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처럼 만드는 정성이죠”…안동소주에 뛰어든 명인 3대 [인터뷰]
안동소주를 빚는데 평생을 바쳐온 박재서 명인(87·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호)은 안동소주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역사 속 인물부터 현재 삶에 이르기까지 희로애락의 순간엔 늘 술이 있었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안동소주를 들어봤을 법하지만, 그 유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동소주의 기원이 언제였는지를 묻자 무려 700여 년 전 고려시대 때부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들 박 대표는 “고려시대 때 몽골족들이 한반도를 침략하면서 안동에 병참기지를 만들었을 때 (몽골족한테서) 전수된 것이 유래”라며 “우리가 막걸리를 만드는 걸 본 몽골족이 술을 증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쌀을 수탈해야 하는 일본이 안동소주를 못 만들게 했고, 6·25 전쟁 이후 먹거리가 없었던 1960년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순곡주 제조 금지령’을 내렸다. 그래서 안동소주를 만들던 일부 양조장이 희석식 소주로 전향하기도 했다.
박재서 명인은 “영국은 스카치위스키, 미국은 버번위스키, 일본은 사케, 중국은 고량주가 있듯 다 각자의 명주(銘酒)가 있는데 우리는 없지 않으냐”며 “88올림픽 당시 안동소주를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전통주이기는 하나, 오로지 전통 방식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대개 안동소주는 막걸리를 빚은 뒤 소주를 내리는 2단 방식으로 만든다.그러나 명인은 막걸리를 청주로 한 번 더 발효한 뒤 증류하는 3단 방식으로 소주를 만든다.
또 과거에는 밀누룩을 100% 활용했지만, 이제는 20~30% 정도만 활용한다. 젊은 소비자들이 밀누룩 특유의 향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70~80%는 쌀누룩을 쓴다는 게 명인의 설명이다. 바로 병입하는 대신 위스키처럼 100일 이상 숙성하는 것 또한 명인만의 특징이다.
박 대표는 “(옛날 방식으로) 명인이 만든 것만 답습한다면, 그리고 그걸 젊은 세대가 먹지 않는다면 전통의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전통이 끊기는 것”이라며 “글로벌이나, 젊은 세대가 찾을 수 있게 해줘야 전통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의 단점을 보완해가며 현대의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맛과 향에 주력한 결과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에는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문재인 정부 당시였던 2021년에는 대통령 설 명절 선물로도 채택됐다.
보다 전문적으로 전통주를 배우고자 미생물학을 공부 중인 손자 박 본부장은 “페어링하기 좋은 안주로는 문어숙회, 육회 등을 추천한다”며 “안동소주 하이볼 등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을 늘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항공에서 기내 면세 상품으로 안동소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이 와 현재 협의 중”이라며 “나아가서는 기내식으로도 활용될 것으로 본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많아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명인안동소주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시간이 길어진 뒤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안동소주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오랜 기간 적자를 봐온 뒤 비로소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는 만큼 현대적인 시장 공략에 힘쓰겠다는 게 세 사람의 목표다.
아들 박 대표는 “고집이라고, 또 전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정성”이라며 “제 자식처럼 애정을 갖고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소주 싫다고 서울로 도망간 적도 있었다”는 손자 박 본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올해가 안동소주 세계화의 원년이라고 보고 있다. 티격태격하는 듯하면서 서로가 서로에 의지해가며 오늘도 이들은 전통주를 빚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들을 따라 둘러본 양조장에선 달큰하고 진하면서도 깔끔한 안동소주의 향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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