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이쯤 되면 `외교훈수`인지 중·러 `대리위협`인지
"안보실 1차장 즉각해임" 몰려간 巨野
美국무에 "정부 공식 사과" 요구서도
美 도청, '尹=우크라 무기지원' 못박기
자국 수뇌 퇴로 끊고 中露 막말에 가세
"中露 보복" 공포선동도…누가 이득보나
극단적 정쟁의 폐단이 외치(外治) 문제로까지 가감없이 번지고 있다. 용산과 상하관계를 감추지도 않고 '대장동' '이재명' '돈봉투' '송영길' 순으로 단일주제 동일발언만 쏟아내면서도 정말 단속해야할 건 못하는 여당. 최저 300만원 돈봉투 살포에 '식대'를 운운하거나 '이정근 녹취' 앞에선 귀 닫고 식언하고, 해외도피에 너그러운 제1야당. 이들의 진흙탕 내정은 눈 감아버려도 그만이지만, '여야가 없다'는 예삿말이 민생·경제·안보에 정상외교에서마저 무너진 '이질적' 상황엔 입을 다물기가 어렵다.
용산발(發) 외치 관련 논란이 선행됐다고는 하지만, 거대야당의 대응 수위가 이를 한참 추월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공학적 '표 계산' 잣대로도 이득인지 의문스러울 만큼, 그 이상의 '핵심 이익'이 걸린 느낌마저 준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에 나서는 24일로부터 불과 일주일 전(17일), 외교안보 관련 국회 4개 상임위를 위시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20여명은 대통령실 인근에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즉각 해임"을 외쳤다. 그 직후 청사로 진입하려다 제지당했고, 민원 접수에 그쳤다.
김태효 차장이 한미정상회담 의제 조율차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땅을 밟은 가운데, '미국 정보기관 도·감청 의혹'에 관한 특파원 질문에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으니 문책하란 것이었다. 하지만 안보실장 공석 와중 1차장까지 내치라니 수용될 리 없었다. 국무위원도 아닌데 꺼낸 '해임건의'는 어색하게 들리기도 했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지금 (대미)협상하는 당국자를 물러나라고 하면 그게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나"라고 따졌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민주당 측의 뚜렷한 응답은 없이 잡음은 계속됐다. 민주당은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가정보원 현안보고가 국민의힘의 '간사 협의 패싱' 반발로 불발된 뒤로도 소집 요구를 거듭했다.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민주당과 당 출신 무소속 의원들이 21일 "동맹 진정성을 훼손"했다며 "(도·감청 의혹) 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냈다. "12년 만의 국빈방문 성공을 기원"한다지만, 정상회담 무렵 "동맹 훼손"을 띄우는 효과만 점쳐진다.
"동맹 진정성"을 캐물을 자격도 되짚어보게 된다. 2020년초 한·미 조율 없는 대북사업에 '제재 우려'를 제기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에게 민주당이 "(일제) 조선 총독인가"라고 프레임을 씌우고, 친북단체가 덩달아 '일본계 미국인' 핏줄과 '콧수염' 따위를 비하 소재로 삼으며 외신까지 주목했다. 조기 사임설까지 돌았던 해리스 전 대사는 2021년 1월 퇴임한 뒤,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고 후임자 공백도 길었다. 미 상원의원을 만난 민주당 대선후보가 '한일 병탄은 미국 탓' 인식을 드러낸 기행(奇行)도 떠오른다.
19일자 영국 로이터통신의 윤 대통령 인터뷰 발언을 둘러싼 대응들도 위기를 '걱정하는지, 부채질하는지' 헷갈리는 수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 관해 윤 대통령은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과 같이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우리가 인도주의적 또는 재정적 지원만 주장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진영에선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군사·무기 지원을 기정사실화하며 "발언 철회" 압박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 측은 윤 대통령의 '원론적 언급'을 공격하기 위한 "외교 자해(自害)"라며 반박 중이다. 실제 윤 대통령의 언급은 민간 대량학살을 가정하면 기존 인도적·재정적 지원만 주장하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을 시사한 수준이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 제공 가능성을 열었다'는 취지의 해석과 제목을 단 것은 로이터 쪽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의 국민 공감대를 따지거나 '모험적'이란 비판은 할 수 있으나, 앞뒤 자르고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선언' 정도로 전제하면 왜곡·과장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무기 공급은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뜻한다"(외무부), "무기 제공은 반(反) 러시아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크렘린궁 대변인), "한국은 무기 제공의 즉각적인 부정적 영향에 대해 잘 알 것"(주한러시아대사관) 등 한국 대통령 발언 찍어누르기로 대응했다. 푸틴 최측근 인사로부터 북로(北露) 무기거래를 암시하며 조롱하는 SNS 발언까지 나왔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러시아 당국이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코멘트했다", "윤 대통령의 인터뷰를 정확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고 받아쳤다.
중국 사례도 마찬가지다.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윤 대통령의 인터뷰 내 언급에,대만 주권을 부정하는 중국에선 20일 외교부 대변인이 "대만 문제 해결은 중국인 자신의 일이며 타인의 '말참견'이 '용납되지 않는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하라고 폄하·압박했다. 외교부가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이라며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했으나, 21일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불장난"에 화를 입을 거라 겁박하고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의 잘못된 발언"을 규정해 '강대 강'이다.
이 와중 민주당은 20일 박홍근 원내대표가 미국의 '김성한 전 안보실장-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대화 도청'을 기정사실화하고 "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 가능성 발언을 당장 공식 철회하라"며 "민주당은 국익과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정부의 일방적 결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벽을 쌓았다. 추미애 민주당 전 대표도 "러시아의 발언은 결코 허언이 아니"라거나,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연히 건드려 중국의 염장을 질렀다"며 중로(中露) 입장을 챙기며 대통령에게 "미친 폭주를 멈추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장관급)을 지낸 박종수씨는 친민주당 성향 김어준씨의 방송에서 크렘린궁의 반응에 관해 "한국을 적국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라며 "러시아는 필요하면 자국민에 대해서도 독극물 암살을 하는데 이제 전 세계에 나가 있는 한국인들이 주요 타깃(목표)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러시아대사관 공사 출신이면서도 러시아의 독극물 테러를 공공연히 언급하고, 자국민이 타깃이 된다고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주장에서 조심성을 찾기가 어렵다.
민주당이 19일엔 이수진 원내대변인 논평에서 대중(對中) 무역적자 증가에 "윤석열 정부의 전략 없는 성급한 '탈중국 선언' 때문"이라며 "'탈중국'이란 단어를 쓰진 않았으니 탈중국을 선언한 적은 없단 말인가"라고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타박한 일도 있다. 일본과 달리 중국 상대론 수출다변화에 불편한 반응이다. 화룡점정으로 21일엔 이재명 당대표가 기자회견으로 "'전쟁지역에 살인을 수출하는 국가'가 무슨 염치로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를 호소할 수 있냐"며 윤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와 발언 철회를 요구했다.
또 러시아 입주 한국기업들을 열거하며 "폐업선고"라거나, 중국의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을 들어 "사드 사태와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피해"를 언급해 공포감을 불렀다. 흡사 '대리 위협'이다. 중·로와는 "우호관계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했고, 대일외교엔 "굴욕"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6·25 전쟁 대북원조를 사과한 적 없고 민주정을 택하지도 않은 '입씨름 상대들' 입장을 좇고, 미국에 패망한 일제와 민주국가로 재편된 일본을 가리지 않고 적대시하는 구태가 과연 효과적일까. 전임 민주당 정권을 '북한 수석대변인'에 '중국몽'으로 꼬집고, '중국·러시아 대변인까지 자처하냐'는 여당 반응은 예상범위 내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한국을 '동맹'이자 '파트너'로 재확인한 터다. 21일 공표된 한국갤럽 주례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윤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가 31%로 내렸던 만큼 (4%포인트) 반등하고, 5%포인트 앞서던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32% 동률로 따라잡혔다. 국민 시선은 유동적으로, 실시간으로 양당을 추적하고 있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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