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카노사의 굴욕’ 전광훈 목사와 국민의힘 [채진원 쓴소리 곧은 소리]
교계 ‘공산당 트라우마’ 이해해도 종교가 권력 추구 수단 되면 헌법정신 위반
(시사저널=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최근 국민의힘과 전광훈 목사의 관계가 밀월관계에서 '한국판 카노사의 굴욕 사건'처럼 파경으로 치닫고 있다. 카노사의 굴욕이란 교회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준 것으로 성직자를 임명하는 권한을 교황(그레고리 7세)이 황제(하인리히 4세)에게서 뺏어온 사건을 말한다. '한국판 카노사의 굴욕'이란 한마디로 전광훈 목사가 중세의 교황처럼 국민의힘 당원권과 공천권에 개입해 '정당민주주의'를 빼앗으려고 했던 사건을 빗댄 말이다.
전광훈 목사는 4월10일 "정치인들은 종교인의 통제와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발언에 이어 17일 "국민의힘의 버르장머리를 반드시 고쳐 주겠다"고 하면서 당에 더욱 개입해 공천권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그 입을 당장 좀 닫아주면 좋겠다"고 발끈했다. 전광훈 목사는 박근혜 탄핵 및 조국 사태 시기에 자신이 당을 도왔음에도 중도 확장이라는 명분으로 당이 자신을 배척하려는 것을 배은망덕으로 보면서 자신의 비상식적 언행을 정당화하려 한다.
정구사는 "윤석열 퇴진" 주류 기독교는 "이재명 퇴진"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당대회 룰을 '당원 100%'로 바꿈으로써 강성 당원들의 영향력을 키운 점, 김재원 최고위원의 징계를 신속하게 못 한 점 등 전광훈의 개입을 선제적으로 끊어내지 못하고 이번 사태를 자초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상식적인 목회자라고 보기 어려운 사람에게 집권여당이 의존하거나 휘둘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당 지도부는 그동안의 실책을 반성하고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 쟁점이 되고 있는 정치와 종교의 바림직한 관계 정립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치권력의 획득을 위해 종교를 수단화하려는 '종교의 정치화'와 '정치의 종교화'를 방어해야 한다.
그렇다면 전 목사는 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일까? 그 배경이 무엇인지 기독교 내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 기독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체제와 이념, 시국 이슈)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첫째는 체제와 이념이다. 그들은 북한과 공산주의를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고 간주하고 반공과 기독교로 무장했다. 기독교는 해방 이후부터 상당한 부흥을 경험했으며 1970년대 대형 집회를 통해 절정에 이르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기독교는 한편으로는 민주화운동에도 가담했지만 대다수 한국 기독교는 공산주의의 위협을 더 크게 강조했다. 이런 기독교는 2000년대 들어와 보수적인 정권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한국 기독교와 보수정권은 안보와 자유민주주의를 연대로 해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왔다.
2019년 가을 조국 전 장관 문제로 본격화된 광화문의 태극기 집회도 이런 동기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 기독교의 주류집단은 자신들이 해방 직후 공산주의에 의해 쫓겨난 것과 6·25 전쟁 때 공산군들이 기독교에 자행했던 폭압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공산당 트라우마로 인해 문재인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사용을 꺼리며 북한 김씨 일가와 북핵 문제에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둘째, 시국 이슈다. 그들은 조국 사태, 이재명 사법 리스크, 낙태·동성애 등 이슈에서 진보진영과 경쟁했다. 그들은 진보적 견해를 표방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쌍용자동차 노조 문제, 용산 참사, 남북 관계 등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반(反)성서적'이라고 규탄하는 것을 보면서 결기를 다졌다. 이들은 조국 사태 때 진보진영이 '서초동 촛불집회'를 열고 '조국 수호'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광화문 촛불집회'를 열고 '조국 퇴진'으로 맞서 결국 조 장관을 퇴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취임 1년도 안 된 윤석열 대통령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순회 시국미사에 반응하며 "이재명 퇴진운동"으로 맞서고 있다. 그들은 낙태와 동성애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기독교인은 정치할 수 있지만 교회는 정치하는 기관 아냐"
그렇다면 전광훈 목사의 정치 개입은 정교분리 위반일까?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국교(國敎)를 부정하며 '정교(政敎)분리'를 선언하고 있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원칙의 핵심은 국가와 정치가 종교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로 신학자 손봉호 교수는 "기독교인이 정치하는 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목사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도 당시 많은 사람이 정치적 메시아를 갈구했지만 끝까지 거부했다"며 "기독교 정당들이 나와도 교회는 그와 관계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정치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일반 교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는 있으나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면서 그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전 목사가 정치에 개입하는 목적이 정책에 대한 단순 지지나 반대 수준을 넘어 정당을 기반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해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려는 욕망이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정교분리를 천명한 헌법 위반과 정당법 위반(42조 강제입당 금지, 54조 입당강요죄)에 해당되는 만큼 그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와 정치는 종교가 엄격히 지키고자 하는 신앙양심, 빛과 소금의 역할 등을 깨트리지 말라는 뜻으로 정교분리 원칙을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종교도 세속을 다루는 정치 영역의 룰을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 정치는 사이비와 이단을 처벌하는 종교재판처럼 진리를 다루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은 진리와 정의이고, 생각이 다른 타인은 거짓과 부정의인 것처럼 선악의 이분법을 사용하는 곳이 아니다. 정치는 여러 의견을 드러내면서 공감대를 이루는 설득 공간이기에 경쟁자를 적과 악으로 규정해 원수 관계로 만드는 선악의 이분법과는 충돌한다.
이런 선악의 이분법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성서의 내용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과도 충돌한다. 목회자가 진영논리를 앞세우면서 종교를 권력 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교회의 신앙적 공공성을 왜곡하는 일탈이므로 자제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전 목사가 현실 정치인이 되려거나 정당인으로 활동하고 싶다면 정직하게 세속정치의 욕망을 밝히고, 목사직도 내려놓고, 교회 연합기구를 탈퇴하고서, 한 개인 시민으로서 참여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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