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되찾은 간호사들, 환자 보는 태도 달라져”

2023. 4. 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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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조 위원장
“주 4일제 실험, 100점 만점에 120점”

“현장의 만족도는 다른 어떤 제도와도 비교할 수 없다.”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주 4일제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를 이렇게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월 1일부터 주 4일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8월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노조는 주 4일제(주 32시간) 시범사업에 합의했다. 병원으로는 국내 최초로 주 4일제를 도입했다. 세브란스노조는 2019년부터 사측에 주 4일제 도입을 요구해왔다. 높은 업무 강도, 교대근무 등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신규 간호사들의 퇴사율이 50%에 육박했다. 권 위원장은 “그동안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병원 업무 특성상 근무일수를 줄이지 않는 이상, 업무 강도를 낮추기는 어려웠다”라며 “간호 업무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소진이 심할 수밖에 없는데 병원과 분리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노조위원장 3선에 성공했다. 그는 “감사하게도 현장에서 노조를 통해 일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주 4일제 시범사업의 영향력도 컸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7일 권미경 세브란스병원 노조위원장이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주 4일제 근무에 대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주 4일제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높은 업무 강도로 지난 몇 년 동안 신규 간호사의 퇴직률이 절반 가까이 됐다. 병원은 하루 8시간만 근무하는 구조가 절대 안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응급상황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인수인계·차팅(간호 차트 기록) 등 환자 간호 업무 외에도 일상적인 업무가 많다. 세브란스는 3교대제로 오전 6시 출근, 오후 2시 출근, 밤 10시 출근제다. 하지만 6시 출근이라고 해서 6시까지 출근해 바로 환자를 간호할 수는 없다. 인수인계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신규 간호사들은 6시 출근이면 2시간 전인 새벽 4시에 출근하기도 한다. 인수인계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조뿐만 아니라 병원도 TF를 만드는 등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업무가 끝난 후 차팅하는 데에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 시간은 노동시간이 아닌 것처럼 간주돼 왔다. 노동시간으로 편입해 특근으로 인정받도록 바꿨다. 그렇더라도 문제의 본질인 업무 강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쉬는 날도 ‘당직콜’인 사람은 병원에서 콜이 오면 바로 달려가야 하는 대기상태로 있어야 한다. 결국은 병원에 덜 나오도록 해야 업무 강도를 낮출 수 있다는 판단을 했고, 출근일수를 줄이는 게 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신규 간호사의 퇴사율이 높다.

“오죽하면 입사하고 1년 후에 돌잔치를 하는 문화가 생겼겠나. 세브란스만이 아니다. 다른 종합병원도 마찬가지다. 상급 종합병원의 특성상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다. 중환자실뿐만이 아니다. 일반 병동도 사실 준중환자실의 개념으로 본다. 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친구들이 환자의 대소변 수발을 비롯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 등을 일상적으로 보고 겪는다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업무 강도가 높은 데다가 근무여건도 불규칙한 교대근무와 야간근무가 일상이다. 게다가 스케줄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많다. 간호사는 신체적·감정적으로 굉장히 소진되는 직업인데 이를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견디지 못하고 점점 더 많은 간호사가 현장을 떠나는 배경이다. 세브란스에서 다른 직종은 대부분 정년을 채우는데, 간호사 직종만 정년을 채우는 사례가 거의 없다.”

-주 4일제 시범사업을 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고 들었다.

“세브란스노조는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최대 규모의 병원 노조다. 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다른 병원들에 미치는 영향들이 컸다. 2019년에 주 4일제를 연세의료원 측에 처음 요구했다. 그때 의료원의 첫 마디가 ‘아무리 세브란스노조가 선도적이긴 해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였다. 교섭을 하면 보통 사측이 데이터를 갖고 와 노조를 설득하는데, 거꾸로 노조가 여러 가지 자료를 갖고 가 설명했다. 씨알도 안 먹혔다. 의료원도 ‘주 4일제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은 맞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라고 하더라. 노조는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면 우리가 빨리하자’고 설득했다. 경영진들에게 이건 노조를 위한 일이 아닌, 직원들을 위한 일이라고 끊임없이 부탁하고 설득했다. 의료원도 결국에는 ‘정말 진심이냐, 못 이기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시범사업부터라도 해보자, 이렇게 해서 시작하게 됐다.”

-주 4일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은 어떠했나.

“1년간 3개 병동에 각 5명씩 모두 15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하기로 합의한 후, 실무논의를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임금 문제가 있었다. 의료원은 근무일수가 5분의 1이 줄어드니까 임금 총액의 20%를 삭감하자고 주장했다. 노조는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지향하지만, 시범사업이다 보니 해당 병동만 혜택을 보게 할 수 없어 임금 삭감에 합의했다. 다만 의료원이 제안한 20% 삭감이 아닌 10% 삭감을 요구했고, 이에 합의했다. 시범사업은 업무 강도가 높고 퇴사율이 높은 병동에서 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노사 모두 이견이 없었다. 6개월 이상 근무한 간호사는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쟁점이 됐던 건 추가고용 문제였다. 한 병동당 1.5명씩 배정해 3개 병동에 모두 5명을 투입하기로 했다. 인력 충원은 신입 직원이 아닌 경력직으로 투입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서도 노사가 합의에 이르렀다.”

-지원자가 많았나.

“1병동당 약 30명의 간호사가 근무한다. 그중 5명인데, 신청자가 7~8명 정도였다. 그래서 1년을 6개월로 나눠 전반기 5명, 후반기 5명으로 하기로 했다. 각 병동에 10명씩 모두 30명으로 대상을 늘렸다. 사업을 지켜보다가 새로 하고 싶다는 지원자도 생겨 정원 외 대기자도 있는 상황이다.”

-직원들의 만족도는 어떤가.

“만족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고 한다. 주 4일제는 주 5일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상을 찾게 됐다고도 했다. 휴가를 연결하거나 근무표에 따라 최장 5일도 연속으로 쉴 수 있다. 주 5일제에서는 이틀을 쉰다. 업무 강도가 세다 보니 하루는 정말 거의 녹초가 돼 잠만 잘 수밖에 없다. 보건노동자들 설문조사를 해보면 쉬는 날 뭐하냐는 질문에 대부분 ‘잔다’고 응답한다. 주 4일제를 하면서 쉬는 날이 하루나 이틀 더 생기니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취미생활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업무집중도도 달라졌다.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당연히 달라졌다.”

-올해 교섭에서는 어떤 논의를 할 계획인가.

“의료원에서는 시범사업만 하고 끝내고 싶어한다. 노사합의이기 때문에 의료원이 이를 마음대로 없앨 수 없는 구조이긴 하지만, 또 노사합의이다 보니 매년 합의를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 중이다. 주 4일제를 원하는 부서가 있다고 하면 언제든지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노사가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원이 인건비 부담에만 치중하지 않고, 사람 중심의 조직, 구성원의 만족도, 오랫동안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좋은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에 좀더 초점을 맞춰줬으면 좋겠다. 138년이라는 병원의 역사처럼 직원들도 끝까지 오래 다닐 수 있는 튼튼한 병원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의료원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

-주 4일제가 공공병원이나 다른 중소 민간병원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을까.

“세브란스노조만 잘되자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세브란스의 현장 사례가 전체 노동자들에게 적용됐으면 한다. 사회적으로 노동시간 단축 입법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의료전달체계가 심각하게 왜곡된 만큼 공공의료 근무여건 개선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본다. 세브란스는 현장 사례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나머지는 국회와 정부가 입법을 통해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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