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아홉 살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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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사귀는 게 뭐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오늘 우리 반 어떤 남자애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그걸 어떻게 설명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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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서 내가 달리기 하려고 줄 서 있는데 걔가 갑자기 나한테 왔어. 그리고 사귀자고 했어. 내가 사귀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웃기만 했어. 그런 다음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좋다고 했어. 난 좀 부끄러웠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아홉 살 천둥벌거숭이들 이야기라 해도 남의 연애사는, 특히 본격적으로 연애하기 전 이제 막 상대의 존재를 인식할 무렵의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하구나 싶었다. 그래서 너는 친구에게 뭐라고 이야기했어? 아이는 방금 전 부끄러웠다던 고백이 무색하도록 박력 있게 대답했다. 나도 우리 반에서 니가 제일 좋다고 했어. 오, 그랬구나. 그 친구는 이름이 뭐야?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름? 모르는데.
어이가 없어서 결국 웃어버리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반에서 제일 좋다면서 이름도 몰라? 아이는 거침없었다. 모를 수도 있지. 그리고 제일 좋다는 건 이제부터 그럴 거라는 얘기야. 듣고 보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면 그 친구가 너 좋다고 하기 전까지는 걔 안 좋아했어? 응. 그러면 이제부터는 왜 좋아하려고 해?
아이는 별 어리석은 소리 다 듣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그것도 몰라? 걔가 나 좋다고 했으니까 나도 이제부터 좋아해야지. 나는 지지 않았다. 아니야. 꼭 그럴 필요는 없어. 둘이 서로 좋아하면 제일 좋겠지만, 친구가 너를 좋아한다고 너도 똑같이 그 친구를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야. 그러자 아이가 이번에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어떻게 그래? 그럼 걔가 너무 슬프잖아.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왜라니. 어떻게 그러냐니. 그걸 어떻게 설명하나. 그런 게 인생이라고 얼버무릴 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원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인연이 따로 있는 법이라는 개똥철학을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아홉 살과의 대화, 쉽지 않았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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