 가늠하지 않는다. 사수는 적군과의 거리, 적이 움직이는 시간과 착탄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통상 3000m일 경우에 착탄 시간은 2.5초이다. 총알의 속도와 적군의 표적이 2.5초 동안에 움직이는 거리도 계산해야 한다. 조준경은 총신보다 8.89㎝ 더 높다. 따라서 표적은 그만큼 낮게 계산해야 한다. 3000m의 거리에 초속 1000m인 총알의 착탄 시간이 2.5초 걸리는 것은 그 곳이 고산지대여서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저격수들은 그 먼 거리에서 모두 야전복을 입은 러시아 군 가운데 누가 사단장이고 누가 장성인지 어찌 알아낼까. 이는 테니스 공의 상표까지 읽을 수 있는 미국의 정찰 위성과 드론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나는 훈련소의 영점 사격(PRI)에서 20m의 표적을 맞추는 데도 탈락했다. 물론 2차 대전 때 쓰던 카빈의 총열이 낡은 탓도 있었다.
군사전문가인 이정환씨에 따르면, 하루 조준경이 반사하는 30초를 위해 낮시간 5만초를 엎드려 기다리는 데에는 초인적인 체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대소변의 문제도 어렵다. 여성의 경우에는 더욱 절박하다. 총신(개머리판)에 얼굴을 대고 몇 시간을 기다리면 영하 35도에 노출된 총신과 영상 36.5도에 이르는 볼 사이의 온도 차가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면 총신의 선팽창율이 달라질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사수는 입에 눈을 물고 볼과 총신의 온도를 낮추어야 한다.
핀란드의 스키 저격병은 왜 그리 탁월한가. 스키라면 옛 소련도 지지 않는 나라였다. 그런데 두 나라의 스키 전쟁은 양상이 달랐다. 러시아의 스키부대는 평원을 달리는 고속 부대이다. 그러나 핀란드의 스키 병은 비탈진 나무들 사이를 곡예하듯 내달리면서 저격하기 때문에 그 기술도 어렵고, 저격을 당하지도 않는다. 동계올림픽의 스키 크로스가 그것이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2인1조가 되어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달린다. 핀란드의 병력은 소련 병력의 3분의 1이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핀란드는 2개 사단을 무장할 수 있는 무기를 노획했고, 소련제 스키는 조악하여 땔감으로 썼다. 소련군은 6만 명이 동사했다. 승리의 축제에서 핀란드 국민은 이렇게 외쳤다. “이것이 전쟁이다 (This is War).”
이 겨울 전쟁에 핀란드에는 시모 하이하(Simo Hayha : 1905~2002)라는 전설적인 저격수가 있었다. 그는 본디 스키를 타고 사슴을 사냥하던 평범한 시민이었는데, 소련이 침공하자 저격병으로 입대하여 영하 34도의 추위에서 스키를 질주하며 소련군 534명을 사살했다. 이것이 이제까지 세계 저격의 역사에서 최고 기록이다. 하루에 12명을 저격한 날도 있었는데 시간은 16분 걸렸다. 그는 적과 동지로부터 ‘하얀 저승사자(White Dead)’라는 별명을 들었다. 하이하는 먼 거리에 떨어져 저쪽의 100m 거리를 눈으로 측정하는 기이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특히 그는 조준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는 집중력과 시력이 좋은 탓도 있었지만, 조준경의 반사광을 적군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조준경이 없는 저격은 1500m까지 가능하다.
앞서 말한 우크라이나의 여성 파블리첸코는 전사한 남편에 대한 상심과 자신의 손에 죽은 몇백 명의 소련군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과 알콜 중독으로 58세의 한창 나이에 죽었다. 자이체프는 76세로 죽을 때까지 저격병 교육에 헌신하다 키이우의 국립묘지에 묻혔다. 하이하는 국민 영웅으로 추앙을 받으며 97세까지 장수하며 근년까지 살았다. 그가 죽자 핀란드 국민은 “하이하가 없었으면 핀란드도 없었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제자들이 지금 우크라이나에 잠입했다니 러시아의 사단장과 장성들은 자꾸 뒤를 살필 수밖에 없다. 영화 ‘레옹(Leon, 1995)’과 ‘문 앞의 적(Enemy at the Gate, 2001)’이 그들을 모델로 했거나 그들의 생애에서 암시를 받아 만든 것이다.
6·25 때 에스키모 출신 저격병 활약
이상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잘 드러나지 않은 이면이다. 물론 저격병의 활약만이 러시아의 고전과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밖에도 러시아 병사의 사기와 용병 문제, 부패, 군수, 통신, 첩보, 애국적 지도자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이 글은 다만 우크라이나의 저격수만을 얘기하면서,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하늘 아래에도 미국의 네이비 실(Navy SEALs)에 못지않은 우리의 특수 부대가 설악산 눈밭과 언 바다에서 맨몸으로 뒹굴고 있음을 감사히 기억해 달라는 호소를 담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민간인 군사전문가 이정환(캐나다 거주)씨의 자문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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