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깡통전세만 소개받아"…벼랑 끝서 지원센터 찾은 피해자들

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2023. 4. 2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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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전세 피해자들 지원센터 방문↑
보증금 못 주니 소유권 가지라는 통보
중개사가 주변 '역전세' 매물들만 소개
시세로 믿고 서둘러 계약한 20~30대들
대출, 결혼자금 등으로 마련한 전세금
소유권등기, 반환소송 등 법률·금융 상담
"대응 방향 조언…단 선택은 피해자 몫"
수원 권선동에 위치한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 모습. 박창주 기자


21일 오전 10시쯤, 경기 수원시 권선동에 있는 '전세피해지원센터'에는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사무실 여기저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굳은 표정의 20~30대 방문객들이 들어와 접수처 자리에 앉았다. 전세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사례 유형에 대한 접수를 마친 뒤, 바로 옆 상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금융과 법률로 나뉜 상담부스에서 변호사와 법무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관계자 등이 피해자들을 맞았다.

빚더미 앉게 된 피해자들…소유권이냐 반환이냐 '기로'

상담을 받은 A(20대·남)씨는 최근 화성 동탄지역 오피스텔 전세 사태의 피해자다. 2년 전 직장인 삼성전자에서 받은 사내대출금(70%)과 적금을 합쳐 1억 5백만 원에 전세계약을 했다. 그런데 계약 후 입주를 하던 날 소유주 명의가 바뀌었다고 한다. 새 집주인은 250여 채 규모의 전세사기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박모씨다.

이틀 전 A씨는 박씨 측 법무사로부터 '임대인 사정으로 6월 10일까지 소유권이전등기를 접수해야 국세 체납으로 인해 보증금 순위가 보존되지 않는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자를 받고 불안감을 느꼈다고 했다.

자신이 전세 피해자임을 인지한 그에게 얼마 전 당첨된 아파트 청약도 마냥 기쁜 소식만은 아니었다. 보증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집주인 통보처럼 살고 있는 전세집의 소유권을 이전 받는 게 방안으로 꼽히지만, 청약으로 아파트를 매입하게 되면 다주택자가 돼 세금 부담까지 떠안을 수 있어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A씨는 "집 구할 때 깡통전세들 밖에 소개를 못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입주했던 건데 당장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니까 빚만 남게 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이런 일만 없었다면 청약 당첨이 희소식이었겠지만, 지금은 골치만 더 아프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 인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은 곳이 지원센터다. "답답한 마음에 센터에 와서 소유권 이전과 다주택일 경우의 취득세 문제에 대해 잘 몰랐던 법적 절차나 문의기관 등을 안내받았다"며 "다만 당장 해결책을 얻은 것은 아니고 가이드라인 정도만 상담을 나눴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평소에도 우울함을 자주 느끼는 성격이었는데 전세 피해자가 되고나서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아직도 실감이 안 나고 씁쓸하기만 하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다음 주 정부에서 대책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내용에 따라 소유권을 받을지, 경매를 통해 보증금 일부라도 먼저 건질지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전세' 시세로 믿게 만든 중개사, 상담 후 '선택은 피해자 몫'

동탄 일대 오피스텔 전세 계약 등을 담당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박창주 기자

'울며 겨자 먹기'로 역전세(전세가가 매매가와 비슷하거나 높은 상태) 계약을 맺고 피해를 본 것은 B(30대·여)씨도 마찬가지다. B씨의 집주인은 또 다른 동탄신도시 오피스텔 전세사기 사건(40여 채 규모)으로 주목받은 지모씨다.

2년 전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사무소가 모두 역전세 매물만 보여줘 이를 '시세'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해당 중개사무소는 지씨와 박씨 두 사건 모두와 연루된 업체다. 폐업 후 지난달 중순 대표자가 바뀐 상태다.

집값이 비쌌던 데다 이직 준비로 인해 서둘러 거처를 마련해야 했던 B씨로서는 역전세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B씨는 애초 월세로만 살아오다 목돈을 모으기 힘들어 전세를 구했던 것. 그는 "'역전세 알고도 왜 들어갔느냐'는 비난 댓글들도 봤는데 집 구하던 입장에서 중개사만 믿고 시세로 알고 계약했던 것"이라며 "세입자들 잘못이 아닌데…"라며 말 끝을 흐렸다.

결국 은행대출에 동생 결혼 준비자금까지 끌어와 마련한 보증금을 떼일 처지다. 1년 전 재계약 때 집주인이 전세금을 5백만 원 더 올리면서 피해금은 더 커진 상황.

B씨는 "다른 피해자들도 비슷하게 전세금을 올려줬다고 하던데, 그렇게 챙긴 돈들을 이미 다 뒤로 빼돌리지 않았나 싶다"며 "소유권 받아가는 게 최선일 수 있다는 조언 등을 상담 받았지만, 집주인이 권했던 대로 되는 것 같아서 그러고 싶지도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 받으러 센터에 왔으나 결국 선택은 피해자 몫이다"라며 "그나마 상담을 통해 얻은 정보들로 사기 피해에 따른 담보대출 지원 등을 신청해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피해지원센터 세입자 발걸음↑…'피해확인서' 발급 관건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 입구 모습. 박창주 기자

A, B씨가 방문한 전세피해지원센터는 전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시설로, 전국에서 운영 중인 4개소 중 한 곳이다. 경기도 센터의 경우 지난달 31일 개소 후 보름여 만에 상담신청 건수가 150건에 이른다. 인근 화성시에서 대규모 전세 피해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 관계자는 "피해자들 볼 때마다 안타깝다. 주로 계약 끝나고 보증금을 못 받는 분들이 반환소송, 경매, 금융 등에 대해 문의하러 온다"며 "현재 10여 명의 센터 인력으로 예약을 받아가며 순차적으로 상담 등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피해자들은 이 같은 전세사기에 대한 '피해확인서' 신청서를 센터를 통해 신청·접수했다. HUG에서 발급하는 피해확인서는 주거지원과 금융지원 서비스 등을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세입자가 집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하는 등 극한 사례에 대해서만 발급돼, 급격히 늘고 있는 전세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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