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책 비웃듯...입찰시장 나온 경매유예 물건
65건 중 20건 경매 직전 기일변경
“우선 돈 뽑지말고 올라와. 기일전부 변경됐다.”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가 있었던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다세대를 관할하는 인천지방 경매법정. 지난 20일 법정 앞에서 한 40대 남성은 전화 너머로 전세사기와 관련된 경매 물건들이 기일이 변경됐음을 알렸다. 입찰에 참가할 수 없으니 입찰금도 필요 없다는 사실을 현금을 찾으러 간 경매업자 동료에게 알려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중단 또는 유예를 지시한 이후 첫날이었던 이날 경매물건은 애초 65건에 이르렀다. 이중 20건은 경매 시작 전 아침에 급박하게 기일변경으로 바뀌었다. 경매업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법정 앞 입찰 게시판에서 기일변경을 확인하고 서로 수군거린 뒤 발길을 돌렸다.
정부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로 확인된 2479가구 중 은행권과 상호금융권 등에서 보유 중인 대출분에 대해서는 이날부터 즉시 경매를 유예하도록 협조를 구한 상태다.
실제 기일이 변경된 물건들은 미추홀구 숭의동·주안동에 있는 아파트 또는 다세대주택으로 채권자들은 전부 신협 등 금융기관이었다.
낙찰자들을 상대로 등기업무를 도와주는 업무를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60대 여성은 “효과가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경매중단 조치에 수많은 임차인들이 잠깐은 내쫓길 상황을 피했다”라며 “임차인들도 자신의 물건을 낙찰받기 위해 법정을 찾기도 하지만 가격을 낮게 써내 낙찰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보증금도 빼앗길 판에 무슨 돈이 있겠냐”고 안타까워했다.
그 와중에 기일변경 사실을 모르고 전세사기 물건에 입찰을 시도한 3명은 개찰 전 입찰금을 돌려받기도 했다.
기일변경이 많았던 탓에 이날 개찰은 11시 30분 개찰을 시작한지 20여분만에 끝났다. 이날 45개의 물건 중 낙찰된 것은 8건에 불과했다. 이중 감정가 100%에서부터 경매가격을 쓸 수 있는 신건은 단 하나도 입찰자가 없었다. 낙찰자가 나온 물건들은 감정가의 70~24%까지 입찰가를 적어낼 수 있는 1회 부터 4회까지 유찰을 거친 물건들이었다.
한 40대 남성은 “경매업자들이 참여하지 않으니 입찰 자체가 적어 금방 끝났다”며 “최근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으니 유찰 1회 된 물건에도 눈길을 잘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경매는 정부의 경매중단 및 유예가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 자리기도 했다. 이날 경매에는 ‘건축왕 전세 사기’ 사건에 연루된 미추홀구 주안동에 위치한 오피스텔 4곳도 경매물건으로 나오는 등 여전히 정부 대책에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했다.
이중 3곳은 11시 20분 개찰이 시작되고 난 뒤 기일변경이 통보돼 경매를 그대로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법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들 오피스텔의 채권자도 신협 등이었지만 정부의 경매 유예 조치가 즉시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오피스텔은 이날이 첫 경매 기일인 신건으로, 최저 입찰가가 높게 책정된 탓에 낙찰자는 나오지 않았다.
금융기관이 채권자로 남은 경우는 정부의 요청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겠지만, 채권이 대부·추심업체에 넘어간 피해 주택들은 경매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도 경매유예 조치의 사각지대로 지적된다. 대부·추심업체는 사실상 민간 업체여서 정부가 권고한 ‘자율적 유예’ 조치를 받아들일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관련 채권을 보유한 금융회사 131곳 중 은행은 2곳, 나머지는 전부 제2금융권이다. 통상 금융회사들은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면 부실률이 높아지는 걸 막기 위해 부실채권을 대부·추심업체에 넘긴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아파트 한 동(45채)이 통째로 경매로 넘어가서 화제가 된 피해주택은 이미 지난해 9월 서울 소재 한 대부업체로 채권이 이전된 경우였다. 이렇게 이전된 부실채권은 그대로 경매가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경매유예 조치는)당장 집에서 쫓겨나는 것을 늦춰주는 미봉책일 수 밖에 없다”면서 “경매가 한참 남았거나 이미 경매를 거쳐 낙찰된 집들은 구제받을 길도 없다. 우선매수권 역시 최근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서영상 기자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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