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타자 볼넷+실책+헤드샷 낯뜨거운 종합선물세트 같던 봄날의 잠실대첩[장강훈의 액션피치]
[스포츠서울 | 잠실=장강훈기자] 볼넷과 실책이 경기 흐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드러났다. 공 하나, 플레이 하나를 허투루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산이 KT를 누르고 주말 3연전을 승리로 출발했다. 볼넷과 실책을 흐름장악의 발판으로 사용했고, 경기 후반에는 주축들을 대거 벤치로 불러들여 다음 경기에 대비하는 여유도 보였다. 물론 실책과 돌발변수 등으로 뒷골이 서늘해지는 경험도 했다.
발단은 선두타자 볼넷이었다. 0-1로 뒤진 3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양찬열이 KT 선발 배제성과 풀카운트 접전 끝에 볼넷을 골라 나갔다. 배제성의 슬라이더가 말을 듣지 않았다. 공격 입장에서는 노림수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슬라이더에 반응하지 않고 추이를 지켜볼 틈이 생긴 셈이다.
무릎 타박으로 물러난 이유찬을 대신해 유격수로 나선 안재석이 타석에 들어섰다. 속구 네 개가 연거푸 날아들었는데 두 개를 골라냈고, 바깥쪽 체인지업을 밀어내 좌중간 2루타로 연결했다. 빗맞은 타구였지만, KT 중견수 정준영의 다이빙캐치에 살짝 미치지 못한 행운의 2루타였다. 역전 기회에서 타석에 들어선 조수행은 욕심부리지 않고 볼넷을 골라냈다. 선두타자 볼넷이 무사 만루로 이어진 셈이다.
허경민이 배제성의 슬라이더를 건드려 유격수 땅볼을 쳤고, 더블플레이가 됐다. 가장 먼저 출루한 안재석이 홈을 밟아 동점. 이어 양석환이 배제성의 초구 슬라이더를 공략해 3루수 키를 넘어가는 좌익선상 2루타로 승부를 뒤집었다. 허경민을 병살로 돌려보낸 구종을 한 번 더 선택할 것이라는 노림수가 통했다. 속구 타이밍이었지만, 슬라이더가 높았고, 히팅포인트 조금 앞에서 배트에 걸렸다. 초구 타격은 대체로 노림수를 갖고 들어가는데, 마침 양석환이 좋아하는 몸쪽 높은 곳으로 향했다.
2-1로 앞선 4회말에는 1사 후 호세 로하스가 만든 평범한 중견수 플라이가 실책으로 돌변했다. 생애 첫 선발출장한 신인 외야수 정준영이 포구를 끝까지 하지않아 볼을 흘렸다. 워낙 높이 뜬 타구여서 오래 쳐다보고 있었는데, 포켓에 공이 닿았으니 포구한 것으로 착각해 글러브를 제대로 오므리지 않은 게 화근이 됐다.
어이없는 실책에, 비디오판독 탓에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고, KT 배제성도 야수들의 집중력도 흔들렸다. 강승호가 끈질긴 커트 끝에 8구째를 잡아당겨 좌전안타로 연결했고, 양찬열이 1루 강습 내야안타로 누를 꽉 채웠다. 안재석의 좌익수 희생플라이, 조수행의 볼넷으로 다시 만루. 전 타석에서 병살타로 고개를 숙인 ‘캡틴’ 허경민이 배제성이 던진 슬라이더를 밀어내 우중간 2타점 적시타를 뽑아내 흐름을 장악했다.
실책 덕에 행운의 출루로 득점까지한 로하스는 5회말 2사 후 호쾌한 우월 솔로 홈런으로 부진탈출을 예고했다.
볼넷이나 실책은 경기 중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선두타자 볼넷, 어이없는 실책 등은 흐름을 크게 바꾼다. KT도 헤드샷 퇴장이라는 돌발변수를 발판삼아 빅이닝을 완성해 두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헤드샷이라는 돌발변수가 발생하기 전, 실책이 이미 기류를 바꿔놓아 빅이닝이라는 결과로 증폭된 셈이다.
1-10으로 끌려가던 8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앤서니 알포드가 3루수 실책으로 출루했다. 허경민을 대신해 3루수로 나선 김재호가 포구에 실패했다. 크게 튀어오른 타구에 숏바운드로 대응했지만, 글러브에서 튀어나왔다. 행운의 출루 뒤 홍현빈의 우전안타로 무사 1,3루. 강현우가 투수 땅볼을 쳤지만, 알포드가 스킵을 잘해 1루주자만 바뀐 1사 1, 3루, 이상호가 볼넷을 골라 만루 기회를 잡았다.
정준영이 삼진으로 돌아서 기회가 사라지는 듯했지만, 신본기가 두산 이승진이 던진 초구에 머리를 맞았다. 헤드샷 퇴장 변수는 두산 마운드 운용을 꼬았다. 고봉재와 김명신이 잇달아 마운드에 올랐지만 안타 2개와 볼넷 1개, 몸에 맞는 볼 1개로 5점을 잃었다. 박치국이 대타로 나선 장성우를 삼진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더라면, 승부의 끝을 알 수 없는 전개가 펼쳐질 뻔했다.
수준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야구는 여전히 살아있는 생명과 같다. 공 하나, 플레이 하나에 흐름이 요동친다. 흐름을 자르고 끌어오기 위한 보이지 않는 수싸움은 결국,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해내는 기본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빛이난다. 명승부로 보기에는 낯뜨거운 봄날의 잠실이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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