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기본권과 피해자 보호, 함께 갈 수 있나” 학술대회에서도 부딪힌 법원·검찰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피해자 권리 구제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 필요성에 공감합니다.”
“피의자 기본권 보장에 치중하면 피해자 보호가 경시될 우려가 있습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도입 논의가 시작된 ‘조건부 석방제도’를 두고 21일 법원과 검찰이 뚜렷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사법정책연구원은 이날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1층 청심홀에서 한국형사법학회,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함께 ‘구속제도의 개선 방안’이란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법원과 검찰 측은 이날 학술대회에서 ‘조건부 석방제도’를 두고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조건부 석방제도는 법원이 피의자를 불구속하되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거나 거주 제한, 보증금 공탁 등 제한을 두는 제도이다. 구속과 불구속 중 택일해야 하는 현행 제도보다 선택지가 추가되는 것이다. 지난해 신당역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대법원이 도입 필요성을 거론해 주목받았다.
토론자로 나선 김유정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면서 수사의 효율성을 담보해 종국적으로는 범죄피해자의 권리 구제에도 충실할 수 있다”고 했다. 불구속 수사라는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교통사고 범죄의 경우 특정 차량 운행을 금지하거나 운전면허증을 맡겨두라는 조건을 부여할 수 있다. 피해자 보호 및 피의자 재범방지를 위해선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전자장치 부착 등의 조건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한대웅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은 “조건부 석방제는 구속돼야 할 피의자가 오히려 석방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피해자 보호 측면에선 역행하는 제도”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피의자 기본권 보장과 피해자 보호라는 상충하는 가치 중 피해자 보호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연구관은 신당역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신당역 사건 피의자는 애초에 증거 인멸이나 도망할 염려가 없다고 판단돼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으므로 조건부 석방제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석방 조건을 어떻게 부과할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전적으로 판사 재량에 따른 것이라 판사에 따라 상당한 편차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부과조건이 이행되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감독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토론자들은 일률적인 구속기간 제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다. 재판이 길어지는 경우 구속기간 내에 충분한 심리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최장 구속기간을 1심 6개월, 2심 8개월, 3심 8개월로 제한한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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