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실수로 뚫은 가스관, 폭발해 101명 희생…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참사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0일 방송된 '8cm가 부른 죽음-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심이영, 방송인 홍석천, 가수 미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평범한 아침, 학교로 향하던 학생들
때는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대구 상인동에 있는 한 가정집은 지금 전쟁 중이야.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아침부터 등교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거든. 이 집 아들, 사진을 보여줄게.
이름은 신창윤. 중학교 2학년인데, 키가 벌써 174cm야. 키가 크고 듬직한 아들인데, 집에서 부르는 애칭은 귀엽게 '보물이'야. 어렵게 얻은 보물 같은 아이라는 뜻으로, 엄마 아빠한테 '보물이'라고 불려.
"산부인과에서 7시반 쯤에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내 아들이라 그런 게 아니고, 어딜 나가도 자랑스러울 거예요. (아들이) 효도하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꼭 했어요."
-신주식, 창윤 아버지
'보물이' 창윤이네 집 이날 아침 메뉴는 김밥이야. 김밥은 간편하고 맛있지만, 만들기는 번거로운 음식이지. 아들 준다고 엄마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만들었어. 창윤이는 김밥을 몇 개 입에 넣더니 다 먹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아직 학교에 늦은 시간은 아닌데, 창윤이는 학교에 가겠다며 서둘러 집을 나섰어. 창윤이가 이렇게 마음이 급했던 건, 자전거를 빨리 타고 싶어서야.
요즘 창윤이가 꽂힌 최애 아이템이 바로 자전거야. 얼마 전 부모님이 아주 큰 마음 먹고 사주셨어. 창윤이네는 아파트 3층에 살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어. 창윤이는 자전거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자전거 타기를 참 좋아했대. 그렇게 창윤이는 이날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출발했어.
같은 시각, 창윤이랑 같은 반인 정지한 학생도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어. 이날 지한이는 아침부터 엄마를 부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뭔가를 내밀어. 교복이야. 교복 단추가 떨어져서 달아달라는 거야. "엄마 미안해"하며 교복을 내미는데, 엄마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 아들이 폭풍 성장한다는 말이니까. 근데 아들은 엄마를 고생시키는 거 같다며 미안해 해.
"(지한이는)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죠. '엄마 사랑해'라고. 제가 옆에, 소파나 바닥에 앉아 있지를 못했어요. 와서 자꾸만 (엄마를) 안고 이래서. 그만큼 엄마를 좋아했어요. 엄마의 체취를 밤에도 느끼고 싶어서, 제 베개를 갖다가 두개를 교대로 바꿔서 가져가고 그랬어요. 아이가 엄마를 너무 좋아한 거 같아요."
-지한 어머니
지한이는 완전 엄마 껌딱지야. 사랑한다는 표현도 잘 하고, 애교도 많아. 이날도 학교에 가며 "사랑해 엄마"라고 인사하며 집을 나섰어. 엄마가 단추를 달아준 교복을 입고.
한편, 등교하는 또 다른 아이가 있어. 중학교 1학년 정우진. 우진이는 매일 버스를 타고 등교해. 평소처럼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저 앞 정류장에 학교 가는 버스가 서있어. 우진이는 버스를 향해 뛰었지만 코앞에서 버스를 놓쳤어. 아쉬워하던 그 때, 바로 버스 한 대가 또 와. 앞선 버스를 놓치고 1분 밖에 안 기다렸는데, 학교로 가는 30번 버스가 금방 왔어.
이렇게 '보물이' 창윤이, '엄마 껌딱지' 지한이, 버스를 탄 우진이는 모두 같은 중학교 학생들이야. 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대구 영남중학교야.
▲ 땅 속의 시한폭탄이 터지다
영남중학교 앞 도로를 상인네거리라고 불러. 당시 이 도로는 지하철 공사 중이었어. 대구 지하철 1호선, 상인역을 만들고 있었어. 그래서 도로 위에 차와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복공판(지하 공사시 도로 이용을 위해 도로 면에 임시로 깔아두는 강철제의 판)을 덮어놨어.
상쾌한 봄날의 아침. 거리는 등교하는 학생들,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해. 그런데 학교 근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 이 소리, 지하철 공사장에서 나는게 아니야. 지하철 공사장 옆에 또 다른 공사장이 있어. 영남중학교 맞은 편에서 백화점을 짓고 있던 거야. 백화점 공사장 옆 도로에서 기계 하나가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어. 바로 이거야.
'천공기'라고 하는, 거대한 말뚝과 드릴을 이용해 단단한 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야. 이 드릴 끝은 다이아몬드 성분으로 만들어져서 웬만한 건 다 뚫을 수가 있어. 그래서 이걸로 지반 강화 작업(연약 지반의 지지력을 높이는 작업)을 하는 거야. 천공기로 땅 속 깊이 구멍을 여러 개 뚫고, 그 구멍에 시멘트를 주입해. 그게 단단하게 굳으면 땅 속에 시멘트 기둥이 여러 개가 생성되지. 이렇게 하면, 지반이 단단해 지는 거야.
이 공사를 백화점 건설회사의 하청업체가 하고 있었어. 오전 7시 30분, 천공 작업을 위해 드릴이 계속 땅 속을 뚫고 내려갔어. 그러던 그 때, 천공 기사가 이상한 걸 느꼈어. 드릴이 뭔가 단단한 걸 뚫은 것 같아. 땅을 뚫는 느낌이랑 달라. 당황한 천공 기사는 드릴을 20cm 정도 위로 들어올렸어. 그 순간, 가스 냄새가 아주 강하게 났어. 천공기가 땅 속을 지나는 가스관을 뚫은 거야.
일단 작업을 중단하고, 도시가스 회사로 신고를 했어. 그래서 도시가스 직원 3 명이 현장으로 급파됐어. 그동안 가스는? 계속 새어 나오고 있어. 만약 이 가스가 폭발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거야.
불과 5분 뒤, 가스가 누출되는 곳으로 한 학생이 다가오고 있어. '엄마 껌딱지' 지한이야. 지한이는 천공 작업 현장 바로 옆, 은행 앞에 멈췄어. 친구를 기다려 같이 등교하려고. 지한이가 친구를 기다리는 곳은, 가스가 새는 곳 바로 옆이야. 지한이는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르지. 그렇게 지한이는 10여분 친구를 기다려 만나 같이 학교 방향으로 걸었어. 그 때 시간이 오전 7시 50분쯤. 가스관이 파손된지 거의 20분쯤 지났을 때야.
가스가 샌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상인네거리를 걸었고, 차들은 도로를 달렸어. 이 때, 상인네거리 쪽으로 학생들을 가득 태운 121번 버스가 들어와. 버스 안은 등교, 출근하는 사람으로 가득해. 승객이 무려 100명 가까이 탔어. 버스는 빨간불에 상인네거리 직전에서 멈춰. 그 때 시각은 오전 7시 51분.
지한이는 친구랑 같이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갔어. 창윤이는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반대쪽 횡단보도에 도착해. 그리고 30번 버스에서 내린 우진이는,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가고 있어. 지한이, 창윤이, 우진이, 모두 상인네거리로 진입한 상황이야. 그리고 7시 52분이 된 그 순간…콰쾅!!!!
"어처구니 없는 참변이, 또 이렇게 우리의 가슴을 찢어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습니다. 엄청난 가스 폭발 사고가 오늘 아침 대구의 한 지하철 공사장에서 터졌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폭발로 사고 현장은 폭격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백화점 공사 현장에서 누출된 가스가 결국 폭발한 거야. 이 사고가 바로, 1995년에 일어난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야.
▲ 아수라장이 된 사고현장
이 현장을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한 사람이 있어. 30번 버스를 타고 등교했던 중1 우진이야. 앞에 간 버스를 놓친 게, 우진이의 목숨을 살렸어.
"갑자기 뻥! 소리가 나면서, 이런(버섯) 모양으로 폭발이 되는 게 제 눈 앞에 보였어요. 한 30미터 앞? 너무 비현실적이라 '이게 뭐지? 영화 찍는 건가?' 버스를 하나 놓쳤는데. 버스를 하나 놓친 게 아직까지도 생각이 나요. 너무 간발에 놓쳤거든요."
-정우진, 당시 폭발 사고 목격자
근데 이상한게 하나 있어. 가스가 누출된 지점은 백화점 공사 현장인데, 가스가 폭발한 곳은 대구 지하철 공사장 쪽이야. 지하철 공사현장 쪽은 폭발로 완전히 박살이 났어. 왜 가스가 누출된 백화점 공사현장에서 몇 십 미터 떨어진 지하철 공사장이 폭발했을까?
이게 땅밑 세계야. 땅 속은 원래 여러가지 매설물들이 있어. 백화점 공사장에서 천공작업을 하고 있었잖아? 그 아래에 가스관 두 개가 있어. 그 중, 지름 100mm쯤 되는 중압관에 구멍을 낸 거야. 구멍 크기는 무려 8cm.
여기에서 유출이 된 가스가 마치 살아있는 듯 흙 사이사이를 움직여 가다가 큰 틈새 하나를 발견해. 바로 옆, 20cm 가량 파손되어 있던 우수관이야. 이 우수관은 하수관과 연결돼 있는데, 이 하수관은 지하철 공사장으로 향해. 결국 누출 지점에서 순식간에 113m나 흘러서, 지하철 공사장으로 흘러 들어간 가스는, 연쇄적으로 폭발했어.
그럼 발화 원인은 뭐였을까? 몰라. 새어 나온 가스는 LPG(액화석유가스)야. 가정, 업무, 공업, 운송 등 다양한 분야의 연료로 사용되는 가스지. 이 LPG의 특징은, 발화점이 굉장히 낮다는 거야. 불이 잘 붙어. 심지어 정전기에도 불이 붙을 수도 있대.
지하철 공사 현장 위 도로에는 복공판이 쫙 깔려 있었어. 복공판 1개당 무게는, 280kg이야. 근데 그 아래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복공판이 종잇장처럼 한꺼번에 튀어 올랐어.
"무게가 280kg이나 나가는 지하철 상판(복공판)이 3층 건물의 옥상까지 날아올랐습니다. 사고 주변의 건물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주변 한옥 주택까지 복공판이 날아와 지붕 위에 꽂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무려 400m 구간의 복공판이 전부 다 날아 올랐어. 폭발 전, 복공판 위를 지나던 차와 사람들도 전부 복공판이랑 날아 올랐어. 복공판이 원래 있던 자리는 벌집처럼 구멍이 생겼어. 그 위에 있던 사람이랑 차들은 튀어 올랐다가 15m 아래로 추락했어.
"복공판이 차를 깨부수고, 복공판에 깔린 사람도 보고. 그 나이(14세)에 시체를 처음 보게 된 거죠. 그때부터는 정말 엄청 무섭기 시작해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냅다 그냥 뒤로 뛴 것 같아요."
-정우진, 당시 폭발 사고 목격자
폭발의 여파는 정말 엄청났어. '보물이' 창윤이 부모님은 집에 있다가 이상함을 느꼈어. 갑자기 창문이 흔들리는 거야.
"(아파트가) 들썩하는 그런 느낌이 오길래 '사고가 났구나' 싶었어요. 아내는 '우리 창윤이!' 딱 이러더라고. '우리 애는 괜찮을 거다, 학교 갔을 거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신주식, 창윤 아버지
엄마는 베란다로 뛰어나갔어. 엄마의 눈에 보인 건,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엄마는 현관 문을 열고 나가 막 달려서 학교에 도착했어. 엄마가 학교에서 가장 먼저 찾은 건, 창윤이의 자전거야. 자전거가 있으면 창윤이가 학교에 있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자전거가 너무 많아. 엄마는 창윤이 자전거를 찾지 못했어.
지체할 틈이 없어. 엄마는 막 교실로 올라 갔어. 너무 당황해서 창윤이가 몇 학년 몇 반이었는지 생각이 안나. 엄마는 물어 물어 겨우 교실로 찾아갔어. 그런데 교실에 창윤이가 안 보여.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창윤이가 아직 학교에 안 왔대.
같은 시각, 지한이 엄마도 미친 듯이 학교로 달려와서 선생님한테 지한이 행방을 물었어.
"왔냐고 물으니까, 안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선생님이 되게 밉더라고요. '왔다고 했으면 될 텐데 왜 안 왔다고 하는지…' 그 마음이 드는 거예요. 내 억지인 거예요. '지한이가 안 왔다'고 한 게 선생님의 잘못도 아닌데."
-지한이 어머니
창윤이랑 지한이의 행방은 파악이 안 된 상황. 아까 승객 100명이 타고 있던 121번 버스 기억나지? 그 버스는 어떻게 됐을까? 당시 버스의 사진을 보여줄게.
완전 까맣게 타 버렸어. 당시 121번 버스를 운전했던 기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신호 대기 중일 때 갑자기 발 밑에서 쾅쾅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복공판이 제 버스 천장 위에 떨어졌고 제가 타고 있던 시내버스가 우측으로 한 45도 가까이 기울었죠. 운전석 옆에 기둥을 잡고 안 넘어지려고 버티다가 버스가 원위치 된 상태였어요. 그 때부터 차 안에서는 비명소리가… 버스 바로 앞에 승용차가 한 5m 위로 붕 날아서 지나가는 고압선 줄을 감고 거꾸로 처박힌 거죠. 그래서 승용차에서 난 불이 버스로 옮겨 붙기 시작했어요."
-임해남, 당시 121번 버스 기사
승객 약 100명이 탄 만원버스. 그럼 무게가 굉장히 무거웠을 텐데, 그런 버스가 가스가 폭발하자 요동을 쳤어. 버스 기사는 바로 문을 여는 레버를 힘껏 당겨 뒷문을 열었어. 하지만 앞문은 꼼짝도 안 해. 복공판이 떨어지며 차체가 찌그러져서 안 열려. 버스기사 해남 씨는 운전석 옆 창문을 열었어. 그리고 뛰어 내렸어. 그 다음에는 일단 무조건 달렸어. 살아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대.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뛰다가, 갑자기 멈춰 뒤를 돌아봤어. 버스 창문에 손들이 보여. 창문을 미친듯이 두드리는 승객들이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귀를 때려.
버스기사 해남 씨는 다시 버스로 뛰어 갔어. 2차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내가 저 버스 기사인데, 내가 승객들을 보호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까 열었던 뒷문으로 갔어. 뒷문이 열리긴 했는데, 입구가 좁아서 사람들이 엉켜 있어. 해남 씨는 아무거나 단단한 걸 주워들어 버스 창문을 있는 힘껏 쳤어. 간신히 버스 창문 2개가 깨지며 탈출구가 생겼어. 뒷문과 깨진 창문으로 승객들이 정신없이 탈출해. 그 순간 버스가 불길에 휩싸였어. 혹시라도 남은 승객이 있을까봐, 해남 씨는 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어. 다행히, 그 안에는 주인 잃은 물건들만 잔뜩 있고, 사람은 없었어.
"제가 탄 버스 승객 중에는 다친 분은 있어도 사망자는 전혀 없었죠."
-임해남, 당시 121번 버스 기사
다 구했으니, 해남 씨도 대피하려는데 어디선가 "살려주세요"란 목소리가 들려. 버스 앞 쪽 승용차에서 나는 소리야. 그런데 차는 뒤집혔고, 고압선이 차를 막 휘감고 있어. 감전될 수도 있었지만, 해남 씨는 용기를 내 고압선에 손을 댔어. 다행히 전기는 안 흘렀어. 뒤집힌 차를 들려 했지만 혼자선 무리지. 그 때 어디선가 남자 두 명이 뛰어와. 모두가 힘을 합쳐 뒤집혔던 차를 세웠어. 사람이 급박한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고 하잖아? 결국 그 승용차 안에 있던 아이와 아버지를 무사히 구해냈어.
사고가 터지자 대구에 있던 모든 소방서에 비상이 걸려. 경력 12년차 김호제 소방관도 현장으로 출동했어.
"현장에 가니, 정말 이거는 뭐. 전쟁터, 폭격을 맞은 거 이상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서 있었던 차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차가 솟았다가 떨어지면서 사람이 튕겨 나오지 않습니까. 공사를 하기 위해 철근을 꽂아놨는데, (사람이) 그 위에 떨어진 경우. 제가 구조활동을 하면서 뚜렷이 기억이 나는데, 그 사람을 빼낼 때의 심정. 베테랑 구조대원도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이렇게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지하 상황은 피투성이가 된 분들, 또는 아우성 치는, 신음하는 분들, 숨이 멎은 시신들… 이렇게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김호제, 당시 대구중부소방서 구조대장
280kg짜리 복공판에 사람들이 맞았어. 맞은 사람들의 신체가 어떻게 됐을까. 훼손된 분들이 많았지. 병원으로 옮길 때, 이 분들의 신체 부위까지 함께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거야.
좀 전까지 대화하던 친구, 아이를 학교에 태워다 주던 부모님, 출근 중이던 직장인. 수백명이 이 도로 위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어. 수 백장의 복공판 밑을 뒤지고, 종잇장이 된 차량 안을 수색해.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행렬도 끝이 없어. "우리 애가 학교에 없는 것 같아요. 좀 찾아주세요", "남편이 출근 중이었는데, 회사에 안 왔대요. 제발 좀 찾아주세요"라는 전화가 119에 빗발쳐. 대구시 전체가 완전히 카오스야.
▲ 폭발 속의 고요, 참사의 희생자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어. 이렇게 엄청난 사고가 나면 방송국에서 긴급 속보, 특보가 계속 나와야 하는데, TV가 조용했대.
"전 현장에 있어서 못 봤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이게 뉴스 속보가 나온 게 아니라 자막뉴스로 나갔던 거예요. 자막으로 '대구 상인동 네거리에서 가스 폭발이 있었다'고. 정확한 정보가 전해지지 않으니까, 학교도 당황스럽고 학부모들도 당황스럽고. 연락이 잘 안 되고 했던 일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정우진, 당시 폭발 사고 목격자
"(방송이 나와야) 주변 사람들이 빨리 가서 응급 대책을 세워서 사고 수습을 해야될 거 아니에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주변에서도 몰랐던 거예요."
-지한이 어머니
사고 발생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TV에는 사고 소식이 안 나왔어. 그러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짧게 뉴스 보도가 나왔어.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은 정말 경악할 수 밖에 없었어. TV에서는 사고 현장 관련한 특보가 아니라 고교야구 중계가 나오는 거야.
"사람이 그만큼 많이 죽고 다치고 이랬는데 고등학교 야구 중계를 해요. 너무 괘씸하기 짝이 없어요."
-임해남, 당시 121번 버스 기사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TV 화면에는 야구 중계가 나와. 얼마나 시민들이 분노했겠어. 요즘 같으면,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방송하니 우리가 모를 수가 없지. 그리고 현재는 방송이 24시간이 나오잖아. 근데 당시에는, 방송 편성시간에 제한이 있었어. 정규방송 시간 외에 방송을 하려면, 공보처(언론, 보도 및 방송 등에 관한 사무를 관할하던 중앙 행정 기관)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해. 방송이 안 나오니, 실종 가족들은 사고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노릇이야. 그래서 가족들은 직접 발로 뛰어다녔어.
"복공판이 다 날아가서, (길을) 건너가질 못해서. 그래서 둘러서 둘러서 아내를 만났는데, 창윤이 자전거도 없다고 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계속 뛰어다녔어요. 얼마나 돌아다녔나, 나중에 발바닥에 물집이 500원짜리 동전만한 게 양쪽에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아픈지 모르고 뛰어다녔는데…"
-신주식, 창윤 아버지
부모들은 아이들 소식을 알 수 없으니, 병원이란 병원은 다 돌아다녔어.
"지나가는 차 붙잡고, 어느 병원에 좀 데려다 달라고. 뭐 택시인지 뭔지도 그랬어요. 처음에 (병원) 들어갈 때는 침대에 이렇게 누워있는 아이들이 그 아이가 내 아이였음 좋겠다. 그 마음 밖에 없어요."
-지한이 어머니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 했지. 장애라도 좋다,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그러면서."
-창윤이 아버지
응급실을 다 뒤져도 아이가 안 보이면, 그냥 무작정 병원 지하로 내려갔어. 영안실이 거기 있으니까. 그렇게 지한이를 찾아다니던 엄마는, 한 병원에서 엄마 껌딱지인 아들을 만나. 하얀 천이 덮인 채로. 근데 엄마는 지한이가 죽었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
"'아, 그냥 누워있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지한이가) 근데 여기 왜 누워있지? 뭐 때문에 내가 여기 왜 왔지? 이것도 생각이 안 나요. '아, 그냥 여기 누워있네. 좀 있으면 일어나겠지' 자는 거 같은 느낌..."
-지한이 어머니
아침에 엄마한테 "사랑한다" 말하며 학교 간다고 집을 나선 아이인데, 왜 여기에 누워있지. 그만 일어나 지한아… 근데, 한 쪽 손과 발이 없어.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엄마의 손과 발이 너무 아파왔대. 꼭 자기 손발이 잘려나간 것처럼. 지한이 엄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었어.
사고 발생 3시간 후, 창윤이 부모님도 병원에서 아들을 찾았어.
"(창윤이) 시신이 그냥 바닥에 그렇게 누워있었어요. 얼굴이 얼마나 커졌는데요. 얼굴 뼈가 머리가 복잡골절.. 만지니까 전신의 뼈가 막… 아들 때문에 일도 열심히 했고. 그렇게 일하면서, 일의 괴로움, 고통, 그런걸 모르고. 아들만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이렇게…"
-신주식, 창윤 아버지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남겨진 이들에겐 너무나 냉혹한 현실이야. 이 참사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01명. 부상자는 200여명이나 돼. 희생자 명단을 보면, 10대가 51명으로 절반이 넘어. 이 중 43명이 영남중학교 학생들이야. 이 학교에선 학생 43명, 교사 1명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났어.
같은 반인 '보물이' 창윤이와 '엄마 껌딱지' 지한이 사진이 나란히 걸렸어. 어제 "내일 보자" 하며 인사하고 헤어진 친구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어.
"장례식을 하면서, 우리 학교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망을 했구나. 그리고 내가 아는 친구들도 죽었구나. 다시는 못 보는 구나. 난 이렇게 살았는데 그들은 갔구나.. 하면서 많이 슬프고. 저도 장례식을 하면서 엄청 울었던 거 같고. 그때 그 친구들이 죽지 않았으면 그들도 지금 저처럼 아빠로서 살고 있었을 거 같은데… 지금도 얼굴이 생각나요."
-정우진, 당시 폭발 사고 목격자
가스폭발은 많은 걸 앗아갔어. 101명의 생명, 그리고 건강한 몸과 행복한 생활. 재산 피해도 어마어마해.
▲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참사
그럼 도대체 왜, 가스 폭발이 일어난 걸까? 이렇게 큰 도시 한복판에서 공사하는 거면, 가스관이 묻혀있을 거란 걸 당연히 알았어야 하는 거 아냐?
길을 걷다가 이런 표시 본 적 있지? '라인마크'라고, 도시가스 관로 표지 못이야. 이 표시 아래는 가스관이 있다는 거야. 그날 천공 작업을 했던 도로에도, 가스관이 2개 매설돼 있었다는 라인마크가 존재했어. 심지어 가스관 매설한다고 도로를 절개했던 흔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가스관이 묻혀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겠지.
문제는 또 있어. 원래 천공작업 하기 전에는, 지하 매설물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고 그 주변을 파서 직접 확인을 해야해. 그런데 당시에는 목측(目測) 이란 걸 했대. 파서 직접 확인을 안하고, 눈으로 어림잡아 헤아린 거야. 어림잡아 뚫을 위치를 그냥 정한 거야. 그러니까 가스관을 뚫은 거지.
그럼 왜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한 걸까? 당시 공사 중이던 백화점은 지반 공사가 두 달 정도 지연된 상태였대. 그리고 그 공사를 하던 천공기를 조금 있으면 다른 공사장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어. 한마디로 시간이 없었던 거야. 그래서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보니, 원칙을 지키지 않았어. 원칙을 지키고 주의 의무를 다 했다면, 이런 최악의 가스폭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럼, 막을 수 있는 순간들은 없었을까? 아까, 천공기 기사가 당황해서 드릴을 들어 올렸잖아? 만약 그때 드릴을 들어올리지 않았다면? 100% 차단은 안됐겠지만, 드릴로라도 막고 있었다면 가스 누출량이 적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 처음에 가스관을 파손한 게 7시 30분이었고, 폭발시 간은 7시 52분이야. 만약 그 20여분동안 신속하게 차량과 행인들을 통제했더라면? 그럼 사고 규모는 훨씬 줄어들었겠지.
그럼 101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 책임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천공 작업을 했던 하청업체, 백화점 공사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았어. 최고 형량 징역 5년. 또 3년형, 벌금형을 받은 사람도 있어. 이마저도 형량이 무겁다고 항소에 상고를 거듭하고 난 뒤에 내려진 판결이야.
이 사고를 계기로 국내 도시가스 안전관리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었어. 이제는 15km마다 안전 점검원이 배치돼 가스가 새는지 철저히 감시해. 그리고 그 사고 이후 지도가 하나 생겼어. 바로 '지하지도'야. 지하에는 도시가스, 상하수도, 고압 전선, 통신 케이블 등 수많은 매설물들이 있잖아? 그동안은 뭐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공사를 진행했대. 거대한 지뢰밭 위에서 공사를 계속 해왔으니, 사고발생은 시간문제였지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 그렇게 지하 매설물을 포함한 각종 지리 정보를 컴퓨터 데이터로 변환한 정보 처리 시스템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가 만들어졌어.
왜 사회는 항상 큰 사고가 난 후에 바뀌는 걸까. 이번에 '꼬꼬무'가 유족들을 만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뭔지 알아? 바로 "내가 죄인입니다"라는 거야.
"그때만 해도 어려울 때니까 애들 소원이 자전거 사주는 게 소원이니까. 자전거 사주니까 정말로 자기는 좋았겠지요. 자전거도 타고 싶으니까. 그때만 해도 좀 비싼 자전거를 사줬어요. 금액은 기억을 못하겠는데. 그걸 사주고 창윤이가 그 길로… 자전거를 사준 게 좀 후회스러운 일이에요. 아버지로서 인연이 거기까지인 게 그게 미안하고. 항상 미안한 마음이죠 항상."
-신주식, 창윤 아버지
"(학교에) 조금만 늦게 보낼 걸. 조금만 일찍 보냈으면 되는데. 아니면 오늘 학교 보내지 말걸. 그게 다 내 책임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학교를 안 보냈으면 될 텐데 학교를 보내서. 내 잘못이구나. 그리고 이사를 이쪽으로 안 왔으면 될 텐데. 다 내 탓이었어요."
-지한이 어머니
유족들은 오히려 자신을 탓해. 지한이 어머니는 사고 이후 바로 이사를 가셨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그 후 창윤이 아버지는 유족 몇 분과 같이 건설회사를 하나 만드셨어. 부실 공사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으셨대. 그런데 공사 수주가 안 들어와. 유족들이 세운 회사라고 다들 선입견을 갖고 거부반응을 보였대.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어. 딱 하나를 건축하고 나서. 바로 이거야.
대구 가스폭발 참사를 추모하는 위령탑이야. 이 위령탑에는 희생자 101명의 이름이 적혀 있어. 참사 후 28년이 지났지만, 매주 이 위령탑을 찾는 유족분들이 지금도 많이 있어. 지한이 어머니는 위령탑에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하러 가.
"거기 청소하러 지금 27년, 28년째 됐는데. 일요일마다 하루도 안 빠지고 가거든요. 이제 우리는 그때 그 나이에 마음이 머물러 있으니까. 중학교 다닌다 해도, 엄마들이 아이들 학교 가면 아이들 방 청소도 하고 하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 방 청소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가요. (지한이가) 죽었다 이런 거보다도, 어딘가에 멀리, 멀리 있는데 그 아이 방이 비어져 있으니까. 거기가 아이 방이다, 그래서 가서 주변 정리하고... 날씨가 추우면, 그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보면 차가우니까 춥겠다 싶고. 더우면 너무 덥겠다 싶은 그 마음이 드는 거지…아이가 죽었구나, 이 생각은 이제 잘 안 들어요. 그냥 거기에 아이가, 어딘가에 멀리… 그 마음이에요."
-지한이 어머니
참사 후 28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사고가 있었던 상인네거리도 많이 바뀌었어. 세월이 지나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졌어. 28년 전 4월, 딱 이맘때야. 이 사고를, 희생된 분들을 우리도 함께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고가 일어나는 건, 비슷한 사고가 적어도 10번은 더 터질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해.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건, 1995년 5월 대구 가스폭발 사고,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까지. 불과 1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일어난 참사들이야. 유족들이 말하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 말해봐야 뭐가 바뀌냐고? 입만 아프다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고 잊으면 되는 걸까. 이 반복의 고리를 끊어야 하니까, 유족들은 다시 꺼내기조차 힘든 그 기억을 힘들어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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