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뼈 깎는 심정으로…성과급·임금인상분 반납 검토"
한국전력이 20조원 이상의 자구 계획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직원 인건비 감축 등을 포함한 새로운 자구안을 이달 말 내놓기로 했다. 전기요금 인상 전 한전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여당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21일 전력업계 등에 따르면 한전은 국민의힘과 자구안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에 추진하던 한전 14조원, 자회사 6조원 마련안에 인건비 절감 등 새로운 자구안을 더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구안을 국민의힘에서 받아들이면 이르면 다음주 확정한 내용을 발표할 전망이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전기요금 조정에 앞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20조원 이상의 재정건전화 계획을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인건비 감축, 조직 인력 혁신 등 추가 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발표한 재정건전화 계획에 추가할 주요 내용은 인건비 감축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임원과 간부급 직원이 대상인 성과급 반납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차장 또는 부장급 이상 직원은 올해 급여 인상분(1.6%)을 반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자구안 발표를 계기로 전기요금 인상이 이르면 다음달 초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여당은 전기·가스요금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한전과 한국가스공사의 자구안 제시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與 "방만경영" 질책 하루 만에…"한전공대 출연금 감사도 협조"
한국전력이 21일 임금 인상분 반납 등 인건비 감축안을 마련한 것은 전날 나온 여당의 강한 질책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전기요금 관련 당정 간담회에서 한전에 대해 “온갖 방만 경영으로 적자를 키워놓고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다 같이 죽는다는 겁박성 여론몰이만 하고 있다”며 “요금을 올려달라고 하기 전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촉구했지만 아직도 응답이 없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한전은 이 같은 지적에 인건비 절감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여당에 보고할 자구안에 임금 동결안을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원과 간부급 직원이 성과급을 반납하고 있지만 인건비 절감을 기본 급여와 일반 직원으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한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전의 1인당 평균 급여는 8288만원으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특히 억대 연봉자는 전체 직원 2만3563명 중 15%가량인 3589명이다. 한전이 계획대로 올해 급여 인상분(1.6%)과 성과급을 반납하면 1000억원 안팎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지난해 32조원 적자를 내는 등 악화일로인 회사 재무 상황을 호전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한전은 인건비 감축에 더해 추가 부동산 자산 매각 등을 포함, 다음주께 20조원 이상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인건비 감축, 조직 인력 혁신,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등이 포함된 추가 자구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감사원 등 감사에 대해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고 성실히 협조하겠다”며 “철저한 자정 조치를 이른 시일 내 강구하겠다”고 했다. 한전은 직원들이 가족 명의로 태양광 발전 사업을 한 데 대해 감사원 감사를 받는 등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한국에너지공대(한전공대)에 한전이 수천억원의 출연금을 내는 데 대해서도 여당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내용이 자구안에 포함될지도 관심사다. 한전은 올해 1320억원 등 2025년까지 2932억원을 한전공대에 출연할 계획이다.
정 사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도 밝혔다.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력 판매가격이 전력 구입가격에 크게 못 미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금 조정이 지연될 경우 전력의 안정적 공급 차질과 한전채 발행 증가로 인한 금융시장 왜곡, 에너지산업 생태계 불안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다”며 “이를 감안해 전기요금 적기 인상에 대한 이해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전의 자구안을 여당이 받아들일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인 다음달 초 전기요금 인상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 또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 자체엔 공감하고 있어서다. 내년 총선 일정 때문에 하반기로 갈수록 인상이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물가 상승과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해 소폭 인상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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