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소통] 은둔처와 리더십

2023. 4. 21. 1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더는 본질에 집중할
고독한 은둔처가 필요하다
그곳에서 혁신이 싹튼다

카페인 중독의 시대다. 이른 아침부터 수없는 미팅에서 마시는 커피와 음료 속의 카페인 섭취도 있겠지만,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로 이어지는 모바일 관계 중독을 의미한다. 신호와 소음이 혼재된 정보 홍수로부터 잠시만이라도 벗어나 무엇이 진실로 중요한지 차분히 몰입할 시간이 간절하다. 돌파구는 없을까?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일본의 저명한 경영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가 강조하는 것처럼 세 가지 중 하나를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 사용법을 바꾸거나 생활 장소의 이동, 또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 빌 게이츠가 일 년에 두 번씩 한 보따리의 책을 들고 홀로 오두막에 들어간다는 '생각하는 주간(Think Week)'이 바로 그런 경우다. 요즘 화두인 챗GPT와 인공지능 같은 혁신적 프로젝트나 사업의 돌파구로 인해 새삼 은둔처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오두막은 혁신의 산실이었다.

리더에겐 고독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독일이 강대국이 된 배경에도 '고독'과 은둔처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패배한 뒤 재건 과정에서 빌헬름 폰 훔볼트에게 의뢰하여 베를린 훔볼트대학을 창립하게 되었을 때 내세운 두 개의 개념은 '고독과 자유(Einsamkeit und Freiheit)', 대학은 지식인의 은둔처 역할을 하였다. 혁신적이고 독립적인 사고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다.

은둔처는 숲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심의 빌딩 옆에도 숨어있다. 젊은 시절 존경했던 직장 상사는 힘든 과제를 시키고 나면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 한잔할까?'라고 제안하곤 했다. 그가 데려간 곳은 화려한 식당이 아니라 뜻밖에도 재래시장 옆의 소박한 주점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그를 가리켜 '아무개 학생'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가 대학생 때부터 이용했기에 생긴 습관으로 족히 30년 이상 된 단골 식당임을 알 수 있었다. 허름한 그 식당은 그만의 은둔처였다.

함께 어울려 먹는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식탁은 육체의 허기를 해소하고 정신적 갈증을 나누며 이성을 유혹하는 공간이며, 문화 생산자로서도 역할을 하지만 사업이 이뤄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언론인 시절 만났던 화상(華商)연합회 회장과의 식탁이 떠오른다. 그의 은둔처는 연희동의 화교가 운영하는 중식당이었다. 금문 고량주 잔이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음식이 아니라 경험을 들려주기 위해 나를 초대했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화교와 비즈니스를 하려면 원탁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둥근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술잔이 오가면서 진짜 업무가 이뤄지기 때문이지요. 다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처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인상, 신뢰, 품위 같은 것을 살핀 뒤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두 번 만나고, 본격 업무 이야기는 세 번 만났을 때 나누라고 저는 배웠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내가 한류 콘텐츠를 수출하는 회사의 대표이사가 되어 대륙시장 문을 두드리게 되었을 때 그가 해준 말은 값진 조언이 되었다. 만나자마자 형 동생 하며 흉금을 트자는 한국적 방식은 사적인 모임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중요한 자리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 숨겨진 비언어적 표현의 미묘함을 포착할 줄 아는 것이 곧 실력이었다.

은둔처는 곧 리더의 훌륭한 소통수단이다.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은둔처가 없다면, 그는 무색무취한 리더십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은둔처를 내게 보여다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리더인지 말해 주겠소!"

[손관승 리더십과 자기계발 전문 작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