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뭘 해야 할까"…38살 베테랑의 혼란, 자존심은 답이 아니었다

김민경 기자 2023. 4. 2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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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베어스 김재호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대전, 김민경 기자] "나이가 들고, 경기를 안 나가는 자리에 있으니까. 내가 뭘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두산 베어스 유격수 김재호(38)는 정상에서 조금씩 내려오는 과정에 있다. 김재호는 2004년 1차지명 출신으로 2014년부터 두산의 황금기를 이끈 주전 유격수였다. 두산의 황금기를 보고 자란 어린 유격수들 대부분의 롤모델이 김재호일 정도로 수비로는 KBO리그 최정상을 찍었다. 그런 김재호도 세월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해마다 400타수를 넘기던 선수가 2021년 211타수, 2022년 223타수에 그쳤다. 벤치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내려놓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김재호는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더 독하게 몸을 만들며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승엽 두산 감독은 조금 더 미래를 바라보는 선택을 했다. 지금까지는 이유찬(25)을 주전으로 기용하면서 김재호와 안재석(21)을 백업으로 활용하고 있다. 어린 선수들이 더 경험을 쌓게 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옳은 방향인 게 사실이다.

김재호는 지난 2년 동안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존심을 지키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럼 난 뭘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시작됐다. 경기 출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어떻게 경기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지, 벤치에 있을 때는 어떤 식으로 팀에 기여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했다.

김재호가 18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 교체 출전해 2-0 승리를 이끄는 결승 2타점 적시타를 친 뒤 "고참으로서 임무를 다하는 순간이 언제 올까 생각했는데, 그게 오늘(18일)이었다"고 기뻐하면서도 "(안)재석이와 (이)유찬이가 경기에 꾸준히 나서고 있는데, 그들에게 경험을 통한 조언을 하고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것도 내 임무 중 하나"라고 덧붙인 배경이다.

사령탑은 김재호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이 감독은 "베테랑으로서 뒤에 대수비로 나가면서 시작하는 게, 김재호처럼 실적이 있는 선수들에게 어울리진 않는다. 선수 본인도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고 공감하면서 "(18일 경기는) 어려운 상황에 나가서 결승타를 쳤다. 고참으로서 그런 임무를 해주면 우리 팀이 더 강해질 것 같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이 감독은 스스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김재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확실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경기에 많이 나가겠지만, 젊은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김재호가 우리 팀에서 해줘야 할 임무는 젊은 선수들을 받쳐주는 게 더 필요하다. 여기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당연히 경기에 많이 나갈 수 있다. 잘 참아주고 있고, 무덤덤하게 플레이를 이어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최근 김재호는 그동안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고참 선수들과만 대화하지 않고, 어린 선수들이 있는 공간을 일부러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후배들이 당장 필요한 조언이 있으면 언제든 한마디 물을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김재호는 "작년에는 전체 팀 분위기가 다들 어렵고 힘들었고, 나 또한 그랬다. 그런 점에서 내가 반성했고, 올해는 주축 선수들이 팀을 끌고 갈 때 내가 그 외에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다. 지금 나가는 어린 친구들은 경험이 없어서 말 한마디씩 해주려 한다. 팀이 갑자기 젊게 바뀌었을 때는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야 시너지효과가 난다. 고참들은 더 책임감을 갖고 해결해 주고, 그런 에너지가 위아래에서 같이 가야 한다. 어린 친구들이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게 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앞장서면 후배들이 어려워하니까 적정선에서 하려고 신경 쓰고 있다"고 털어놨다.

벤치에서 후배들을 지켜보며 해주고 싶던 말을 덧붙였다. 김재호는 "타석에서 조금 더 끈질기게 투수들을 괴롭힐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주자를 보내서 다음 타자에게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수비도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 경기에 많이 나가다 보면 타석에서는 경험이 쌓여서 느는 게 보이는데, 수비는 집중을 안 하는 순간 실책이 많아진다. 예전보다 우리 팀 수비가 약해진 게 사실이고, 선수들이 공격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수비에서 안일한 플레이가 나올 때가 가끔 있다. 수비가 좋으면 공격은 1~2점 싸움이다. 수비의 중요성을 후배들이 인지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당부했다.

김재호는 올해 팀이 치른 15경기 가운데 7경기에 나섰는데, 선발은 1경기에 불과했다. 경기 감각 유지가 쉽지 않다 보니 스스로 플레이에 실망할 때도 있지만, 이 과정을 뛰어넘는 것도 베테랑 김재호가 올 시즌 극복해야 할 임무다.

김재호는 "아무리 고참이라도 경기 감각이 떨어지면 적응하기 쉽진 않다. 한번씩 들어갔을 때 투수랑 상대하기 쉽지 않은데, 고참이니까 해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도 안다. 그런 것을 이겨내야 할 것 같다. 해내야 하고, 잘할 확률보다 못할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고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 옛날부터 생각했는데 백업들이 그래서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며 베테랑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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