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석방제, '제2 신당역 비극' 막을 수 있을까
1·2·3심 최대 구속 개월 '6·8·8'→'12·12·8' 방안 제시도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도입 필요성이 촉발된 '조건부 석방제'를 두고 법원과 검찰이 시각차를 나타냈다.
현행 법원의 구속기간으로는 충실한 증거조사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사실상 제한하고 있어 예외적인 사유에만 최대 구속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판사 "구속·불구속 경계 사건 다수…제도 도입해야"
사법정책연구원·대한변호사협회·한국형사법학회는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구속제도의 개선 방안'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토론 주제로 오른 조건부 석방제는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이 다양한 조건을 걸어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현행 제도로는 구속과 불구속 중 한쪽만 택할 수 있는데 여기에 조건을 부여하면서 석방하는 '중간 지대'를 만들자는 취지다.
토론자로 나선 김유정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많은 법관은 실무 경험상 구속과 불구속의 경계에 있는 사건을 다수 접하고 있다"며 "적절한 조건을 부과해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종국적으로는 범죄피해자의 권리 구제에도 충실을 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나 재범 방지를 위해서는 접근금지나 전자장치 부착의 석방 조건이 있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교통사고 범죄라면 특정 차량 운행을 금지하는 등의 조건도 제안했다.
그는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조건부 석방 결정을 취소하고 피의자를 구금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안에 따라 심문 절차도 거쳐야 할 것"이라며 "석방 결정에 대한 검사·피의자의 항고권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사 "맘먹고 조건 위반하면 보복 범죄 못 막아"
반면 한대웅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은 "구속돼야 할 피의자가 조건부로 석방될 경우 피해자 보호에 역행하는 제도"라며 "명확한 결정 기준 부재로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 저하와 수사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반대했다.
그는 조건부 석방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주환이 벌인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주환은 2021년 10월 피해자의 영상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됐고 결국 지난해 9월 피해자를 살해해 법원을 향한 비난 여론이 일었다.
한 연구관은 "신당역 사건 피의자는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 도망할 염려가 없어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해당 제도는 영장이 발부되지 않을 피의자에게 조건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신당역 사건을 막으려면 현 제도상 구속되지 않을 사람을 구속할 수 있도록 제도가 운용돼야 하는데, 구속될 만한 사람을 '석방'하는 데 방점이 찍힌 조건부 석방제로는 전주환이 풀려나는 것을 못 막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한 연구관은 "설령 제도 취지에 반해 조건이 부과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적정한 조건이 부과될 수 있을지, 이를 감독할 수 있는지 불투명하다"며 "고의로 조건을 위반해 보복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방지할 수단이 될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재범 위험 구속 피고인 등 구속기간 늘려야"
또 다른 토론 주제인 '구속기간 제한 완화'는 예외적인 사안에만 이를 늘리자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였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구속기간은 1심 6개월, 항소심과 상고심 각각 8개월이다.
하지만 날로 사건이 복잡해지면서 구속기간 만료로 피고인을 어쩔 수 없이 석방하고 선고 후 법정구속하는 등의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석방된 사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피해자·증인에게 보복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촉박한 시간 속에 증거조사나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도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발제자로 나선 김윤선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부장판사)은 예외적으로 구속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며 그 사유로 ▲ 장기 10년 이상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죄 ▲ 재범 위험성 ▲ 피해자 위해 우려 등을 제시했다.
연장 기간과 관련해서는 1심과 항소심에선 각각 12개월로 하되 하급심에서 이미 연장됐을 가능성이 크기에 상고심에선 현행 8개월을 유지하는 방안을 내놨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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