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군사 지원 가능성” 내비친 한국…한-러 관계 어디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자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 영향’을 거론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러 관계 악화와 한반도 긴장 고조,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 심화 등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에 무기 지원 시 “한반도 위협 증가 가능”
한국 정부는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이후 경제적·인도적 지원을 벗어난 살상 무기 지원에는 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 가능성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적 밀착을 가장 우려되는 지점으로 지적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러시아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한러 관계가 악화되면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적 지원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교수는 경향신문에 “가장 중요한 건 북한과의 문제”라면서 “그동안 러시아는 북한에 최신 무기나 탱크를 주지 않았는데, 한국과 적대적 관계가 된다면 이제 북한에 대대적으로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 등에 러시아 기술이 활용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이미 러시아와 북한이 밀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러 관계가 악화될 경우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식량, 에너지, 군사 기술 등을 많이 지원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김 교수는 또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개입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이 동원된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군사 무기를 지급할 경우 북한군이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주게된다”고 말했다.
한·러 관계 넘어 한·중 관계 악화 우려도
러시아를 넘어 중국과의 관계 악화도 심각하게 우려되는 지점이다. 김 교수는 “러시아와 관계를 끊게 되면 자동적으로 중국과도 손을 뗄 수밖에 없어진다”며 “중국과 반도체, 2차 전지, 무역 등이 많이 얽혀있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한국 반도체 공장과 기술은 점점 고사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파장이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로까지 연결돼 한미일과 북중러 대결 구도가 완전히 고착화되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라며 “군사 안보적으로 진영 대립이 심화되고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항상 상존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러시아가 한국과 쉽게 관계를 끊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는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는 서방과의 관계가 심하게 악화돼 이전처럼 원상복구가 어려울 것”이라면서 “러시아가 앞으로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 원만한 관계 유지가 필요한 상황이라 한국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는 것은 러시아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금 당장 러시아의 반응은 경고 차원으로 보인다”며 “한국과 러시아 모두 서로 눈치를 보면서 상황을 지켜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더라도 탄약만 지원한다든지 적당한 선에서 서로 협상하지 않을까”라고 예측했다.
러시아, 한국에 경제 보복 가능성도
한국과 러시아의 교역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러시아에 진출해있는 우리 기업이나 대러 수입·수출 등 경제 문제도 간과할 순 없는 지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에도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수입과 우회 수출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명태, 대게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해산물 상당수는 러시아로부터 수입되고, 한국은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아시아에서 3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경제 제재를 가할 경우 이런 부분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 팀장은 “러시아에 대기업·제조업 위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했는데, 고정 자본이 큰 부문이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LG·현대 등 대기업들도 러시아에 진출해있다.
그는 “고정비용은 철수하면 회수가 어렵고, 우리나라는 러시아 경제가 힘들었을 때도 사업을 이어오면서 신뢰와 네트워크 등 중요한 무형자산을 많이 구축해온 상태”라면서 “러시아가 직접적 보복 조치를 취할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한-러 관계가 악화된다면 당연히 기업 입장에서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 팀장은 “한국이 무기를 지원한다면 러시아의 제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러시아 입장에선 한국이라는 나라를 포기하기 쉽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입장에서도 러시아는 전략적 가치가 있다”며 “러시아는 원천기술이나 기초과학 등 지식자본이 풍부한 편이다”고 밝혔다.
우크라 무기 지원, 전쟁 종식과 평화 위해서도 도움 안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은 국익적 관점뿐 아니라 평화와 반전의 관점에서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쟁에서 살상무기 지원은 적대와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시민들의 안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군사적 방식으로 평화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을 지속하는 방법으로는 민주주의도, 자유도, 인권도, 평화도 지킬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념으로 뭉친 진영간 힘의 대결 차원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며 “더 많은 국가의 더 많은 군사적 개입은 전쟁을 격화하거나 확대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국의 무기 지원 속에 전쟁이 격화된다면 그 끝은 공멸과 폐허일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전쟁이 길어지고 무기 사용이 늘어날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방산업체뿐”이라고 지적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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