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세사기 피해주택, LH 매입임대로 활용”···‘공공매입’ 반대 하루만에 선회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사들여 매입임대주택으로 활용한다. 전날까지만해도 공공매입에 선을 그었던 정부가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로 퇴거 위기에 내몰린 피해자가 급증하자 하루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피해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땐 세입자에게 1차적으로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되, 세입자가 이를 원치 않으면 정부가 대신 매입해 피해자들이 당장 쫓겨나는 일은 막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임차인 보증금은 반환하지 않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LH 사장은 21일 LH 서울지역본부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전세피해주택 우선매수권 활용방안을 협의했다. 원 장관은 이날 “이미 예산과 사업 시스템이 갖춰진 LH 매입임대제도를 확대 적용해 전세사기 피해 물건을 최우선 매입 대상으로 지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범정부 회의에 제의하려 한다”고 밝혔다.
올해 계획된 LH의 매입임대주택 물량은 2만6000호, 이를 위해 책정된 예산은 5조5000억원이다. 여기에 각 지자체 주택도시공사 물량까지 합치면 3만5000가구까지 매입이 가능하다. LH는 올해 초 ‘미분양 아파트 고가 매입 논란’이 불거진 후 4월 중순까지 매입임대제도 전반에 대한 감찰과 제도개선을 진행했는데, 이로 인해 매입 일정이 지연되면서 물량 확보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원 장관은 “일단은 경매 절차를 유예해뒀으나 빠른 시일 내 경매가 개시되면 우선매수권을 사용해 필요한 경우 전량 매수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 정도까지는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중심으로 매입한다 해도 (공급 계획이) 크게 왜곡되는 결과는 아닐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정부는 바로 전날까지도 “국민의 세금으로 선순위채권자들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며 공공매입임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하루만에 한 발 물러났다. 당정은 지난 20일 전세사기 피해임차인에게 경매 주택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입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는데, 해당 법안에 LH의 우선매수권 관련 조항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LH가 피해주택을 얼마에 매입할 것인지는 입법안이 나와봐야 알 수 있다. 부도임대특별법 등 임차인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던 과거 사례를 보면, 작전세력이 저가 낙찰을 유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고가 낙찰’ 규정을 두고 있다. 원 장관은 “단독 입찰인 경우 계속 유찰시켜 할인된 가격에 사는 것도 법원이 허용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아있다”고 했다.
또 어떤 주택을 전세사기 주택으로 볼지도 정리가 필요하다. 단순 전세금 미반환인지, 전세사기 피해 물건인지 기준을 정하고 매입 대상을 심의할 주체도 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은 오는 23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어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단 LH가 전세사기주택을 매입하더라도 임차인 보증금을 반환하지는 않는다. 원 장관은 “보증금을 돌려주는 재원은 나오지 않는다”며 “LH가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처럼 피해자들이 혼동하고 정쟁을 삼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명확히 선을 긋는것”이라고 했다.
이날 논의한 대로 입법안이 마련될 경우, LH는 전세 수요가 있는 역세권 주택을 경매를 통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입할수 있게 된다. 경매 낙찰과 동시에 저당권과 임차권 등이 말소되기 때문에,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필요도 없다. 기존에 확보한 매입임대주택 예산을 활용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재원 투입 부담도 적다.
피해자들은 거주 중인 주택에서 퇴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수 있다는 점에서 주거안정을 얻을 수 있다. 매입임대는 2년 단위로 최장 20년까지 거주 가능하며, 임대료도 시세의 30~50% 수준으로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보증금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근본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경매 절차를 통해 공공기관이 매입하며 지불한 대금이 은행 등 선순위 채권자들에게 먼저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매입기관이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임차보증금을 먼저 지급하고 채권을 인수하는 ‘선지원 후구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이에 부정적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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