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전세사기와 경매꾼
“당신들에게는 재산증식 기회겠지만, 우리에게는 보금자리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인천 미추홀구 주택들의 문 앞에 내걸린 문구다. 피해 주택을 노리고 들어오는 경매 업체를 향한 경고다. “낙찰 장사꾼들, 어디 한번 해보자”라는 격앙된 목소리도 많다.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가 속출하는 ‘사회적 재난’ 상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벌이만 좇는 사람들이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이익으로 삼는 탐욕의 현장이다.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매에 속속 넘어가면서 ‘경매꾼’으로 불리는 일부 경매 업자들이 피해 지역에 몰려들고 있다. 이들의 말과 행동은 후안무치 그 자체다. “경매 매물이 쏟아져 호재”라거나 “싼값에 낙찰받을 수 있는 투자 기회”라며 경매 참여를 조장한다. 한 유튜버는 “미추홀구는 지금 노다지”라며 투자를 권유했다. ‘1+1 행사’ ‘바겐세일’이라는 자극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보증금 반환’ 현수막이 걸린 피해 주택지 현장을 중계하며 대놓고 홍보하는가 하면 세입자를 강제로 내쫓는 방법까지 공유한다.
경매꾼들이 직접 경매에 나서 물건을 싹쓸이하려 한 정황도 포착된다. 1, 2차 경매가 유찰된 뒤 3차 때부터 10명 이상의 특정 세력이 투찰하는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다. 경매 낙찰자에 대한 정부당국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정부의 유예 요청으로 지난 20일부터 전세사기 피해 물건 경매가 일시 중지됐지만 이전까지는 경매꾼들의 투기가 자행됐을 공산이 크다. 대부업체나 개인이 소유한 매물은 경매 일정이 연기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앞으로도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합법적인 투자라고 하면 무조건 정당한 일일까. 경매로 주택을 취득하는 것은 법 테두리 내의 일이고, 물론 투자도 가능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스러지고, 피눈물을 쏟는 이들이 속출하는 상황이라면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다. 타인의 비극이 나의 호재인가. 불난 집을 돕지는 못할망정 거기서 잇속만 챙기는 게 온당한가. 낙찰받은 사람들을 가해자라 할 순 없다. 하지만 피해자 구제와 무관하고 그에 무심한 것도 사실이다. 돈 앞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게 세태라고 하지만,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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