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기술은 답이 될 수 없다[책과 삶]
미래의 자연사
롭 던 지음·장혜인 옮김
까치 | 351쪽 | 2만원
인간은 지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생명체지만, 그 역시 생물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응용생태학자 롭 던은 <미래의 자연사>에서 생물법칙에 기반해 인류가 맞이할 미래를 살핀다. 던이 소개하는 생물법칙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해 현대 생물학의 흐름까지 짚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탈출법칙은 “어떤 종이 포식자나 기생충, 천적을 피할 때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덥고 습한 기후에 사는 말라리아 원충에 취약했으나,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좀 더 춥고 건조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말라리아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탈출법칙은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세계 기온이 올라가 미국 마이애미가 멕시코 아열대 지방 기후와 비슷해진다고 가정하면, 멕시코에 넘쳐나는 말라리아 원충도 마이애미로 이사할 가능성이 있다.
진화법칙은 갈라파고스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 인류가 거주하는 도시에서도 진화는 쉽게 목격된다. 도로 중앙 분리대, 아파트 화단 등은 갈라파고스 같은 섬 역할을 해 새로운 종이 진화하는 환경이 된다. 쥐, 모기 등 도심의 생명체가 지상과 지하에서 전혀 다른 형태로 진화한 사례도 관찰됐다.
인간의 기술이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를 벗어날 방법을 제공하리라는 시선도 있지만, 저자는 이에 부정적이다. 저자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기술을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제공된 환경의 혜택을 저버리지 말자고 제안한다.
인간 중심주의에 매몰되는 걸 피하기 위해 이렇게 떠올리면 좋겠다. “나는 이름 없는 종의 세상에 사는 이름 가진 종일 뿐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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