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푸틴의 전쟁
26년 전 여름 한철을 모스크바에서 지냈다. 때로 인간의 기억에는 후각과 청각이 강렬하게 작용한다. 지하철이나 트롤리버스에 올라탈 때 코끝을 찌르던 시큼한 냄새가 생생하다. 유난히 어둡고 깊은 지하철 역사에는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가 울려 퍼졌다. 구걸하는 예술인이 넘쳐났다. 공산주의 붕괴 후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의 풍경은 낯설었다. 처음 생긴 맥도널드 매장에는 차려입고 외식을 나온 가족들이 줄을 섰다. 유학생들이 모인 자리에는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어설픈 토론이 빠지지 않았다. 머지않아 민주국가가 될 것이란 낙관론부터, 공산주의 회귀를 점치는 비관론까지. 하지만 누구도 몇 년 뒤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 탄생을 예상하진 못한 듯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최장기 집권자는 이오시프 스탈린(30년)이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권력은 보리스 옐친의 8년 집권을 거쳐 푸틴에게 넘어갔다. 옐친이 KGB 출신 푸틴을 발탁해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긴 것은 퇴임 후 자신의 부패 혐의를 수습해줄 적임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3연임 금지를 피하기 위해 잠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겼을 때도 총리를 했으니 무려 23년째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 헌법을 고쳐 자신이 2036년까지 크렘린궁에 머물 수 있게 만들어뒀다. 스탈린 기록의 경신이다. 러시아는 내년 3월에 대선을 치른다.
푸틴이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도 선거 승리의 문법을 따른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푸틴은 체첸 반군 진압, 조지아 침공, 크림반도 병합 등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제국의 부활이라는 이룰 수 없는 꿈으로 국민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전쟁의 명칭은 애초부터 '푸틴 전쟁(Putin's War)'이 됐어야 했다.
원래 러시아 역사는 키이우에서 태동했다. 몽골 지배하에서 운명이 갈렸다가 다시 한 나라가 됐지만 우크라이나인은 2등 국민이었다. 스탈린 시대엔 차별이 극에 달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생명을 바쳐 저항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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