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우울증갤러리, 최악의 조합 다 모인 '진화된 n번방'"

남보라 2023. 4. 21. 14: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착취 · 자살 조장 · 마약 투약' 온상
"A양 외에 피해자 8명 더 있다 제보도"
"경찰 샅샅이 파고, 디씨 사회적 책임져야"
이수정 교수가 20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와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갤러리 게시판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CBS 유튜브 캡처

범죄심리 전문가인 이수정 교수는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 게시판에 대해 성착취와 자살, 마약 투약 등 최악의 범죄로 이어지는 통로라고 진단했다. 그는 경찰이 가해자들을 샅샅이 조사하고, 디시인사이드 측 역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0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와 디시인사이드 내 우울증갤러리 게시판에 대해 "최악의 조합이 전부 다 있는 진화된 n번방"이라며 "n번방만 해도 3년 전이니까 마약이 이렇게 일반화되지 않았었고, 자살이 이렇게까지 방치되지 않았는데 코로나를 지나면서 이 모든 것이 결합이 된 형태로 지금 ‘우울증갤러리’라는 곳에서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2019년 처음 실태가 드러난 'n번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텔레그램에 개설된 단체채팅방을 통해 성폭력을 지시하고 영상을 만들어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우울증갤러리는 성착취뿐 아니라 자살 조장, 마약 범죄에까지 깊숙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① 성 착취 ... 공감대 형성 후 꾀어내 범행, 2차 가해도

김모(19)양은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만 15세 때 우울증갤러리에서 만난 20대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가해자는 성폭행 인증글을 이 갤러리에 올려 2차 가해까지 했다고 말했다. 채널A 보도 캡처

우울증갤러리의 실체는 지난 16일 서울 강남의 고층빌딩에서 투신한 10대 A양 사건을 계기로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A양이 이 갤러리에서 만난 남성들로부터 당한 정서적·신체적 학대가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경찰은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빌라에 함께 거주하는 20대 남성 6명으로 구성된 일종의 가출패밀리인 '신대방팸'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최근 2, 3년 새 이런 피해를 입은 미성년자가 적지 않다는 의혹도 계속되고 있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미성년자들이 우울증갤러리에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면 남성들이 자신도 우울증을 앓는 척 공감대를 형성해 이들을 꾀어내 술이나 마약을 주고, 이 과정에서 성 착취와 불법촬영을 한다는 것이다. 성매매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이런 암시장의 소비자들이 수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A양 역시 이 갤러리에 성매매 후 받은 돈으로 보이는 입금내역 관련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교수는 "누구에게 얼마 받고 그런 과정이 아마 자살 선택을 하는 계기가 됐을 걸로 추정된다"며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데 혼자 고립돼 반복해 피해를 당하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지경에 이르는 피해자들이 여러 명 있다고 이야기들을 한다"고 말했다.


② 자살 조장... "익명성 악용해 자살 강요까지"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 디시인사이드는 로그인 없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데다 성인 인증도 없어 미성년자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 캡처

이 교수는 이 갤러리에서는 자살을 적극 조장하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그는 "(로그인 없이 게시글을 올릴 수 있는 디시인사이드의) 익명성을 이용해서 자살을 조장하고 또 심지어는 약간 강요하는 듯한 이런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A양이 투신 전 함께 있었던 이 갤러리 이용 남성 B(28)씨도 자살방조에 해당한다고 봤다. A양은 사망 당일 B씨가 이 갤러리에 올린 ‘동반 투신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B씨를 만나 투신 계획을 세웠다. 이 교수는 "둘은 애당초 자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만났는데 그것을 중단시킬 수 있는 꽤 많은 시간 동안 함께(있었다)"라며 "(그럼에도) 그냥 내버려 뒀기 때문에 틀림없이 방조에 해당하는 행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A양만 희생이 된 게 아니라 일설에 따르면 이 갤러리에서 자그마치 8명의 희생이 있었다고 얘기하는 제보자도 있기 때문에 경찰이 단순히 A양에 대한 자살방조 혐의로 B씨를 입건하고 끝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방송에 함께 출연한 김성회 정치연구소 씽크와이 소장은 "심리적으로 경계선상에 있는 여성들을 꾀어 결국 성매매까지 끌어내고 그 사람의 자존감을 완전히 바닥으로 만들어서 죽게 만드는 것 아니냐"며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봤을 때는 집단범죄이고, 살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③ 마약 ...정보 공유, 거래, 함께 투약

우울증갤러리 이용자인 김모(19)양은 "술이랑 졸피뎀이랑 수면제랑 같이 타 먹이고 성 착취를 한다는 얘기는 되게 옛날부터 나왔고, 엮인 사람 중에 자살한 사람도 몇 명 있다"고 말했다. 채널A 보도 캡처

이 갤러리에서는 마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거래까지도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함께 모여서 마약을 투약하거나, 여성을 성 착취하는 과정에서 마약을 몰래 술에 타 먹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 불면증 치료에 사용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다른 음료에 타서 마시는 경우도 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왜 졸피뎀을 이 청소년들이 이렇게 복용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잘 안 된다"며 "이게 졸피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에는 마취제로 쓰이는 약물까지 다 등장을 한다. 펜타닐이나 자일라진이라는 게 있는데 이건 완전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고 우려했다.

A양과 B씨의 마약 투약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교수는 "(A양이 투신 전 찍은 영상을 보면) 자살자의 태도로는 적합하지 않은, 그런 기분을 느끼는 행동들이 보인다. 마치 기분이 굉장히 고양된 것처럼 웃음도 보이고"라며 "B씨와 함께 있을 때 무언가 약물을 하고 나서의 반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B씨를) 자살방조로만 입건할 게 아니라 약물 수사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 샅샅이 파고... 디시도 사회적 책임져야"

이 교수는 특히 A양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이 갤러리에서 일어나는 범죄 전체를 모두 추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이 샅샅이 파야 한다"며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모니터링하고 범죄를 추적해서 꼭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방송통신위원회가 검토하고 있는 우울증갤러리 일시 차단을 넘어 디시인사이드도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봤다. 이 교수는 "디시인사이드라는 포털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이제는 논의를 할 때가 됐다"며 "외국처럼 사회적 책임을 묻는 시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의 일일 이용자는 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우울증 관련 게시글은 3배나 폭증했다고 한다. 하지만 채널A 보도에 따르면, 디시인사이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주로 베트남과 중국 지사 현지 인력이 게시글을 모니터링하도록 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은어로 올리는 글은 어차피 한국인들도 모니터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찰의 우울증갤러리 폐쇄 요청도 거부했다고 한다. "갤러리는 회사 소유가 아닌 이용자들의 저작물이 올라오는 곳"이라는 주장이다.

박주돈 디시인사이드 부사장은 지난 18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은어로 올라오는 유해 게시물은 중국 현지 인력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찾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채널A 보도 캡처

이 교수는 디시인사이드가 유해 게시물을 빠르게 탐지하는 기술을 활용하는 등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시에서 영상과 문자, 그림을 모두 동시에 패턴 매칭을 해서 영상을 삭제하는 기술을 개발해 성 착취 영상물은 지금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삭제가 가능하다"며 "사람이 찾아내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위험을 탐지하는 기술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디시인사이드가) 서울시가 개발한 기술을 저작권비를 내고 사용할 수 있게 하면 대안이 없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