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공운법에 무너지는 출연연 연구 현장

김영준 2023. 4. 2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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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만 공공과학기술혁신협의회 회장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이 글로벌 패권 확보 핵심요소인 이 시대에는 급속한 과학기술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적 연구개발(R&D)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국가 R&D 핵심 주체인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에 출연연은 과거 산업화와 기술 자립 역할에 이어 과학기술 강국 도약의 선도 역할을 시대 소명으로 인식하고 자율적인 경쟁력 제고 혁신 중이다.

출연연은 정부 예산으로 국가 중대 과제,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회적 과제 등 연구를 수행하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R&D 성과 수월성을 지향한다.

최고 수준 인재 확보와 창의성·도전성을 갖춘 자율적 연구환경이 핵심이다. 정부 규제·간섭 최소화를 위해 정부 직할 조직 밖에 설치하고 출연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설립·운영하게 됐다.

관련 법률도 연구 자율성을 보장한다. 과학기술기본법 제2조에서 과학기술인 자율성과 창의성 존중을 천명했고, 제3조에서 '과학기술 관련 다른 법률 제·개정 시 이 법 목적과 기본이념에 맞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최근 제15조의 2에 도전적·혁신적 R&D 촉진·지원 규정도 추가했다. 또 '과기 분야 출연연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과기출연기관법)' 제10조에는 '출연연 연구와 경영에서 독립·자율성을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으로 출연연도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관리되면서 공운법을 타 법률에 우선한다는 조항이 적용되고, 획일적인 '공공기관 혁신 지침' 적용에 따른 각종 규제가 출연연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된다.

수익 활동, 대국민 서비스를 수행하는 타 공공기관과 달리 출연연은 원천기술 개발 창의성, 성과 창출 장기성·불확실성 등 R&D 활동이 고유 특성이다.

목적, 예산 구조, 재원조달 방식, 평가 양식 등이 타 공공기관과 다름에도 획일적인 인력 및 예산 축소·절감 중심 경영효율화 요구로 창의적 연구역량과 자율적 연구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총액 인건비 규제로 인한 인건비 한도와 인상률 제약은 창의적·도전적 R&D 핵심인 우수 연구인력 유입은 고사하고 오히려 핵심 인력 유출의 가속화 요인이 됐다.

최근 5년(2017~2021)간 자발적으로 출연연을 떠난 연구자가 1050명이다. 2010년대 100명대이던 이직자가 2020년대 들어 200명이 넘는다. 반대로 지난 1월 30일 4대 과학기술원은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맞았다. 인건비 제한 해소로 고급 연구인력 유입이 가능하게 된 기대감으로 이를 반기고 있다.

출연연의 경우 타 공공기관과 달리 정년연장 조치 없이 연구실적과 무관하게 임금이 감축된 임금피크제 강요로 인력 이탈을 부채질하고 있다. 연구원 정년환원 요구 대체 방안으로 도입된 우수연구원 정년연장 제도도 선발 규모가 제한돼 열정이 넘치는 연구원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연구원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만 낳았다. 선발되더라도 급여가 55%까지 감축돼 연구 활동 기간만 연장됐을 뿐 진정한 연구 의욕 고취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교수 대비 짧은 정년과 임금피크제 적용에 따른 낮은 처우, 민간기업 대비 낮은 급여로 우수인재 유지, 신규 우수인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연구환경 황폐화가 가속되고 있다. 타 공공기관과 동일한 인력 총원 관리 적용도 R&D 다양화, 도전적 연구영역 개척 등 기관 특성이 고려된 전략적 우수인력 확충·배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정규직 비율 할당은 우수인력 확보 체계를 마비시켰고 또 다른 R&D 경쟁력 저하 요인이 되고 있다. 늘어난 인건비 확보를 위한 과제 수주 부담을 높여 연구 집중을 방해한다. 서열식 평가제도는 단기성과 창출에 매몰되게 해 중장기 도전적 연구 수행을 주저하게 하고 개인 성과관리에 치중하게 해 공동·협력·융합적 연구문화 정착을 지연시키고 출연연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는 옛말이다. 열악해진 처우, 주 52시간 근무제 강요에 사명감만으로 연구몰입을 기대하기에 연구환경이 너무 악화된 것이다. 출연연 R&D 경쟁력 제고를 위한 선순환적 연구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공운법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공운법은 전체 공공기관 대상이니 관리 효율성을 추구한다. 연구기관 성격과 R&D 특성까지 고려하기 어려움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운법 목적은 공공기관 대국민 서비스 증진 기여에 있으나, 출연연은 직접 대국민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보기 어렵다. 또 공운법 우선 적용으로 연구현장에서 과기 유관 법령들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R&D 도전성, 연구성과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 관리·감독은 연구 활동을 위축시킴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출연연의 공운법 적용 문제점 탓에 2018년 R&D목적기관으로 지정됐으나, 시행령 개정이 모호한 데다 연구기관 특성을 반영한 세부 지침이 아직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다. 이후 공공기관 혁신지침의 단편적인 적용 예외로 일부 요소들이 개선됐으나 대부분의 연구현장 제약 요소들은 상존한다.

공운법 적용 해제 조치로 사실상 무의미한 과학기술 유관 법령들의 실효적 적용으로 창의적·도전적 연구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공공 분야 R&D 전문 주체인 출연연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과학기술 강국 실현의 중추 역할을 하도록 과기 출연연을 공운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안동만 공공과학기술혁신협의회장 dmahn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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