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무심코 찍었다가…기재부 발칵 뒤집힌 사연 [관가 포커스]

강경민 2023. 4. 2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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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러브콜' 시달리는 기재부 예산실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5층.


올 초 정례 협의차 한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한 기획재정부 예산실 A국장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기재부 예산실은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에 앞서 주요 재정투자 현장을 점검하고 지역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를 방문한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단체장이 역점 추진하는 특정 사업 현장으로 예산실 간부들을 안내했다. 그러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자고 했다.

당시 A국장은 별생각 없이 사진 촬영에 선뜻 응했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해당 지역에서 발간되는 신문에 일제히 나온 사진기사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진 설명에 ‘기재부 예산실이 해당 사업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A국장은 “국비 지원이 절실한 지자체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 실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내년도 국비 신청사업 제출을 앞두고 기재부 예산실에 대한 전국 지자체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기재부는 오는 5월 말까지 각 정부 부처로부터 예산 요구안을 일괄 제출받는다. 이후 6~8월 중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정부 예산안을 편성, 9월1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각 지자체는 내달 초까지 소관 부처에 국비 신청사업을 제출해야 한다.

올해 기준 지방에 이양되는 재정 규모는 238조5000억원이다. 전년(228조8000억원) 대비 4.2% 늘어났다. 지방 이양 재정 규모는 2018년 150조원에서 올해까지 5년 동안 59.0% 급증했다. 전국 243개 광역·기초 지자체 중 재정자립도가 50%를 넘는 지자체는 9곳(3.7%)에 불과할 정도로 지방재정은 열악한 상태다. 지자체들이 국비 사업 지원에 목을 매는 이유다.

지자체들이 기재부 예산실에 목을 매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여느 때보다 한층 치열한 국비 확보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예산은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로 인해 상당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경기침체로 세수가 제대로 걷히지 않으면서 정부 재정도 빠듯한 상황이다. 지역의 국비 사업 중에서도 성과가 미흡하거나 타당성이 부족한 경우엔 삭감되는 사례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는 정부 예산안을 편성하는 기재부 예산실 간부들을 만나는 데 혈안이 됐다.

정치적 중량감이 있는 거물급 광역 지자체장들도 기재부 예산실 간부들을 직접 초청해 예산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기재부 예산실 간부들이 찾아오면 현수막까지 내거는 지자체들도 적지 않다. 기초 지자체 관계자들은 기재부 청사가 있는 세종시를 직접 찾아와 읍소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부 광역 지자체는 기재부 출신 부단체장을 앞세워 예산실을 공략하기도 한다.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 중 기재부 출신 부단체장이 있는 곳은 대구, 전남, 경남, 충북, 충남 등 5곳이다. 5곳의 기재부 출신 부단체장의 공통점은 모두 예산실 근무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 대외경제국장을 지낸 이종화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예산실에서 산업정보예산과장·농림해양예산과장을 지냈다. 박창환 전남 정무부지사는 예산총괄과·예산정책과·고용환경예산과·복지예산과·교육예산과 과장을 거친 ‘예산통’이다. 세제실장을 지낸 김병규 경남 경제부지사도 예산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충북 최초의 40대 부지사인 김명규 정무부지사도 행정예산과장을 지냈다. 전형식 충남 정무부지사도 법사예산과장을 지냈다.

이른바 예산 ‘생사여탈권’을 쥔 기재부 예산실은 지자체의 이 같은 러브콜을 몹시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예산실 B과장은 “지자체가 요구한 특정 사업에 대한 타당성이 부족해 다른 사업에 국비를 지원하겠다고 하면 되레 화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C과장은 “중량감이 있는 광역 단체장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기재부 출신 부단체장이 있을 경우 간혹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들은 지자체들이 대놓고 지연 관계를 앞세울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했다. 특정 간부가 같은 지역 출신일 경우 지자체와 지역 신문들이 이 점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특히 예산실장 및 각 분야 심의관 등 고위 관계자들은 특정 지역을 자주 방문했을 경우 지역 차별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전국 모든 지자체를 골고루 공평히 찾아간다는 것이 예산실의 설명이다.

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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