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완전정복] 상상의 초상화에 담은 … 분열로 얼룩진 현대사회
아트바젤 같은 세계적인 아트페어를 찾는다면 잊을 수 없는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세계 최고 화랑 중 하나인 하우저앤드워스 입구에 늘 걸리는 조지 콘도(66)의 대형 초상화는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해체되고 일그러진 추악한 얼굴, 대중문화 속 캐릭터가 혼재하는 캔버스. 피카소 인물화와 앤디 워홀 팝아트가 만난 듯한 콘도의 그림은 2023년 시장을 주도하는 '대장주' 중 하나입니다.
작년 9월 프리즈 서울에서 공식적으로 최고가에 팔린 작품은 콘도의 '붉은 초상화 구성'으로 280만달러(약 37억원)에 주인을 찾았습니다. 3월 아트바젤 홍콩에서 475만달러(약 62억원)에 세 번째로 비싸게 팔린 회화도 그의 '보라색 표현'이었습니다. 2021년 상하이 롱뮤지엄에서 200여 점의 작품을 모은 작가 최대 규모 회고전이 열린 것도 최근 아시아 시장의 인기를 견인하는 이유로 보입니다.
아트라이브(Artlive)의 가격 지표에 따르면 콘도는 지난 1년 동안 경매 낙찰가가 12% 상승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경매가 최고 기록은 2010년 7월 크리스티 홍콩에서 'Force Field'가 기록한 689만달러(약 90억원)입니다. 파편화된 인물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2m 대작은 마치 피카소의 환생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신기록 행진이 이어진 2010년대 초반 이후에도 콘도는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300만달러 이상의 경매가가 견조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2020년 전속 작가로 영입한 후 하우저앤드워스는 로스앤젤레스(LA)의 두 번째 지점을 샌타모니카에 열면서 개관전 주인공으로 그를 택했습니다. 2~4월 열린 전시 '사람들은 이상하다(People Are Strange)'는 밴드 '더 도어스'의 히트곡에서 제목을 가져왔습니다. 콘도는 정치로 인해 분열된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작가는 "분열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상해졌습니다. 비인간화되고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의 혼란은 정치인들의 탓일까요? 나는 작품에서 부서진 사람들의 조각을 합쳤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전시를 앞두고 아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상상의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는 청소부나 버스 운전사에게도 존엄성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추해 보이는 얼굴을 거대한 화폭에 그려넣는 이 화가는 사람의 외모가 아닌 본질을 꿰뚫어보려 합니다.
"아름다움의 가면 뒤에는 종종 추악함이 숨어 있습니다. 추악한 가면 뒤에는 종종 매우 아름답고 겸손하고 영혼이 가득합니다. 작가인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 거야'라고 말한다면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미국 뉴햄프셔의 소도시 콩코드에서 태어난 콘도는 네 살 때부터 교회의 십자가를 그리곤 했다고 회상합니다. 그림에 미쳐 있던 그는 열네 살에 피카소를 만납니다. 미완성인 것처럼 보이는 그림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어떻게 그림을 끝맺느냐보다는 어떻게 그림을 그려나가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그가 '드로잉'을 완성작보다도 중시하는 이유입니다.
"앵그르나 다비드의 드로잉처럼 작가나 모델이 죽어도 그 드로잉은 영원히 살아남습니다. 내가 객체(subject)와 상관없이 상상의 초상화만을 그리는 이유입니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나의 그림입니다."
거대한 회화를 즉흥적으로 그린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인간의 개성을 다차원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정교하게 건축적으로 해체된 인물화를 그리면서도 "아무런 사전 계획 없이 드로잉을 시작한다"고 설명합니다. 대작을 주로 그리지만 2010년대 대작들조차도 작은 스튜디오 혹은 차고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는 "그림의 두 걸음(2피트) 앞에서 촉각적인 측면과 작품과의 우정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매사추세츠대에서 미술사와 음악이론을 전공하고, 펑크 밴드 '더 걸스'로 활동했던 콘도는 1970년대 후반 장 미셸 바스키아를 만난 뒤 뉴욕으로 이주해 워홀의 작업실 '팩토리'서 일했습니다. 바스키아, 키스 해링 등 팝아트 작가와 교류했지만 그는 오히려 고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1985년부터 10년간 파리에서 살면서 그는 입체파에 심취해 세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그림 속에 반영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유럽에서 만난 회화의 전통기법과 미국 팝아트의 캐릭터를 접목해 인공적 사실주의(Artificial Realism)라는 장르를 창안합니다.
그가 미술사에 족적을 남기게 된다면 1세기 전 입체파와 동시대 추상화가들을 잇는 '연결고리'가 됐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2000년대 들어 그는 추상 작업을 더 깊이 파고듭니다. 인물은 점점 더 해체되고, 화폭은 거대해집니다. '네오큐비즘'으로 그를 묶는 이들에게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는 '심리적 입체주의(Psychological Cubism)'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피카소는 사물의 4개 시각을 모두 평면에 담아 입체주의를 만들었지만 나는 거기에 심리적인 시각까지 더했다"고 설명합니다.
기쁨과 공포, 미와 추, 분열과 화합이 모두 살아서 넘실대는 그의 캔버스에 매혹되는 건 아마도 우리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감정의 불협화음을 화폭에 담는 화가. 콘도가 피카소의 후계자를 넘어 21세기 대표 화가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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