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승인 받았지만 환자에겐 아직 먼 디지털 치료제
당뇨병·불면증 치료 효과에도···“규제 허들 높아”
“시장 진입 위해선 건보 급여화 필수”
“디지털치료제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고 장애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넘어야 할 문턱이 많지만, 빠른 시일 내에 많은 환자들이 직접 제품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라니 헤센 국제디지털치료제협회(DTA) 환자 접근성본부 부대표는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최근 디지털치료제는 당뇨병의 치료, 관리, 예방까지 가능해졌고 불안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혈액순환과 호흡기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디지털치료제는 질병을 치료, 관리 또는 예방 효과가 있다고 검증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약물이나 장치, 기타 요법과 병행해 활용하면 치료 효과가 더 커진다. 별도 의료기기가 아닌 스마트폰, 태블릿에 손쉽게 앱(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해 쓰는 방식이다. 일반 신약보다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디지털치료제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국제 비영리 단체인 디지털치료제협회(DTA)가 있다. 이 단체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기존 의료 체계에 통합시키고 관련 기준을 만들기 위해 2017년 처음 설립됐다.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머크 등과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107개사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선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지난해 11월 국내 디지털치료제 개발과 상용화 지원을 위해 이 단체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미국의 디지털치료제 도입 전반을 총괄하는 헤센 부대표는 “디지털치료제는 특정 질환이나 질병을 치료하고 규제당국으로부터 치료 효과를 입증받은 치료 요법이라는 점에서 다른 헬스케어 기술과 다르다”며 “집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낮추고 비용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헤센 부대표는 디지털치료제 상용화뿐 아니라 환자의 디지털치료제 처방과 보험 적용을 지원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미국의 보험 체계가 복잡하다 보니 환자의 사용 장벽이 높다는 설명이다.
헤센 부대표는 “현재 미국에서 허가된 디지털치료제가 있지만 이를 처방받기엔 접근성 문제가 있다”며 “미국의 사보험과 공보험 시장이 복잡해 미국에선 보험 적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디지털치료제를 처방받으려면 해당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또 이를 처방하는 의사를 찾아가야 하는 문제도 있다.
국내 디지털치료제 개발 기업 웰트의 김주영 미국 법인장도 이날 연사로 참여해 디지털치료제가 실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소개했다. 김 법인장은 지난해 11월 DTA의 이사에 선출됐다.
웰트는 지난해 불면증 인지행동 치료 효과가 있는 앱인 ‘웰트-I’를 개발했다. 웰트-I는 최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2호 디지털치료제로 선정됐다. 지난 2월 식약처는 1호 디지털치료제로 에임메드가 개발한 ‘솜즈(Somzz)’를 허가했다.
김 법인장은 “불면증의 1차 치료는 CBT(인지행동치료)이지만, 수가와 인건비의 불균형으로 의료기관이 대면치료를 기피하고 전문 의료기관의 인력도 부족하다”며 “이를 해결할 효과적인 치료 모델이자 환자의 생활 데이터 모니터링이 가능한 효율적인 전달 체계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현재 불면증 약물 치료제는 실질적인 치료보다는 수면 보조를 위한 것인 만큼, 사실상 인지행동치료가 병행돼야 하는데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인지행동치료는 수면에 대해 가진 지나친 걱정이나 왜곡된 생각을 교정하고 불면증을 악화하는 행동을 수정하는 치료법이다.
웰트는 CBT와 데이터 모니터링으로 효과적인 치료모델을 만들었다. 여기에 디지털치료제로 효율적인 전달 체계도 갖췄다. 환자가 입력하는 ‘수면 일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맞춤형 적정 취침 시간을 제시하고 수면의 질 개선을 위한 환자 행동 교정을 6주간 실시해 불면증을 개선하는 원리다.
김 법인장은 웰트-I가 정식 승인됐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 많다고 했다. 김 법인장은 “우선 3년간 한시적 비급여로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시장을 넓히기 위해선 건강보험 제도권에 반드시 진입해야 한다”며 “실제 처방을 통해 수익을 내기 위해 공공보험 수가 적용을 받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업계에선 건강보험 급여화 여부나 지불 방식이 주요 과제로 남아 있는 만큼 환자가 디지털치료제를 사용하려면 적어도 3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디지털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위해 관련 제도를 손보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중심으로 혁신의료기기(혁신의료기술) 등재 절차와 급여 결정, 보험수가 산정, 급여·비급여 사용 현황 관리를 포함한 ‘디지털 치료기기 건강보험 적용 가이드라인’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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