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주님도요" 일반인들과의 대화 책으로 펴낸 가난한 이들의 교황
영화 '두 교황'의 백미는 교황 베네딕토와 추기경 베르골리오(현 교황 프란치스코) 간 설전이다.
두 성직자는 모두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 보수의 상징인 베네딕토는 교회의 세속화에 반대한 뛰어난 교리신학자였고, 프란치스코는 인간 중심의 교회를 외친 실천적 성직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를 존중한다. 둘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둘 다 인간적이었으며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다음 장면을 보자.
"변화는 타협입니다."(베네딕토)
"주님께서 주신 삶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정적인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까지도요. 심지어 주님도 마찬가지예요."(프란치스코)
"주님은 변하지 않아요."(베네딕토)
"주님은 변합니다."(프란치스코)
"주님이 항상 움직인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요."(베네딕토)
"이동하면서요."(프란치스코)
이렇게 사사건건 맞서는 프란치스코에게 베네딕토는 교황을 맡아 달라고 제안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와야 교회가 반성하고 거듭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진정한 거인의 풍모다.
프란치스코가 과거의 실수들을 고백하면서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자 베네딕토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신이 아니에요. 신과 함께 우리는 움직이고 살고 존재할 뿐입니다. 신과 함께 살지만 신은 아니에요.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최근 출간된 교황 프란치스코의 대화록 '가난한 자의 교황, 세상을 향한 교황'을 읽다가 영화 '두 교황' 생각이 났다.
이번 책은 교황이 평범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수록하고 있다. 프란치스코다운 면모가 곳곳에 담겨 있다.
월급이 얼마냐는 신자의 짓궂은 질문에 교황은 답한다.
"월급이 없어요. 하지만 여기서 먹을 것을 줍니다. 신발이 필요하면 신발을 사줍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저는 버는 돈이 없으니 가난합니다. 하지만 저의 가난은 허구입니다. 부족한 게 전혀 없으니까요."
자신의 가난은 허구일 뿐이라고 자책하는 모습에서 그가 왜 '가난한 자의 교황'이라 불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단점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화를 쉽게 냅니다. 참을성이 없어요. 너무 빨리 반응을 해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빠져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지 못한 적이 종종 있어요. 모두 자만심과 연결된 것들이에요. 자만심은 매우 씁쓸하고 추악한 뿌리를 가지고 있어요. 항상 조심하려고 해요."
1958년 즉위한 요한 23세 이후 지금까지 가톨릭이 벅찬 교황복(福)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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