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대만 발언’에 한·중 관계 급속 냉각···무엇이 문제됐나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대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며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발언한 로이터통신 인터뷰가 지난 19일 공개된 이후 한·중 관계가 격랑에 휘말렸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불용치훼)”라는 날 선 언어로 윤 대통령을 공격했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며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해 강력 항의했다. 그러자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21일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을 겨냥했고, 같은날 중국은 베이징과 서울에서 한국 측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하며 항의했다.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한·중 관계가 중대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왜 반발하나
중국은 인민의 생명 및 안전, 국가체제와 정체성 등과 관련된 사안을 이른바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만 문제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직결된 것이어서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3연임을 결정하는 중국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은 절대 하지 않는다”며 대만 통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말은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미도 통용된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서방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것 자체를 현상 변경 시도로 받아들인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미·중 갈등의 핵심요인이자 중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만 문제에서 미국과 같은 입장을 보인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격한 반발은 예상됐던 일이다.
윤 대통령이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를 남북 관계에 빗댄 것도 중국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왕 대변인은 전날 “북한과 한국은 모두 유엔에 가입한 주권 국가”라며 “한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는 성질과 경위가 완전히 달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왕 대변인이 “중·한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을 제대로 준수하라”고 밝힌 것은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발언 배경은
대만 문제를 둘러싼 한·중의 충돌 조짐은 앞서 감지됐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월 CNN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한국은 무력에 의한 일방적인 현 상태 변경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발언과 같은 내용이다. 당시에도 중국 외교부는 ‘불용치훼’라는 용어를 사용해 한국을 비난했다. 정부가 중국의 ‘외교 결례’를 문제 삼으려면 이때 문제 제기를 했어야 하지만 당시 정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이번에 이 표현을 문제삼아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해 강력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윤 대통령이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우크라이나 문제에 전에 없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배경에는 오는 26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진전된 확장억제 보장 등의 성과를 얻어야 하는 윤석열 정부가 대만·우크라이나 문제 등 미국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에 대해 한국도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보인다. 중국의 반발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전략적 움직임에 동조하지 말라는 경고를 날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주시하는 중국
윤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밝힌 만큼 한·중 관계는 앞으로 살얼음판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하며 중국 등 권위주의 체제 국가들과의 거리두기에 열중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 모든 것을 쏟아붓듯이 공을 들이고 있지만 중국 역시 한·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이번 회담은 향후 한·중 관계를 규정하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대만 문제와 관련한 문구가 어느 정도 수위로 담길지가 관건이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에는 “양 정상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로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이번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은 이보다 한발 더 나간 것이어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도 대만 문제에 대해 보다 미국의 입장에 가까워진 표현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또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한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미·일과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는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강대국들 간 분쟁에 들어간 것은 국익 차원에서 대단히 위험하다”며 “중국과 소통을 강화하고 적어도 서로를 적으로 삼는 외교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는 “대만 문제는 중국이 외교에서 최대 레드라인으로 삼고 있다고 모든 국제사회에 통보한 상황”이라며 “선을 넘어서려는 것에 대해 한국을 본보기로 강하게 때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담길 대만 문제 내용을 톤다운(완화)하고 그것이 한국의 공식 입장이라는 것을 주지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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