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犬생···"피 좀 나눠주개" [지구용 리포트]

박윤선 기자 2023. 4. 2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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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만 뽑히다 가는 '공혈견'을 아시나요
수혈용 사육·혈액 독점공급 비판 속
정부 생산·유통 가이드라인 내놨지만
동물관리 개선안 언급 없어 되레 빈축
건전·원활한 수급방법은 '동물헌혈'뿐
자격부터 채취까지 시스템 마련 관건
헌혈견의 상징인 노란 스카프를 매고 있는 헌혈견의 모습. 사진 제공=한국헌혈견협회
[서울경제]

대한적십자사는 사람들로부터 헌혈 받은 피를 모아 검사하고 분류한 뒤 혈액이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수술한 개나 고양이들이 수혈이 필요할 땐 어떻게 피를 공급 받을까. 국내 개·고양이 혈액의 무려 90%를 공급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동물혈액은행이라는 민간 업체다. 그런데 이 회사는 2015년 열악한 환경에서 혈액 채취용 개를 키워온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으로 논란을 키웠다. 지난해 12월에는 약사법 위반으로 고발돼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동물 혈액 수급 문제가 가시화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관리 체계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20년 넘게 동물 혈액을 독점 공급하는 동물혈액은행과 혈액 채취 목적의 ‘공혈견’ 사육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동물 혈액 산업=동물의 혈액과 이를 활용한 의약품을 판매하려면 약사법에 따라 일정 기준을 갖추고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허가 및 품질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동물혈액은행은 전혈(혈액 전체 성분) 외에 혈액을 가공해서 만드는 농축적혈구(혈장·혈소판 제거), 혈장, 특수혈장, 면역제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이런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할 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 검역본부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검역본부는 동물혈액은행이 당국에 제조업 신고를 하지 않아 관리 감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무허가 업체가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도 제조업 신고를 유도하거나 위법 사안에 대해 고발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동물보호단체가 나서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자 검역본부는 지난해 12월 혈장·특수혈장 등의 동물 피를 가공한 치료제의 생산을 중단하도록 했고 1월에는 ‘동물 혈액 생산·유통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해당 가이드라인은 동물 혈액의 안전성에만 초점을 맞출 뿐 공혈 동물 관리 개선 방안에 대한 언급이 없어 외려 빈축을 사고 있다.

2019년 한국동물혈액은행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신축 견사의 모습. 출처=한국혈액은행

평생 피를 뽑혀야 하는 ‘공혈 동물’=절차상 결함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바로 혈액의 출처다. 동물혈액은행은 혈액 공급을 위해 ‘공혈견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공혈견’은 이름 그대로 ‘피를 제공하기 위해 키우는 개’라는 뜻이다. 동물혈액은행을 포함해 대학 동물 병원 등 대형 병원에서 키우는 공혈견은 국내에 300~400마리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공혈견이 어떻게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며 쓰임이 다한 뒤에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2015년 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 농장에서 뜬장(바닥이 철조망으로 돼 있는 케이지)에 개들을 가두고 사료가 아닌 잔반을 먹이로 주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당시 동물혈액은행은 공혈견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방역 등을 이유로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고 있어 개선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는 “아무리 깨끗하고 넓은 공간에서 잘 먹이고 잘 기른다고 해도 평생 피를 뽑히기 위해 길러진다는 것 그 자체가 동물권을 유린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건전한 동물 헌혈 시스템 마련이 시급=공혈 동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방식으로 동물 혈액을 원활하게 수급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관건이다. 현실적 대안으로 대두되는 것이 ‘동물 헌혈’이다. 자발적으로 헌혈하는 사람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헌혈 동물은 농장이 아닌 가정에서 주인과 함께 생활하며 엄격한 자격 기준과 혈액 채취 절차를 거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반려동물 헌혈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2018년 공혈견 종식을 목표로 설립된 국내 최대 헌혈견 커뮤니티 ‘한국헌혈견협회’에 가입해 정기 헌혈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역별로 협회 연계 병원이 있어 가까운 곳에서 헌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둘째, 대학 동물 병원의 헌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서울대와 건국대가 동물 헌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간의 헌혈과 마찬가지로 동물 헌혈도 경제적 대가가 제공되지는 않는다. 다만 다양한 건강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심장 사상충, 바베시아, 혈구·혈청 검사 등 30만~50만 원 상당의 검진을 무료로 제공 받는다. 헌혈견협회의 경우 많은 반려동물 관련 업체로부터 기부를 받고 있어 협회를 통해 헌혈할 경우 사료와 영양제, 진드기 예방 목걸이 등 다양한 헌혈견 키트도 받을 수 있다.

강 대표는 “국내 300~400마리 정도로 파악되는 공혈견을 대체하려면 적어도 1년에 한 번 헌혈하는 헌혈견이 3600마리 규모는 돼야 한다”며 동물 헌혈에 대한 인식 제고와 시스템 마련을 강조했다. 그는 “헌혈할 수 있고 헌혈 의사도 있는 대형견 견주들이 전국에서 늘고 있지만 헌혈견이 마음 놓고 헌혈할 수 있는 연계 병원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지역 대형 동물 병원, 대학 동물 병원 등이 헌혈 문화 확산에 적극 참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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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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