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래잡기] 스스로는 빛나지 않는 별
영화 '엘비스'를 보면서 부와 명예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물론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영화라고 해도, 음악이 좋아 가수로서의 삶을 택한 한 남자가 대중의 사랑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맛보고 가정과 자기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만인의 연인으로만 살다 가는 특별한 여정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유명 연예인을 둘러싼 추문이 들려올 때마다 착잡한 심경이 된다. 음주운전, 병역 기피, 세금 포탈에 심지어 요즘 우리나라를 가장 긴장시키는 마약 중독까지 연루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본업이 노래고 연기고 춤이고 예능이지, 한 인간으로서 완벽할 필요는 없어 놀랄 일이 아닌데도 카메라 앞뒤의 모습이 달라 우리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의 배신감은 어쩔 수 없다.
19세기 후반 도시화가 진행된 곳에서부터 생겨난 대중문화는 점점 하나의 산업으로 굳어지면서 소수의 스타를 통해 주위 관계자들이 최대한의 수익을 내는 구조로 변모해갔다. 좋은 영화와 노래를 만드는 것에만 관여하고, 개인을 작품에서 분리할 수 있다면 모든 연예인들이 보다 행복하련만, 현대사회의 스타 시스템은 상품으로서의 인간을 작품의 흥행에서 분리하지 않는다. 20세기 중반부터 자본이 동반된 미국 연예계의 영향력이 세계를 장악하며 최초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월드 스타들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중에서도 엘비스는 가장 큰 별이었고 가히 음악으로 사회적 변혁을 이끈 인물로 추앙받을 만하다.
영화 '엘비스'에서도 언급되지만, 1950년대 말 로큰롤의 황제로 등극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이후 다수의 B급 영화에 끊임없이 출연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고갈시켜 갔다. 현대 소비 사회와 유명인에게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에 관심이 많았던 팝 아트의 아버지 앤디 워홀 역시 이런 현상에 주목한 작품으로 단숨에 미술계의 슈퍼스타 반열에 올랐다. 워홀은 영화 '플레이밍 스타'의 홍보용 사진에 등장하는 총을 든 엘비스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노래를 잘하는 가수 엘비스가 아니라 영화사가 만들어내는 스타 엘비스를 내세운 '더블 엘비스'를 1963년에 발표하였다. 마치 깜빡깜빡 점멸하듯 형상이 겹쳐진 작품은 노래를 잘했던 실존인물을 표현했다기보다는 대중의 뇌리에 가끔씩 떠오르는 이미지, 만들어진 스타로서의 엘비스가 어른거린다.
워홀은 작품의 주제뿐만이 아니라 제작 방식에도 대중문화의 코드를 빌려왔다. 은색 배경을 통해 '은막'의 화려한 스타를 표현하는 동시에 자신이 택한 실크스크린 판화 기법이 더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신경 썼다. 같은 이미지의 무한 반복으로 마치 영화 속에서처럼 짜잔 하고 앞뒤로 움직이는 듯한 엘비스는 자신의 이미지를 계속 쥐어짜면서 하나의 전형으로 전락하는 모습 그 자체다. 실제로 엘비스 프레슬리는 약물에 의존해 끝없이 비슷한 공연을 하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대중이 과연 무엇에 열광하는지를 고찰하였던 워홀에게 유명세로 좌지우지되는 연예계의 고질병은 비단 엘비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오랜 기간 고민해서 만들어야 하는 작품조차 통조림을 찍어내듯 양산하며 소비할 상품만 만들어내는 연예산업이라는 것이 오히려 대중의 사랑으로 한 인간을 파괴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 워홀이었는데, 자신 또한 '공장형'으로 작품을 양산하는 것으로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세상의 모습을 비판하였다.
돈도 많이 벌고 만인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이 간혹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는 것을 보면 스타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는 유명인들이 자기 속을 더 단단히 채워 하나의 이미지 상품으로 소비되는 것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오히려 선한 영향력을 더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도 허울뿐인 이미지에 매혹되어 우리가 그들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까먹지 말기를. 비단 스타뿐만 아니라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면 남의 '좋아요' 하나를 더 받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 중심을 더 단단히 세워 적극적으로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건설적인 듯하다.
[이지현 OCI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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