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써보고 결정하세요” 탈퇴 버튼은 안 보인다, 당했다
‘못된 상술’ 많이 쓰는 사업자 공개하기로
##장면 하나
지난해 이아무개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닭가슴살을 주문하다가 “큰일 날 뻔” 했다. 해당 온라인 쇼핑몰이 지금보다 비싼 회비로 멤버십을 연장할지 묻는 칸을 결제창 맨 아래에 숨겨놨던 것이다. 당시 해당 쇼핑몰은 다음 달부터 회비를 2900원에서 4990원으로 올리기로 한 상태였다. 이씨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 멤버십을 해지할 계획이었는데 자세히 안 봤다면 결제 조건을 안내하는 건 줄 알고 자칫 동의할 뻔했다”고 말했다.
##장면 둘
한아무개씨는 얼마 전 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일단 회원 가입만 하면 30일 무료체험’이라는 광고 문구를 봤다. 체험 기간에 얼마든지 탈퇴해도 된다는 말에 몇몇 정보를 입력하고 약관에 동의한 뒤 회원 가입을 했다. 영화 한 편을 본 뒤 사이트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회원 탈퇴를 하려는데 아무리 봐도 탈퇴 버튼을 찾을 수가 없었다. 탈퇴를 미뤄두고 있던 어느 날, 한씨에게 결제 알림 문제가 왔다. 무료체험 기간이 끝나 한 달 치 멤버십 요금이 부과됐다는 것이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30분 넘게 대기한 끝에 “무료체험 기간 끝났다고 알려주지도 않고 결제부터 하는 게 어디 있냐”고 따졌다. 상담원은 “잘 찾아보시면 회원 가입하실 때 다 동의하신 거고 일단 결제된 금액은 환불해드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장면 셋
장아무개씨는 여름휴가 때 묵을 숙소를 예약하기 숙박 예약 플랫폼에서 숙박업소를 검색했다. 날짜와 목적지를 입력하자 숙박업소 이름과 함께 가격이 검색됐다. 예산 범위를 고려할 때 1박에 20만원 정도 하는 숙박업소가 적당하다고 생각해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숙박업소를 클릭하니 객실 유형과 조식 포함 여부 등 거래조건이 나왔고, 이를 모두 확인하고 예약 버튼을 누르자 가격을 확인하라는 창이 나왔다. 그런데 처음 검색할 때는 20만원이던 가격이 25만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세금, 봉사료가 추가되었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한참을 더 검색해봐도 모두 최종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노출되는 환경이어서 “낚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온라인 쇼핑몰 등 각종 디지털 플랫폼들의 ‘눈속임 상술’에 지친 소비자들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다크패턴 추적’에 나선다.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착각, 실수, 비합리적인 지출 등을 유도하는 눈속임 상술을 뜻하는 ‘다크패턴’의 유형을 상세하게 분석해 이 중 현행법으로 규제가 어려운 유형에 대해서는 법 개정에 나서는 한편 어떤 사업자가 다크패턴을 많이 활용하는지 실태도 알리고 나선다는 계획이다.
공정위는 21일 온라인 다크패턴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 방향을 당정협의회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소비지원 조사 결과 국내 100개 전자상거래 모바일 앱 중 97%에서 최소 1개 이상의 다크패턴이 발견됐고 <한겨레> 보도 등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알려졌으나 그동안 현행법으로 규율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공정위는 이날 당정이 다크패턴을 규제하기 위한 별도의 입법 추진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우선 눈속임 상술을 크게 편취형·오도형·방해형·압박형 4가지로 분류하고 19개 세부 유형을 소개했다. 편취형 상술은 멤버십 갱신을 숨겨놓거나(숨은 갱신) 가격을 순차공개 하는 등 소비자를 기만해 비합리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지출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오도형 상술은 거짓 할인 등 통상적인 기대와 전혀 다르게 화면이나 문구를 구성해 소비자의 착각을 유도하는 상술이다. 방해형 상술은 탈퇴 버튼을 숨겨두는 등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 수집에 과도한 시간, 노력, 비용이 들게 하는 상술이다.압박형 상술은 소비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특정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상술을 뜻한다.
공정위는 이중 ‘숨은 갱신’이나 ‘탈퇴 방해’ 등 6개 세부 유형을 금지할 법적 근거가 없어 법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크패턴을 금지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는데 현재 나와 있는 개정안을 중심으로 한 의원 입법으로 처리되도록 뒷받침할 예정이다. 현재 미국, 호주 등 여러 나라도 숨은 갱신 등 다크패턴에 대한 규율을 강화하는 추세다.
입법이 되기 전까지 규제를 위해 ‘못된 상술’을 즐겨 쓰는 사업자도 공개해나갈 예정이다. 공정위는 상반기 중 ‘온라인 다크패턴 피해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제정하고 문제가 되는 상술을 가장 많이 쓰는 사업자가 누구인지, 사업자별로 어떤 눈속임 상술을 많이 쓰는지를 분야별로 비교·분석해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자체 조사 결과 지난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약이 자동 갱신·결제되는 ‘숨은 갱신’ 유형의 다크패턴 피해를 경험한 소비자가 92.6%, 사업자에게 유리한 옵션을 미리 선택해놓고 소비자가 이를 무심코 지나치도록 유도하여 그대로 수용하게 하는 ‘특정옵션 사전선택’을 경험한 소비자가 88.4%에 달했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크패턴은 명백한 기만행위부터 일상적인 마케팅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나타나므로 이를 전면 금지하기보다 규율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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