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마지막 희망, 팀 가디언즈가 온다
감독·배우 최초 내한도 주목…한국에 대한 각별한 사랑 고백
반복되는 ‘N번째 마지막 희망’ 속 《가오갤3》의 역할은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은 그야말로 완벽한 피날레였다. 페이즈3의 마침표가 너무나 완벽했던 탓일까, 아니면 마블의 성공을 이끈 원년 히어로들의 부재 때문일까. 페이즈4를 넘어 페이즈5에 돌입한 지금까지도 마블은 《엔드게임》 이후 쭉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빈 파이기 마블스튜디오 사장이 "《엔드게임》 이후 가장 중요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던 《앤트맨3》 역시 그 막중한 책임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N번째 마지막 희망'이라며 마블에 대한 기대감을 놓지 않았던 팬들은 이제 5월 개봉을 앞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이하 《가오갤3》)를 마지막 희망으로 지목하고 있다. 마블 팬덤이 이 영화에 또 한 번의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국내에서는 큰 흥행사를 쓰지 못한 시리즈임에도 《가오갤》에 대한 팬덤이 확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딘가 엉성한 멤버들과 B급 코드
마블 영화 최초로 우주까지 무대를 확장한 영화. 《가오갤》이 MCU에서 지닌 중요한 역할이다. 마블의 가장 강력한 빌런인 타노스의 등장을 이끌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연결되는 서사를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가오갤1》은 2014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3위를 기록했고, 2017년 개봉한 《가오갤2》는 8억6000만 달러 이상의 월드와이드 흥행 수익을 쌓아올리며 전편의 기록을 넘어섰다.
그동안 히어로의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온 《어벤져스》와 달리, 뉴페이스들이 등장하는 《가오갤》은 낮은 인지도로 인해 한국에서 많은 관객을 끌어오지 못했다. 《스타워즈》도 한 수 접고 들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관객들이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실제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 높은 평점을 기록하며 입소문을 쌓아갔고, 《가오갤2》 개봉을 앞두고는 《가오갤1》 재개봉이 이뤄지기도 했다. 2주간 재개봉한 《가오갤1》은 당시 CGV 예매율 2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기 위해 선행돼야 할 작품으로도 거론되면서 《가오갤》의 매력은 차츰 부각되기 시작했다.
《가오갤》 캐릭터들은 기존 마블의 히어로와는 다르다. '어벤져스'가 '슈퍼히어로'들이 모여 구성한 것이라면, 팀 가디언즈는 '어쩌다 모여서 히어로가 된 것'이라고 스타로드 역을 맡은 크리스 프랫이 설명한 적이 있다. 좀도둑, 암살자, 현상금 사냥꾼, 죄수가 모여 결성한 외인구단.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인물들이 모여 꾸려진 것이 팀 가디언즈다. 허세가 가득하거나, 까칠하거나, 단순 무식하거나, 살벌한 인물이 모두 존재한다. 심지어 인간이 아닌 캐릭터도 있다. 동물의 DNA를 지닌 로켓과 식물인 그루트가 팀에서 해내는 역할은 부수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구성하는 팬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루트는 이미 지난해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솔로로 데뷔했고, 로켓은 《가오갤》의 마지막 시리즈 서사를 끌어간다.
이미 《어벤져스》라는 히어로물의 절정을 맛본 사람들에게, 전에 보지 못한 개성을 지닌 《가오갤》의 캐릭터들은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동료가 아니었던 이들이 마치 불협화음처럼 어우러지는 과정이 진정한 다양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동안 마블은 영화에 다양성을 도입하는 것을 과제처럼 여겨오면서 여성 히어로와 흑인 히어로를 본격적으로 데뷔시키는 것을 넘어 유색인종,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대표적인 작품이 여러 히어로가 모인 《이터널스》로,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반감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돌아보면 《가오갤》은 마블의 PC(정치적 올바름)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여성, 유색인종, 동식물 등 엄청난 다양성을 담고, 그 캐릭터의 매력을 잘 부각시킨 좋은 사례였던 셈이다.
익숙한 영웅 서사 대신 택한 것은 B급 감성을 녹인 유머 코드다. 진지해질 것 같으면 흐름을 끊어버리는 싱거운 유머를 곳곳에 적재한 덕에 《가오갤》의 서사 자체는 무겁지 않지만, 1편에서 2편으로 가면서 감성의 농도는 진해졌다. 《가오갤1》에서 어머니와 스타로드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2편에서는 친아버지 에고와 아버지 같은 존재인 욘두를 함께 보여주면서 진정한 '부성애'를 얘기하고자 했다. 로맨스와 우정, 가족이라는 정서는 흔하고 보편적이지만 관객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가장 보장된 코드이기도 하다. 이를 적절히 버무린 《가오갤》이 'B급인 척하는 명작'으로 평가받는 것도 단순한 스토리 속에 뭉클한 서사를 성공적으로 녹여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건 감독은 이번 시리즈에서 캐릭터의 서사와 감정을 구축하는 데 특히 큰 노력을 쏟았다고 했다. 네뷸라 역을 맡은 카렌 길런은 "폼 클레멘티에프(맨티스 역)와 함께 각본을 읽으면서 거실에서 같이 웃고 울었다. 주로 울음이 많이 나왔다"고 했다. 《가오갤3》는 로켓의 아픈 과거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스토리인 데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최종장. 이번 시리즈가 팬들의 감성을 건드릴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제목에 'Volume'이 붙은 이유
다시 한번 《가오갤》의 제목을 들여다보자. 제목에 붙은 단어는 'Volume'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등 속편에 부제를 달아온 다른 마블 영화와 달리, 《가오갤》은 시리즈별로 Volume 2, Volume 3를 제목에 붙여왔다. "《가오갤》 시리즈에서는 '음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건 감독의 말이다. 실제로 《가오갤》의 음악은 영화 못지않게 사랑받았는데, 《가오갤1》의 OST 앨범은 발매 이후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됐고, 미국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가오갤》에서 음악은 영화의 외적 요소에 그치지 않는다. 워크맨 속 음악은 지구에서 우주로 간 스타로드의 정서적인 부분을 지지해 주는 역할도 한다. 어머니가 준 워크맨은 추억과 향수의 매개체이고,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관객과 영화가 소통하는 접점이 된다. 스타로드가 듣는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에 들어있는 1970~80년대 올드팝은 최첨단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블록버스터와 공존하지 못할 것 같은 복고적인 분위기를 영화에 더한다.
시퀀스마다 등장하는 노래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역할도 한다. 우주 괴물과 맞서 싸우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베이비 그루트도 춤추게 하는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대표곡 《Mr. Blue Sky》가 나오고, 스타로드가 가모라와 춤을 추는 동안에는 샘 쿡의 《Bring It On Home to Me》가 들린다. 스타로드가 욘두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캣 스티븐스의 《Father and Son》이다. 그야말로 '음악의 중요성'을 입증한 장면이기도 하다.
제임스 건 감독은 사운드 트랙의 모든 곡을 스스로 고르고, 이 노래를 스크립트에 끼워넣는다고 했다. 그는 노래가 영화에 유기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타로드를 연기하는 크리스 프랫은 "현장에서 늘 음악을 틀어놓고, 음악을 틀 수 없을 때는 소형 수신기를 귓속에 넣어 들으면서 촬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장면의 음악과 리듬을 이해하고 맞춰서 연기하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음악과 연기가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음악은 여전히, 《가오갤》에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볼륨을 더욱 높인다. 스타로드의 워크맨은 에고로 인해 부서졌지만, 그에겐 이제 욘두가 준, 300곡이 들어있는 MP3가 있다. 1970~80년대 노래만 등장했던 전편과 달리, MP3 속에는 1990년대의 올드팝까지 포함됐다. 더 많은 시대를 아우르는 노래가 《가오갤3》에 등장한다는 얘기다. 첫 곡은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명곡 《Creep》(1992)이다.
월드투어 첫 번째 국가로 한국을 선택
이번 시리즈 개봉을 앞두고 감독과 배우들이 한국을 찾았다. 《가오갤》 팀이 모두 함께 내한한 것은 시리즈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가오갤3》의 월드투어 첫 번째 국가로 한국을 택했는데, 이번 방한이 한국에서 연이은 부진을 겪고 있는 마블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마블 출연진이 내한한 후 개봉한 영화들의 성적이 좋아 내한 행사가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마블의 의도가 어땠건, 이번 내한은 팀 《가오갤》의 한국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 4월1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임스 건 감독은 《기생충》(2019), 《마더》(2009) 등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가오갤3》의 주요 액션 장면에 대한 영감을 정병길 감독의 영화 《악녀》(2017)에서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맨티스 역의 폼 클레멘티에프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배경이 《올드보이》(2003)였다고 했다. 크리스 프랫은 "한국은 영화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리더가 되고 있다"며 블랙핑크, 뉴진스 등 K팝 가수들을 거론했다. 그는 내한을 앞두고 한국 팬들이 붙여준 '성길(스타로드)'이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인사 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한국을 사랑하는 팀 《가오갤》은 마블을 사랑하던 한국에 다시 한번 애정을 심어줄 수 있을까. 2017년 5월3일 개봉한 《가오갤2》 이후 정확히 6년을 기다려온 팬들의 기대를 '마지막 희망'이 된 《가오갤3》가 충족시킬 수 있을까. 제임스 건 감독은 자신의 마지막 마블 영화인 《가오갤3》가 MCU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라 자부했다. 시리즈의 최종장을 맞이한 《가오갤3》가 '완벽한 피날레'를 그려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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