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처럼 만드는 정성이죠”…안동소주에 뛰어든 명인 3대 [인터뷰]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lee.sanghyun@mkinternet.com) 2023. 4. 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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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서 명인(87,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 6호, 가운데)과 아들 박찬관 명인안동소주 대표(65, 오른쪽), 손자 박춘우 영업본부장(36, 왼쪽). 세 사람은 경북 안동에서 소주를 빚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상현 기자]
“국민한테나 국가한테나 이 술은 보물이지요.”

안동소주를 빚는데 평생을 바쳐온 박재서 명인(87·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호)은 안동소주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역사 속 인물부터 현재 삶에 이르기까지 희로애락의 순간엔 늘 술이 있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고려시대부터 유래…88올림픽 이후 본격 성장
지난 14일 경상북도 안동의 한 양조장에서 박재서 명인과 그의 아들 박찬관 대표(65), 손자 박춘우 영업본부장(36)을 만났다.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아버지와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3대가 술 하나에 뛰어든 사연이 궁금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안동소주를 들어봤을 법하지만, 그 유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동소주의 기원이 언제였는지를 묻자 무려 700여 년 전 고려시대 때부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들 박 대표는 “고려시대 때 몽골족들이 한반도를 침략하면서 안동에 병참기지를 만들었을 때 (몽골족한테서) 전수된 것이 유래”라며 “우리가 막걸리를 만드는 걸 본 몽골족이 술을 증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명인안동소주의 박재서 회장은 지난 1995년 7월 국가로부터 식품명인 6호로 지정됐다. [사진 제공 = 명인안동소주]
그렇게 처음 유래된 소주를 반남 박씨 집안이 본격적으로 빚기 시작한 건 500여년 전부터다. 10대손인 은곡 박진(1477~1566)이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소주를 내주고자 빚기 시작하면서 그 비법이 25대손인 명인에게까지 대대로 전해졌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쌀을 수탈해야 하는 일본이 안동소주를 못 만들게 했고, 6·25 전쟁 이후 먹거리가 없었던 1960년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순곡주 제조 금지령’을 내렸다. 그래서 안동소주를 만들던 일부 양조장이 희석식 소주로 전향하기도 했다.

박재서 명인은 “영국은 스카치위스키, 미국은 버번위스키, 일본은 사케, 중국은 고량주가 있듯 다 각자의 명주(銘酒)가 있는데 우리는 없지 않으냐”며 “88올림픽 당시 안동소주를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잡내 등 보완…文정부 때 명절 선물로 채택
집안에 찾아온 손님을 접대할 때 내던 술이 본격 상업화가 된 것은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첫 제품 출고는 1992년에 이뤄졌고, 명인은 그 뒤로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주를 빚어오고 있다.

전통주이기는 하나, 오로지 전통 방식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대개 안동소주는 막걸리를 빚은 뒤 소주를 내리는 2단 방식으로 만든다.그러나 명인은 막걸리를 청주로 한 번 더 발효한 뒤 증류하는 3단 방식으로 소주를 만든다.

또 과거에는 밀누룩을 100% 활용했지만, 이제는 20~30% 정도만 활용한다. 젊은 소비자들이 밀누룩 특유의 향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70~80%는 쌀누룩을 쓴다는 게 명인의 설명이다. 바로 병입하는 대신 위스키처럼 100일 이상 숙성하는 것 또한 명인만의 특징이다.

명인안동소주는 증류한 술을 바로 병입하는 대신 위스키처럼 100일 이상 숙성한다. 사진은 경북 안동 양조장 내 생산시설. [이상현 기자]
명인은 “미국과 영국에 가서 보니 그들은 술을 숙성시키더라. 숙성해 병입하면 (잡내가) 다 제거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우리도 술을 전부 숙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양조장 한 켠에서는 나무로 만든 통 등에서 숙성 중인 안동소주를 찾아볼 수 있었다.

박 대표는 “(옛날 방식으로) 명인이 만든 것만 답습한다면, 그리고 그걸 젊은 세대가 먹지 않는다면 전통의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전통이 끊기는 것”이라며 “글로벌이나, 젊은 세대가 찾을 수 있게 해줘야 전통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의 단점을 보완해가며 현대의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맛과 향에 주력한 결과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에는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문재인 정부 당시였던 2021년에는 대통령 설 명절 선물로도 채택됐다.

대한항공과 면세 논의도…“국가와 국민의 보물”
명인과 아들 박 대표에 이어 손자 박 본부장까지 사업에 뛰어들면서 근래에는 젊은 소비자를 공략할 방법을 모색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국내 MZ세대는 물론이고, 이미 10개국에 수출 중인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목표다.

보다 전문적으로 전통주를 배우고자 미생물학을 공부 중인 손자 박 본부장은 “페어링하기 좋은 안주로는 문어숙회, 육회 등을 추천한다”며 “안동소주 하이볼 등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을 늘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항공에서 기내 면세 상품으로 안동소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이 와 현재 협의 중”이라며 “나아가서는 기내식으로도 활용될 것으로 본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많아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명인안동소주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시간이 길어진 뒤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안동소주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오랜 기간 적자를 봐온 뒤 비로소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는 만큼 현대적인 시장 공략에 힘쓰겠다는 게 세 사람의 목표다.

명인에 따르면 안동의 특산물은 ‘소소문’이다. 소주와 소고기, 그리고 문어. 지역 특산물을 같이 즐길 때에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이상현 기자]
평생을 우리 전통주와 함께해온 이들에게 그 의미는 무엇일까. 명인에게 먼저 묻자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고관들도, 또 서민들도 그렇고 모이면 늘 술을 놓고 한 잔 마시면서 대화를 한다”며 “안동소주는 보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들 박 대표는 “고집이라고, 또 전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정성”이라며 “제 자식처럼 애정을 갖고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소주 싫다고 서울로 도망간 적도 있었다”는 손자 박 본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올해가 안동소주 세계화의 원년이라고 보고 있다. 티격태격하는 듯하면서 서로가 서로에 의지해가며 오늘도 이들은 전통주를 빚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들을 따라 둘러본 양조장에선 달큰하고 진하면서도 깔끔한 안동소주의 향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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