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 젓가락에서… 공자의 '仁' 떠올리다 [책마을]

구은서 2023. 4. 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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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의 기원
크리스토퍼 윌리엄스 지음
고현석 옮김 / 이데아
312쪽|2만2000원
사물의 철학
함돈균 지음 / 난다
312쪽|1만7000원
물질 구조 탐구한 <형태의 기원>
학문 넘나들며 골조·패턴 분석
일상서 질문 찾는 <사물의 철학>
인문학자의 에세이에 가까워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주인공은 어려서 자신의 그림을 가지고 어른들에게 “무엇으로 보이나요?” 하고 묻는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모자’라고 답한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언뜻 중절모처럼 보이는 그 그림에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발견한다. 어린왕자와 어른의 대답이 달랐던 까닭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 때문이다. 사물의 겉모양만 보고 판단한 어른과 달리 어린왕자는 사물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쓸모나 필요의 차원, 즉 ‘도구’의 관점에서 벗어나 사물의 숨은 의미를 들여다봤다.

최근 출간된 <형태의 기원>과 <사물의 철학>은 일상 속 사물을 범상하지 않게 바라보는 책들이다. 무심하게 사용했던, 스쳐갔던 사물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형태의 기원>은 인류학, 고생물학, 지질학, 구조공학, 역학 등을 넘나들며 물질과 생물의 구조를 탐구한다. ‘물총새의 모습을 본뜬 덕분에 일본의 고속철도 신칸센을 제작할 수 있었다’는 식의 사례를 단순 나열하는 책은 아니다. 생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골조와 패턴을 분석한다. 마치 세상 곳곳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거나 메스로 해부하는 것 같다. 예컨대 저자는 ‘조류의 날개뼈와 강철로 된 트러스(truss)교의 형태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장력의 지배를 받는 자전거 바큇살, 압축력의 영향을 받는 바퀴 테두리 등부터 설명한다. 트러스교는 직선 철봉을 삼각형으로 조립해 쌓아가며 강도를 높인 다리 형태를 말한다. 서울의 한강철교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저자 크리스토퍼 윌리엄스는 디자인·건축 전문가다. 미국 뉴욕의 사립 미술전문대인 프랫인스티튜트를 졸업한 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를 거쳐 미국 안티오크대에서 디자인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넬대, UCLA, 캐나다 앨버타대 등에서 디자인과 건축을 가르쳤다.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활주 현상, 외팔보 구조…. 생소한 전문 용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나마 세밀한 삽화가 곁들여져 있어 이해를 돕는다.

<사물의 철학>은 보자기, 넥타이, 계산기, 레고 같은 사물에서 철학적 질문을 찾아낸다. 밥상에 놓인 젓가락에서 사람들끼리 갖춰야 할 덕목을 강조한 공자의 ‘인(仁)’ 사상을 떠올리고, 물티슈를 보며 오염과 흰색을 반대말로 여기는 ‘백색 신화’, 나아가 ‘나치즘’ 이야기를 발견한다.

특정 사물의 역사를 깊이 있게 성찰했다기보다는 개별 사물을 주제로 한 인문학자의 짧은 에세이에 가깝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서울대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저자는 마치 처음인 듯 사물 하나하나를 다시 사용하면서 세계를 근원적으로 경험해보려 노력한다”며 “이런 책을 쓰는 데 응당 필요한 꼼꼼함과 기발함도 그는 갖추고 있지만, 그보다 더 도드라지는 것은 과감함이며, 그것이 이 책의 개성을 이룬다”고 했다. “과감한 사유는 고만고만한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자극을 준다”고도 표현했다. 특정 사물에서 인문학적 키워드를 뽑아내는 저자의 논리에 모두 동의하긴 힘들지만, 기발한 발상이 인상적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저자 함돈균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지낸 문학평론가다. 저서로 <순간의 철학>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등이 있다. 제주도 세화해변 근처에서 책방 시타북빠를 운영 중이다.

이번에 나온 건 개정판이다. 2015년 세종서적에서 출간된 책을 고쳐 난다 출판사에서 새로 펴냈다. 개정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시차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예컨대 ‘이어폰’을 주제로 한 글에서 저자는 연인이 유선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모습을 바라본 경험으로 이야기를 연다. 이어폰 줄을 통해 연결된 연인을 나무에 비유하는데, 무선 이어폰에 밀려 이어폰 줄이 사라진 지금에 와서 읽기에는 흑백사진을 바라보는 듯 생경한 구석이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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