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문해력] 문해력, 귓결에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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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어릴 적 유독 입이 짧았던 탓에 어머니로부터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머니께서 내게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셨던 것은 배가 고프면 뭘 먹어도 맛있으니 괜한 밥투정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셨을 것이다.
문해력의 문제를 아이들의 몫으로만 두지 말고 열린 대화의 장으로 적극 초대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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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어릴 적 유독 입이 짧았던 탓에 어머니로부터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머니께서 내게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셨던 것은 배가 고프면 뭘 먹어도 맛있으니 괜한 밥투정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아주 오랫동안 ‘시장에 가면 반찬이 많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시장에 가면 먹음직한 찬거리, 먹거리가 지천으로 널렸는데 충분히 곡해할 법하지 않은가.
두 번째 기억은 대학에 갓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지금 언급하려는 표현은 더 이상 오늘날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 되었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얼굴이 ‘묵’이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았다. 보통 밤늦은 술자리에서 “넌 얼굴이 ‘묵’이어서 밤길은 안 무섭겠다”, “나는 얼굴이 ‘묵’이잖아”라는 식의 농이 오갔는데, 오고 가는 이 말이 ‘얼굴이 무기다’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도토리)묵’이 못나게 생겨서 못생긴 얼굴을 일러 ‘묵’이라고 하는 줄로 알았다.
2021년 한국교총이 전국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교사들이 생각하는 문해력 하락 원인’을 조사한 결과, 교사들은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익숙해져서(73.0%)’, ‘독서를 소홀히 해서(54.3%)’, ‘한자 교육을 소홀히 해서(16.6%)’, ‘학교에서 어휘 교육을 소홀히 해서(13.9%)’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나에게도 문해력 하락의 요소가 다분히 있었던 듯하다. 고백하건대 나는 책 읽기를 즐기는 편도, 한자나 어휘 공부에 특별히 힘을 준 편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 문해력은 낙제점이었을까. 다행히도 국어 시험은 늘 만점에 가까웠고 지금도 국어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문해력의 원천은 가족 모임에서의 귀동냥이었다. 명절이다, 생일이다, 외할머니 댁에 친척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날이면 오빠와 나는 밤새도록 밥상머리에 앉아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귓결에 들었다. 어른들은 지루해하지 않고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며 기특해했고, 우리는 어른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며 세상의 언어를 조금씩 깨쳐 갈 수 있었다. 간혹 몇몇 어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화를 이어가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 속에서 해당 단어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어쩌면 지금의 문해력 하락은 교육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결과일는지도 모른다. 문해력의 문제를 아이들의 몫으로만 두지 말고 열린 대화의 장으로 적극 초대해 보기를 권한다. 설령 그들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지라도.
김미현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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