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르 장인' 량차오웨이, 이번엔 무명 스파이 … 또 관객 홀리네

고보현 기자(hyunkob@mk.co.kr) 2023. 4. 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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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봉하는 영화 '무명'

누가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고 온전한 자신으로 살기 힘든 시대. 1940년대 일본에 점령당한 상하이 곳곳에는 이름 없는(無名) 비밀조직 요원들이 존재한다. 일본인 와타나베 밑에서 일하는 '허 주임(량차오웨이(양조위))'과 '예 선생(왕이보)'을 비롯해 첩보원 '천씨' '미스 방' 등이 그들이다. 패망을 앞둔 일본은 만주 땅을 '제국의 기적'으로 여기고 만행을 더해간다. 겉보기에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서로의 목표를 위해 치밀하게 움직이는 스파이다. 영화는 누아르 액션물답게 최소한의 대사로 관객을 순식간에 혼란의 시절로 끌어들인다.

영화의 중심을 잡는 축은 '화양연화' '무간도' '색, 계'에 이어 갈수록 깊어지는 연기를 선보이는 량차오웨이다.

그는 시대극과 배역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색, 계' 당시 자료를 살피고 특수조직에 대한 기록을 직접 찾아본 것으로 전해졌다. 대륙의 라이징스타로 불리는 왕이보는 미스터리한 이중첩자 역을 맡아 량차오웨이와 첨예한 연기 합을 뽐낸다.

영화의 백미는 두 사람이 몸을 던져 맞붙는 격투신이다. 한동안 고요함을 유지하던 작품은 서로가 죽고 죽여야 하는 상황에 다다르며 에너지를 분출한다. 작품의 클라이맥스인 해당 장면을 촬영하는 데만 9일이 걸렸다. 배우들은 고층에서 떨어지는 장면 등에서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와이어 액션을 소화했다.

'치밀한 천재 감독'으로 익히 알려진 청얼 감독은 영화 곳곳에 동물과 소품 등 상징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일본군 전투기에 동승한 개와 전쟁 폐허 속 절름발이 개를 대조하며 지배자와 피해자의 면모를 대신 부각시키는 식이다.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엔 웅장하고 비극적인 클래식 선율에 맞춰 거울 속 투영된 인물이 클로즈업된다. 왕이보는 "이 같은 섬세한 제작진은 처음 본다"며 "그들의 노력 덕분에 전혀 다른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영화를 즐기려면 약간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감독은 마지막 남은 한 페이지까지 반전을 담았다. 러닝타임이 끝나기 30분 전 휘몰아치는 반전의 반전을 좀 더 길게 즐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적용된 플래시백 전개를 따라가려면 다른 첩보 영화를 볼 때보다 한층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오는 26일 개봉.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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